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논문’ 필요하다더니 결국은 ‘논문 한 편 더’

교수업적평가기준이 2011년 이후 5년 만에 또다시 대대적으로 상향조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달 19일 법학관 국제회의실에서는 교수업적평가기준 변경에 대한 공청회가 진행됐다. 정교수 승진 기준 점수를 현행 기준의 170%로 상향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날 공청회에서 강황선(정치대ㆍ행정) 교무처장은 “중앙일보평가 기준으로, 우리대학의 국제 학술지 논문 편수 순위는 높은 수준이나 피인용 횟수 순위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사실상 ‘질 좋은 논문’이 생산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 날 자리한 교수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냉담했다. 대학본부가 ‘피인용 횟수’가 적은 것을 문제 삼으면서도, 정작 여전히 ‘등재 논문 편수’를 기준으로 점수를 책정하는 방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결국 논문 더 쓰라는 말 아니냐”… 교수 들 반발 예상

본부가 제시했던 방안은 다음과 같다. △ 정교수 승진 기준 점수 170%로 상향 △정교수 승진 비율 70%로 고정 △정교수 승급 탈락 시 책임강의시수 가중 △부교수 근무기간 6년으로 확대 △승진 기준 점수 초과분 인센티브 도입 △산학실적(이공계) 및 저서ㆍ역서실적(인문사회계) 환산점수 인정 △주저자/교신저자급 저자 기여도 60%로 축소 △세부 승급기준 교외 비공개 내규로 전환 △승급기준 논의를 위한 계열별 위원회 도입이 그것이다.

우리대학의 교수의 직급은 크게 *△신규 임용 조교수(2년)* △재임용 조교수(4년) △부교수(5년) △정교수로 나뉘는데, 승진 기준 점수는 다음 직급으로 승진할 때 필요한 일종의 ‘최소 성적’이다. 각 직급별로 상이한 이 최소성적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다음 직급으로 승진할 수 없다. 신규 임용된 조교수의 경우엔 재임용 심사 시 교수업적 평가가 이뤄져 자칫 임용되자마자 2년 만에 학교를 떠나게 될 수 도 있다.

교수업적평가는 기본적으로 ‘연구업적 점수’와 ‘교육 및 봉사활동 점수(교육점수)’의 합계로 이뤄진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연구업적 점수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연구업적 점수는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등재하는 경우에 그 논문 한 편당 일정 점수를 부여받는다. 국제 학술지의 경우 편당 배점이 더 높다. 전형적인 정량평가 방식인 셈이다.

 

인문ㆍ사회ㆍ예체능계열 조교수의 연구 업적 기준점수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부교수가 정교수로 승진하기 위해선 1년에 2편의 논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에 게재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업적 기준점수를 100점이라고 가정했을 때, 본부가 제시한 방침은 이 기준점수를 170점으로 상향조정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1년에 써야하는 논문의 양이 2편에서 3.7편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학ㆍ공학계열의 경우 부담은 더욱 크다. 현행 평가기준부터도 이공계열 교수는 인문ㆍ사회ㆍ예체능계열의 두 배를 충족시켜야 하는 반면, 같은 등급인 논문 한 편의 배점은 2/3에 불과하다. 특히 이공계열의 경우 거의 모든 연구 및 논문 집필이 공동으로 이뤄지는데, 이 경우 공동저자가 늘어날수록 기여도(배점)는 반비례해 낮아지는 구조다. 본부는 이와 관련된 논문기여도 산정방식도 주저자/**교신저자급 저자의 기여도도 80% 인정에서 60% 인정으로 낮추는 방향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최영은(이과대ㆍ지리) 교수는 “질적 평가를 강화하는 건지, 양적 평가를 강화하는 건지 명확히 정해달라”며 본부가 제시한 방침이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 교무처장은 “논문 편수를 더 늘리라는 게 아니라, (배점이 높은) 해외 유명 저널에 더 쓰라는 취지”라며 “아직 확정안이 아니므로 의견을 주시면 전부 수렴해서 다시 논의 하겠다”고 덧붙였다.

 

평가기준 둘러싸고 끝없이 반복되는 갈등

교수업적평가기준에 대한 교수들과 본부 간의 갈등은 지난 십여 년 간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서로의 입장도 그대로다. 본부는 외부기관의 연구평가 실적이 떨어져 기준 상향이 불가피하다며 개정안을 제시하고, 교수들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조치라며 맞선다. 2006년도에도 연구업적 기준 점수가 상향됐으며, 2009년도에도 150% 상향됐다. 현행 교수업적평가제도가 마련된 2011년도에는 이공계열 교수들의 연구 업적 점수가 따로 분류돼 두 배로 상향됐다. 특히 지난 2012년도에는 교수업적평가 기준을 둘러싼 본부와 교수협의회의 첨예한 갈등 끝에 김진규 전 총장이 임기 중도에 퇴진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교수평가가 논문 집필 수에 기반한 연구업적 중심으로만 이뤄진다는 비판은 1999년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되면서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대학 교원의 업적ㆍ성과를 평가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되자, 대부분 의 대학들이 대외적인 대학평가 순위를 높이기 위해 정량적이고 즉각적인 연구실적 에 목매게 된 것이다.

원인은 대학가에 불어닥치고 있는 구조조정 바람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있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입학정원을 감축하는 추세인 대학들이 등록금 감소로 재정이 악화되자, 인건비 감축을 위해 교수업적평가기준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대나 경희대의 경우 교수업적평가를 근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상태다.

 

강의평가 비중 5%에 불과… 학생의견 고려 없어

‘교육점수’는 업적평가기준 논의에서 항상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교수의 강의ㆍ학생지도 등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 하는 교육점수의 비중은 전체 기준점수의 3분의 1(이공계열은 6분의 1)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학생들의 평가가 반영되는 강의평가는 A등급을 받더라도 전체 기준점수의 10%(이공계 5%)에 불과하다. 논문 반 편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렇듯 기준 점수는 낮은 반면 충족하기는 어렵지 않다. 학기별 책임학점과 강의평 가만 받아도 거의 대부분의 점수를 채울 수 있다. 강 교무처장은 “지난 5년간 승진 평가 점수를 분석해봤을 때 교육 및 봉사 점수가 아무런 변별력이 없었다”고 설명하며 “심지어 교수들이 아예 점수를 내지 않을 때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학생사회 일각에서는 교수업적평가 에 학생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돼야 한 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백대현(정통대 ㆍ컴공3) 학우는 “교육 역시 엄연한 교수의 역할 중 하나인데, 그런 여건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못한 것 같다”며 “연구업적에만 몰두하다 강의 질이 떨어지면 온전히 학생 피해 아니냐”며 우려를 제기했다. 이러한 우려는 지난 2009년도, 당시 교수협의회 소속이었던 교수에 의해 이미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는 <건대신문>과의 인터뷰 중 “교수들이 연구실적에만 몰두하게 되면 교육ㆍ봉사 부문은 자연히 소홀히 할 수밖에 없어 오히려 학생들에게 피해가 올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괄호 안의 숫자는 각 직급별 소요연수.

**학술지 편집자 또는 다른 연구자들과 연 락을 취할 수 있는 저자. 논문에 대한 질문이 있거나 문제점이 발견되었을 때 손쉽게 조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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