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성립하기 위한 세 가지 기본요소가 있다. 영토, 국민, 주권. 이 세 가지를 갖추는 것이 국가가 성립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1948년 8월15일,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결국 김일성과의 협력을 포기하고, 서로 남과 북에 각각 정부를 수립한다. 매우 거칠게 요약했지만, 어쨌든 이승만은 그렇게 대한민국 1대 대통령이 됐고, 그로부터 2년 뒤 6월, 한반도는 전란에 휩싸이고 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나 사고방식 안에서 대한민국은 언제나 휴전선 이남의 지역으로 한정된다. 이러한 사고의 기틀이 세워진 건, 위에서 언급한 1948년 8월 이후의 일이다. 일각에서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물음이 생긴다. 첫째,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때가 맞는가? 둘째, 남한의 정부수립일이 민족의 해방 기념일보다 더 중요한가? 하필이면 우연히도 두 기념

일이 겹치는 바람에 생긴 의문이다. 불가피하게 비교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두 가지를 비교해판단하는 건 독자여러분의 몫으로 맡기겠다―외세에 침탈당했던 전 국토와 주권을 되찾은 날과 정치ㆍ사상적 갈등 끝에 분열된 행정부를 수립한 날 가운데 무엇을 더 기념할 만한가?

그렇다면 남은 질문,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에 ‘건국’됐나? 잠시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4월 13일, 특이하게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 행정기구가 탄생하

였다. 당시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의 눈을 피해, 가까운 외국에서 해방한국의 미래를 그려나가기 위해 말이다. 다만 국제사회의 합법적 승인을 획득하지 못해 '임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현대 헌법 전문에서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바로 이것이다.

비록 임시정부일지라도 외교 활 동을 전개해 우리나라의 대표 구실을 하고 광복군 창설을 통

해 독립운동의 요충지 역할을 하는 등, 대한민국으로서의 역사를 창조해나간 정부였다. 대한민국의 건립일이 1948년 8월 15일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임시정부의 역사를 송두리째 무시하는처사다. 심지어 이는 자칫 반민족행위에 일조하여 냉소 받아 마땅한 친일파 중 일부를 3년 간 건국운동에 참여했다는 명목만으로 건국공로의 주역으로 삼는 수치스러운 상황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임시정부와 광복이라는 디딤돌이 존재했기에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우뚝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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