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작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몇 명의 주목할 만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징후와 세기」 외 2편은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좋을 만큼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개성적인 화법과 언어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이름을 잘못 부르는 놀이”(「초대」)처럼 그의 시는 의미를 구축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비워나가고 지워나갑니다. 당선작으로 뽑은 「징후와 세기」에서도 서정적 주체는 동일성의 자리에서 벗어나 공간의 이동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기류들의 진동들에 몸을 싣고 움직입니다. 아피차퐁 위타세라쿤의 영화에서 제목을 빌린 이 시는 그 영화의 이미지들처럼 매력적인 모호함을 지닌 채 새로운 존재의 형성과정을 활달하고 유연한 흐름으로 이끌어갑니다. 도는 것과 돌지 않는 것, 볼록한 것과 오목한 것 사이에서 세계의 현기증을 견디며 끊임없이 진동을 포착해내는 감각이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예감케 합니다.

 당선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손에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던 작품으로 「새 숲」 외 2편이 있었습니다. 간결하게 정제된 문장들 사이로 펼쳐지는 상상력의 폭이 넓고 그윽한 「새 숲」을 비롯해 산문시 형식으로 된 「달본」과 「놀이터의 문화」도 사유와 말맛이 잘 어우러진 시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한 명의 당선자를 내야 하는 사정이라 다음을 기약해야 하지만, 훌륭한 시적 역량을 갖추었으니 자기세계를 잘 일구어가리라 믿습니다. 그 외에도 「울음의 계보」 외 2편, 「어느 바람 부는 저녁에 나는 울고」 외 2편, 「말」 외 2편, 「몽중몽」 외 2편 등도 일정한 시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들입니다. 이 투고자들은 시와 산문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고, 대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 시선을 더 깊게 다듬어가면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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