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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되자특히 사랑스러운 건국대 후배들에게 주는 글
김용복 총동문회장 | 승인 2004.02.09 00:00

지금 이 나라가 신용 불량이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 싶다.

밀린 카드 빚을 갚기 위해 멀쩡한 대학생이 스스로 윤락가에 몸을 던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인생을 포기하는 사태가 줄을 잇더니 급기야는 재벌그룹 계열의 신용카드사가 자금난에 쫓겨 부도 위기를 맞았고, 카드 빚에 쪼들린 가장은 어린 자식을 한강으로 집어던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무엇보다 엄정해야 할 대입 수능시험에서는 뒤늦게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바람에 학력평가원이 수능시험을 본 학생들로부터 집단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언제나 바람 잘 날 없는 정치권에서는 대선 자금 부정 문제로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대통령과 청와대, 심지어 검찰 수사까지 믿을 수 없다는 불신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국어사전에서는 신용(信用)을 ‘① 믿고서 씀 ② 확실하다고 믿어서 의심치 않음 ③ 급부(給付)와 반대급부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있는 교환’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을 “인간적 신용”, “사실적 신용”, “경제적 신용”이라고 필자는 나름대로 해석하고 싶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개념의 신용이 우리 사회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자고 나면 각종 부정부패 거짓말의 실상들이 줄줄이 드러나는 판국에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것만은 확실하다고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법정 기관인 카드사의 부채를 갚지 못해 가정을 망치고 자신은 물론 자식의 삶까지 포기해야 했던 사람이라면 친구나 친척에게는 벌써부터 신용불량으로 낙인찍혀 있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신용은 사람이 살면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이다. 설사 사업에 실패하고 당장 몸을 누일 방 한 칸이 없는 형편이라도, 주변 사람에게 신용만 잃지 않고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신용을 잃은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 위의 탑에 불과하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이 주는 교훈이 어찌 말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겠는가?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는 “말”이란 번드레하게 꾸며대는 유창한 말솜씨가 아니다. 한 생명의 진실이 담긴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을 믿을 수 있게 되고, 그 말을 믿게 되면 천 냥 아니 만 냥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빚이라도 없는 일로 해줄 수가 있다. 그 사람을 신용할 수 있기 때문에 흔쾌히 그 사람의 부탁을 들어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런 신용이 없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진실이 없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내가 직접 쑤어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극도의 불신만이 가득하다. 학생이 교사를 믿지 못하고,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친구를 믿지 못하고, 심지어는 자식이 부모를 믿지 못하고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절망감까지 생긴다.

필자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신용카드 문제에 대해 5-6년 전부터 그 심각성을 예고하는 발언과 언론매체에 기고하는 등 나름대로 경고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거니와 정치자금 문제, 또 다른 많은 문제들을 보면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 바로 각자의 신용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신용을 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용은 어느 날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신용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나는 내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우리 사회에 그것을 사다 선물하고 싶다. 하지만 신용을 파는 가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각자가 평소 생활 속에서 스스로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신용은 작은 진실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한다. 사소한 거짓말에도 심장이 떨리는 양심이 신용의 출발이다. 작은 일이라고 해서 자신이 한 말, 자신의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습관이 되면 큰 거짓으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한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지킬 수 없을 때는 그 이유를 진실하게 털어놓고 양해를 구하는 용기가 신용을 키우는 거름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얼버무리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큰 거짓말을 늘어놓게 되고 어느덧 스스로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눈앞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주위 사람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마련이다.

필자의 후배인 건국대학생들과 졸업생들 필자가 운영하는 장학재단의 장학생들, 나아가 한국의 모든 후배 젊은이가 무엇보다 신용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늘 주위 사람에게 믿음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에 가치 없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리 작은 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기 마련이다.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는 일, 돈을 많이 버는 일, 남들 앞에 돋보이는 일, 언론에 이름이 대서특필되는 크고 훌륭한 일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단 하나 신용을 잃는다면 그 모든 노력, 성과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설혹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저 사람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그 한 사람”이 몹시도 그립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 진정 필요한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다.

각종 거짓과 불신으로 오염될 대로 오염된 이 사회에 신용이라는 청량제가 되는 사람, 나는 우리 장학생 모두가 그리고 한국의 모든 젊은이 들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2004년 새아침을 맞이하면서

김용복 건국대학교 총동문회장



김용복 총동문회장  grandno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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