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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교] 혐오의 감정과 혐오의 말
김종갑(문과대ㆍ영어영문) 교수 | 승인 2016.10.05 21:14

2-3년 전부터 바람에 묻어오던 혐오가 최근에는 폭풍우가 되었다. 지난 5월 17일, 강남역 근처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후 혐오 논쟁이 하루도 잘 날이 없었다. 우선 이 묻지마 살인의 동기가 여혐인가 아닌가하는 질문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경찰은 정신질환에 의한 우발적 범죄라고 발표하였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했다”고 경찰에게 한 말을 간과하지 않았던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혐오를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그러면서 양 진영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게 되고, 일베와 메갈리안이 개입을 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새로운 적대의 전선이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한 술 더 뜨기’가 일상의 질서가 되었다. 공격과 반격이 오가는 와중에 언어의 수위가 더욱 거칠고 강경해지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반목과 갈등을 부추키면서.

과연 우리나라에 여성 혐오가 있을까? 있다면 여성혐오의 정체가 무엇일까? 여성혐오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그것을 입에 올리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은 의미가 저변에 깔려있는 데다, 명시적 의미보다는 함축적 의미에 무게 중심이 실리기 때문이다.

우선 여성혐오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것이 미사저니(misogynie)의 역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더불어 영어의 미사저니도 이현령비현령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해두어야 하겠다. 아주 넓게 말하면 미사저니는 가부장주의적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낸 모든 관행, 언어, 생각, 태도, 감정 등을 총칭한다. ‘여자는 이렇고 저래야 된다’는 생각이나 기대도 미사저니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남자의 정의가 미사저니스트(misogynist)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자 자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순수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품에서 다듬어진, 달리 말해 미사저니에 감염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생각이나 의식과 무관한, 문화의 대기권에 속한다.

소극적인 미사저니와 반대로 좁은 의미의 미사저니는 적극적이다. 그것은 혐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여성을 차별하거나 무시하고 비하하는 태도와 행동을 일컫는다. 남성이 도전받지 않고 세상을 지배하도록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는 가부장적 문화에 공감하고 동조하며,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남자의 내조에 있다는 생각에 젖어있다. 그래서 출세하거나 뛰어난 여성, 부드럽거나 유순하지 않고 의지가 강한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후자의 미사저니를 여성혐오로 부르는 것이 적당할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 정의되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주 심하게. 고전적인 예의 하나로 독기어린 눈, 저주의 눈, 악마의 눈(evil eyes)를 들 수가 있다. 유아도 그렇게 독기 어린 눈으로 쳐다볼 때가 있다. 자기 엄마의 젖을 빨아먹는—아니 빼앗는-이웃집 아이를 볼 때이다. 당연히 자기의 몫이어야 할 엄마의 사랑을 강탈당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 가운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표현들이 많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악마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노골적인 혐오의 표현을 일삼는 사람이 자기의 진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진출해서 성공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기의 것이어야 할 세상을 여성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상실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남성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이 적극적인 의미의 혐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론을 서두르기로 하자. 우리 사회를 휩쓰는 여혐과 남혐은 지극히 담론적인 현상이다. 허구적인 현상이나 잉여현실, 혹은 말싸움이라고 해도 좋다. 혐오는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서 치솟는 날선 감정이 아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던지는 언어의 강도만큼 우리는 상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혐오인가? 그것은, 헬조선의 먹구름이 드리우기도 하는 21세기의 각박한 현실에서 여성과 남성이 헤게모니를 장악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그것도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다. 혐오의 감정은 전파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과연 효율적인 전략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김종갑(문과대ㆍ영어영문) 교수

김종갑(문과대ㆍ영어영문) 교수  kk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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