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준비하는 한국의 많은 고등학생들은 대학교에 대한 로망을 가지며 힘든 수험생활을 견뎌낸다. 나 역시 대학교에 대한 개인적인 로망을 가지고 힘든 수험생활을 버텨냈다. 나에게는 이 로망이 대학교에서의 강의였다. 수험생 시절에는 선생님이 칠판 앞에서 자신의 학문적 지식을 주입하고, 나는 이 지식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에 바빴다. 대학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교에 가면 이 지긋지긋한 수업은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교수님과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해나가는 대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순수했다. 3년간의 수험생활도 모자라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해 재수생활까지 해가며 원하는 대학교에 왔지만, 나의 로망은 어렵고도 힘들게 들어온 건국대학교에 없었다. 대학생이 되었던 2012년의 나는 서울의 여러 건물을 가진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대학교의 강의 시간은 고등학교의 수업시간이었고, 교수님은 선생님일 경우가 허다했다. 같이 강의를 수강하는 강의실의 대학생들은 누군지 모르는 고등학생과 비슷했다. 그리고 나역시 그랬었다. 현재 나는 3학년의 대학생이지만, 아직도 나에게서 자유로운 대학생의 모습은 찾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무엇이 대학교 3학년인 나를 아직도 고등학교 3학년으로 만들고 있을까? 나는 강의실의 모습에서 이 문제가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수업을 듣는 강의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교수님은 앞에 계시고, 학생들은 일렬로 배치된 책상에 앉아 아래에서 위로 교수님을 쳐다본다. 이러한 시선은 통일적이며 일방향적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관점 보다는 동일한 관점으로 사안을 보아야 하며, 그 의견은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래에서 위로 교수님을 쳐다보는 상황은 다양한 관점보다는 교수님의 지식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또한 강의실과 책상은 각진 모서리를 가지고 우유박스 마냥 배치되어 있는데, 이 또한 학생들의 사고를 딱딱하게 만드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예전 수강했던 강의에서 현재 한국 대학교 강의실의 모습 즉, 흰색 바탕에 각진 모서리를 가지고 있는 모습은 정신병동의 병실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환경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의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환자의 모습이 아니라 강의 시간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려고 노력한다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대학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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