시간 죽이기. 살생의 시간. 《킬링 타임》은 이 노골적인 중의성을 통해 영화의 핵심소재 두 가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잠시 동안 휴가를 갖는 젊은 병사들의 모습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피 한 방울 보여주지 않고도, 비명 소리 하나 들려주지 않고도 전쟁으로 인한 인간 개개인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니,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서 그들의 고통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겉으로 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매우 한가하다. 나름의 식도락(?)을 즐기거나, 마음껏 맥주를 들이키거나, 멋들어진 문신을 하거나…평범하고 전형적인 ‘시간 죽이기’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소중한 여유를 만끽하는 기쁨이 아닌 긴장과 초조함, 죽음의 기색만이 역력하다. ‘살생의 시간’이었던 전장에서의 기억들,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감, 떠나보낸 동료에대한 그리움이 오히려 그 여유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잔혹한 전장의 기억과 PTSD의 고통은 다큐멘터리나 소설, 언론 등에서 이미 몇 차례고 지적돼온 일종의 *클리셰이지만,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 던져주는 감정이 짐짓 낯설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고통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아주 익숙하고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휴가의 끝에 총탄과 포화 속에서 순간순간 죽음과 직면하는 ‘전장’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 하지만 ‘일상’이라는 또 다른 전장으로 돌아갈 내일을 생각하며 불안에 떠는 경험은, 그리 희귀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킬링 타임’을 기다리는 ‘킬링 타임’. 우리에게 휴식이란, 어쩌면 이런 의미로 남게 된 것이 아닐까.

*클리셰: 문학작품이나 미디어 등에서 남용된 끝에 새로운 충격을 주지 못하게 된 상투적인 표현이나 개념ㆍ주제ㆍ기법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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