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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에서 촛불로, 투쟁에서 축제로
이용우 기자 | 승인 2016.12.22 12:16

출처: 경기일보

박근혜 대통령 퇴진를 외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한 달 간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례의 주말 촛불집회에 전국 누적 630만명(주최측 추산) 이상이 참여했다. 이례적인 대규모 집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축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되면서, 이번 촛불집회가 시위 문화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위 문화가 그간 어떻게 변천돼 왔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천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건대신문>이 정리해봤다.

 

화염병의 시대: 매캐한 전운이 감도는 시위현장

이승만 前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낸 4·19 혁명, 전두환 前대통령의 독재를 끝낸 87년 6월 민주항쟁 등은 국민을 향해 무차별적 폭력을 사용한 정부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역사였다. 시위현장에 등장하는 것은 보통 ‘4자 구호’ 아니면 ‘~하자’ 식의 ‘투쟁적’ 언어들이었다. 4‧19혁명에서는 ‘살인정권 타도’ 등의 구호가 흔하게 등장했고, 6월 항쟁에선 ‘호헌철폐, 독재타도’가 일상어처럼 쓰였다. 정권의 대응도 지나치게 단호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시위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시민은 185명, 부상자는 1,500명이 넘었다. 4.19혁명을 촉발시킨 결정적 요인도 마산 부정선거 반대운동 시위에 참여했다가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이었다.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작전명 ‘화려한 휴가’로 잘 알려진 계엄군의 군사작전에 의해 사망한 시민들의 숫자도 총 600명이 넘는 것으로 기록돼있다. 도합 300만 명이 참여해 이번 촛불집회 이전까지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로 알려져 있던 6월 항쟁에서도 많은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6월 항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연행된 시위대는 약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6월 항쟁이 일어난 해인 1987년 10월 13일자 동아일보 신문에 따르면, 권복경 치안본부장이 “정치집회에서 불순세력 등에 의한 폭력행위는 관련자를 모두 검거, 전원 구속을 원칙으로 수사하겠다”고 발표한 기록이 남아있다. 시위를 ‘국민들의 뜻’이 아닌 ‘불순세력의 뜻’으로 본 것이다.

폭력으로 억압하는 독재정권에 맞서 시민들도 결국 폭력으로 저항했다. 다시 이승만 정권 시절, 총에 맞아 사망한 시민이 백 명이 넘는 상황에서 시민은 경찰의 무차별 발포에 맞서 투석전을 벌였다. 박종철 고문 사건,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 등으로 들고 일어선 6월 항쟁에선 돌보다 더 본격적인 ‘무기’들이 등장했다. 대학생들, 특히 사실상 준군사조직으로까지 확대된 각 대학의 ‘사수대(학생 전투조)’는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채, 화염병을 던지며 마찬가지로 무장 곤봉, 진압방패 등으로 무장한 전투경찰과 맞섰다. 시위문화가 다소 강경하다보니 자연스럽게 ‘20대 학생’ 위주의 시위 문화가 득세할 수밖에 없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시위대 내부 인권은 잘 지켜지지 쉽지 않았다. 시위현장에서 경찰의 시위진압부대인 ‘백골단’과 ‘사수대’의 전투를 방불케 하는 충돌은 흔한 모습이었다.

당시 시위에 자주 등장했던 노래만 봐도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와 ‘바위처럼’ 등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행진곡풍의 민중가요들은 당시 시위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촛불의 시대: 모두의 축제, 서로 지킬 것은 지키는 게 숙제

과거 시위는 투쟁적이고 다소 과격한 구호들을 사용했다면, 오늘날의 시위는 풍자와 패러디 등 다소 유쾌한 구호들이 사용되고 있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박근혜 퇴진”과 같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패러디하거나 “여러분 그네는 스스로 못 움직이죠? 바람이 순실순실 불면 됩니다”, “하야하그라”,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등 기발한 패러디의 다채로운 구호들이 적힌 손팻말이 등장했다. 구호뿐만 아니다. 최순실 씨의 모습을 풍자해 머리에 선글라스를 올린 채 흰 블라우스를 입고 나온 시민들, 박 대통령이 차움 의원에서 가명으로 사용한 것이 알려진 ‘길라임’이 등장한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화제를 모았던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다시 꺼내 입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과거의 ‘투쟁적’ 언어가 차지했던 곳을, 이젠 ‘유희적’ 언어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대응도 많이 달라졌다. 1차부터 5차까지 400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에서 총 부상자의 수는 55명밖에 안 됐고, 총 연행된 시민의 수도 60명에 그쳤다. 촛불과 함께 시위현장에 등장하던 물대포도 이번 촛불집회에선 보이지 않았다. 또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경찰이 같이 사진을 찍거나 하는 등 현장에서의 날선 갈등의 분위기도 크게 누그러졌다. 과거 일부 고위 경찰관이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불순세력”, “빨갱이”라고 부른 것과 대조된다.

청와대로 향하는 행진 제한구역 역시 매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 지난 11월 12일 3차 촛불집회까지는 900미터 떨어진 내자동로터리까지만 행진이 가능했지만 지난 3일 6차 촛불집회에서는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허가가 내려졌다. 이에 따라 사상 최초로 청와대를 동·서·남쪽으로 둘러싸는 집회가 열렸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자세도 과거와 큰 변화가 있다. 1차부터 6차까지 진행된 시위에서 화염병, 돌, 각목 등은 당연하다는 듯 볼 수 없었고, 소수의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면 “평화시위” 구호를 외치며 자제시켰다. 통인동 사거리에서는 시민 20여 명이 맞서고 있는 경찰을 안아주는 ‘훈훈한’ 일도 있었다.

시위에 등장하는 노래 또한 달라졌다. 민중가요 대신 대중가요가 시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빅뱅의 ‘뱅뱅뱅’은 지난 한 달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또한 기존의 유명한 가요를 개사해서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가수 안치환은 자신의 히트곡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개사해 '자유가 꽃보다 아름다워'와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 무대를 선보이며 박 대통령에게 일침을 가했다.

 

위문화 변천의 두 가지 키워드: ‘시민의식의 변화’와 ‘경찰의 변화

민주화시대 시위들과 현재의 광화문 촛불시위는 상이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드러나는 문화도 상당히 판이하다. 어떤 요인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었을까?

다양한 대답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결국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 번째는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시위가 끝난 후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광장 곳곳에 쌓인 쓰레기나 바닥에 묻은 촛농을 스스로 치우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비폭력과 질서를 유지하며 ‘평화집회’의 분위기를 스스로 자아냈다.

두 번째는 경찰의 대응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난 한 달 간, 경찰은 시위 허가시간 및 장소를 어기지 않는 한 해산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심심찮게 등장하던 물대포도 보이지 않았다. 갈등의 ‘빌미’가 없었기 때문에 평화시위를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중앙대학교 이병훈 사회과학대학장은 “시위가 한층 더 성숙해진 이유는 시대적인 상황하고 맞물렸기 때문”이라며 “군부독재 시절인 70년대 80년대엔 공권력의 진압 방식이 최루탄을 사용하는 등 매우 폭력적이었지만, 이번 시위 같은 경우에는 공권력이 민심을 읽고 존중하면서 과거와 다른 행동을 보였다”라고 진단했다. 또한 “과거에는 시위 참여자가 비교적 소수여서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시위는 백만 이상의 사람이 모여서 사람들이 자기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어 의식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번 시위로 대통령 하야라는 시민의 뜻이 관철된다면 대규모 평화시위가 한국만의 고유한 시위 문화로 자리 잡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용우 기자  a6331602@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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