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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익명에 가려진 사회의 이면 <언노운 걸>
홍유진 교수 | 승인 2017.05.17 18:48

이 영화는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다르덴 형제)의 10번째 장편 영화다.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 1999>, <더 차일드, 2005>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로제타>는 청년 실업문제를, <더 차일드>는 청소년들의 출산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사회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다르덴 형제가 이번에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안고 돌아왔다.

장래가 촉망받는 여의사 제니가 선배의 병원을 잠시 맡아주고 있었다. 어느 날 병원 시간이 끝난 뒤 인턴과 언쟁을 벌이던 중 한 흑인 소녀가 병원을 찾아와서 초인종을 누른다. 하지만 제니는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초인종에 응하지 않는다. 다음날, 경찰들이 찾아와 병원 CCTV를 조사하게 되고, 지난 밤 병원을 찾아왔던 흑인 소녀가 사체로 발견됨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안 후에 제니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신원 미상(unknown)의 흑인 소녀의 죽음을 수소문하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며 소녀의 죽음에 가까워진다.

이 영화를 통해 다르덴 형제는 ‘도덕적 죄의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분명 소녀가 죽은 것은 제니의 잘못이 아니지만, 제니가 문을 열어 줬더라면, 소녀는 사체로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살리는 직업을 가진 제니였기에 그 죄의식이 더욱 짙었을 것이다. 죄의식을 지니고 소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여의사를 통해, 감독은 우리가 마주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담아내려 한 것이다.

본인의 죄의식과 타인의 수치심

영화 속 제니는 본인의 죄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건을 파헤치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수치심을 자극하게 되고 그 수치심은 역으로 본인의 죄의식을 더욱 옥죄는 역할을 한다. 수치심을 느낀 상대방은 더욱 강하게 제니를 공격하여 제니의 죄의식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제니는 벽에 부딪힐수록 더욱 강력하게 사건을 파헤치려 든다. 결국 그녀가 타인에게 자극한 수치심은 타인의 죄의식을 드러나게 만들어,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만든다. 하지만 실마리를 찾아서 스스로의 죄의식을 덜어내려고 했던 제니는 생각지도 못했던 타인의 죄의식과 마주하게 된다.

언노운 걸(Unknown Girl)

사체로 발견된 흑인 소녀는 신분을 알 수 없다. 제니는 그녀의 이름이라도 묘비에 써 주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찾아 헤맨다. 그녀를 죽게 만든 범인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 그녀의 ‘이름’을 먼저 찾아 헤맨 것이다. 그녀의 ‘이름’을 찾다 보니, 그녀의 삶을 찾게 되고, 그녀의 삶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실마리도 찾게 된다. 그녀의 이름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녀가 흑인 이민자이자 여성이자 창녀인 소수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언니가 그녀에게 가진 질투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를 찾지 않는 것이 자신의 남자친구로부터 그녀를 격리시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름’이라는 것은 그녀가 알고 살아온 삶 그 뒷면의 모습까지 찾게 만들었다. ‘펠리시 콤바’라는 그녀의 본명은 많은 이들의 수치심, 죄의식, 질투심 너머에 존재했던 것이다.

두 가지의 죄책감

흑인 소녀가 찾아온 날, 평소의 제니였다면 문을 열어줬을지도 모른다. 그 날은 인턴에게 강하게 질책을 하던 날이었고, 하필 소녀가 주검으로 발견된 다음날 인턴은 연락도 없이 병원을 그만둔다. 인턴은 제니의 질책에 의사라는 직업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자각했을지도 모른다. 흑인 소녀가 누른 초인종을 외면했고, 인턴을 질책했던 제니는 이 두 가지의 죄책감이 더욱 중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제니 때문에 흑인 소녀가 죽은 것도 아니고, 제니 때문에 인턴이 의사의 꿈을 접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니의 죄의식은 두 가지가 엮여 더욱 그녀를 간절하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소녀의 이름을 찾고, 인턴을 복직 시키기 위해 매달렸고, 그녀의 끈질김은 주변 사람들을 모두 지치게 만들어 그녀를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녀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경찰도 풀지 못한 사건의 실마리를 풀게 되었고, 그만두겠다던 인턴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일상에 가려진 사회의 외면

사체가 발견되어 이를 추적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매우 일상적이다. 사건을 파헤치는 와중에도 제니는 열심히 진료를 하고, 삶을 이어나간다. 제니가 만나는 사람들도 일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니가 만난 이들은 일상에 가려진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었다. 신분을 숨기고 성매매를 했던 ‘언노운 걸’을 비롯하여 심한 상처를 입고도 병원 치료를 하지 못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 다친 발 때문에 연금을 받으러 가지 못하는 노인 등 ‘언노운 걸’을 밝히려는 과정에는 또 다른 사회의 외면을 받고 있는 이들이 즐비한다. 결국 그들 또한 또 다른 ‘언노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닥쳐도 그들은 언제나 ‘언노운’으로 존재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상에 가려져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끝난 게 아니니까 우리가 이렇게 괴롭겠죠”

소녀가 죽었으니 다 끝났다는 대사에 주인공은 답한다. 끝난 게 아니니까 우리가 이렇게 괴롭다고. ‘진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결국 제니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끈질기게 사건을 쫓는 제니와 그녀와 마주하는 사람들을 담은 카메라는 시종일관 흔들리고 있다. 그 흔들림은 포장된 죄의식을 찾아내려는 듯 불안하기만 하다.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 제니는 그녀를 짓누르던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까? 죄의식이라는 양심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익명에 가려진 사회의 이면들은 우리 가까이에 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유진 교수  ujin@kuci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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