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17만 명의 고려인들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등지로 강제 이주된다.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다. 오랫동안 고려인들의 이산 흔적을 쫓았던 김소영 감독이 담은 고려인들의 모습은 지금껏 우리가 잊고 지냈던 우리들의 아픈 역사였다.

 

고려인의 삶

이 다큐멘터리는 연해주에 있던 고려극장의 배우들이 이산 이후 카자흐스탄에 세웠던 고려극장과 그곳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예술가의 삶을 통해서 ‘고려인’의 삶의 발자취를 쫓는다. ‘고려인’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겐 낯설지도 모른다.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국가에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라고 한다. 낯설게 느꼈던 ‘고려인’을 다룬 이 영화에는 낯설지 않은 ‘우리’의 과거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고려인 강제 이주가 시작된 이후 80주년 만에 세상에 소개되었다. 현재 ‘재외동포법’상으로 고려인 부모와 조부모까지만 동포로 인정이 되고 자녀 세대인 4세대들은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만 18세가 되면 강제출국을 해야 한다. 소련 붕괴 이후 한국을 찾은 고려인 동포는 현재 4만 명에 이르지만 수 많은 고려인들이 불법체류자의 신분일 수밖에 없다. 합법적 체류 자격 획들을 위한 ‘고려인 특별법’을 개정 추진 중이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고려극장의 디바 이함덕과 방 타라마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기관 중 하나로, 세계 유일의 고려인 민족 극장이다. 1932년 창립된 이후 200편이 넘는 연극과 음악을 공연해 왔으며 처음 연해주에서 창단했으나 1937년 강제 이주 이후 현재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극장에는 이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주의 아픔과 고난을 견뎌내야 했으며,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 곳이 바로 고려극장이었다. 고려극장이 배출한 고려극장의 창단 멤버이자 초대 ‘춘향’역을 맡았던 전설의 이함덕과, 그녀의 제자이자 아직 살아있는 고려극장의 대표 디바 방 타마라를 통해 영화는 고려인들의 발자취를 쫓는다.

 

상실의 시대, 위로의 소리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아픔을 지닌 고려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베리아 벌판으로 고려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연을 했던 두 여성이 있었다. 그들이 찾아오는 날은 아주 큰 명절과도 같았다는 사람들의 회상을 보더라도 절망적인 삶을 살았던 고려인들에게 그녀들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으로는 처음으로 인민배우로 인정받은 이함덕과 그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1970, 80년대 고려 극장의 디바인 방타마라의 존재는 단순한 예술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음악을 통해서 많은 고려인들의 삶을 위로했으며 역사와 아픔을 품은 존재였던 것이다.

고려인들의 삶을 위로했던 음악들은 영화의 곳곳에 등장한다. 이함덕으로부터 시작했던 노래는 방타라마, 방타라마의 딸, 단원들 등으로 시대를 흐르며 이어진다. 과거의 고려인들을 위로했던 노래는, 지금의 우리들을 포용한다. 노래와 인터뷰, 과거의 영상들 등이 어우러진 편집은, 영화의 이미지를 통해 또 다른 리듬을 자아내며, 그 리듬은 우리를 역사 앞에 마주 서게 만든다. 더구나 멈춘 시간을 부동의 카메라로 담아내는 이미지, 트래킹 쇼트로 정신없이 훑는 이미지 등 중간중간 등장하는 감독 특유의 실험 이미지들은 멈춤과 움직임을 자아내 더욱 역동적인 리듬을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된 이미지들은 역사의 편린을 더욱 강하게 응시하게 만드는 힘을 만들어 낸다. 강한 리듬과 소리를 통해 관객들을 역사의 문 앞에 세워놓고 과거를 향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의 음악들로 현재의 우리는 또 다시 위로받게 된다.

 

다큐멘터리의 힘

다큐멘터리는 실제 현실을 다룬다. 물론 현실이라는 것은 어떠한 주관과 시선으로 바라보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리어슨의 ‘다큐멘터리는 실재를 창조적으로 다루는 작업’이라는 정의는 다큐멘터리의 딜레마를 잘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실제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그 역사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나치 체제를 옹호하는 선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레니 리펜슈탈(LeniRiefenstahl)의 작품조차도 그 시대를 카메라로 담아내어 역사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에서도 과거 방 타마라의 자료화면은 중요한 역사의 증거다. 본인조차도 잊고 있었던 과거의 모습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어루만졌던 소리를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생생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을 넘나드는 경험일 것이다. 저마다 다른 감동으로 그 시간과 조우할 것이며, 어떠한 역사를 살아 내었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위로가 건네질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와 만나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경이롭게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바라봄으로써 지금 우리가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일들에 대해 보다 밀접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들과 해결해야 하는 현재를 통찰하는 계기와 시선을 제공한다. 고려인들의 현재를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통해 밀접하게 이해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통찰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다큐멘터리가 주는 힘으로 우리는 더욱 현실과 밀접해 진 것이다.

젠더, 공간, 민족을 끌어안는 ‘트랜스’(trans)를 중시하는 감독답게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이미지와 소리로 과거와 현재, 즉 고려인들의 삶과 지금 우리의 삶을 공유하게 만들었으며, 지금의 우리가 과거와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거 그들의 정착을 기념한 기념비를 비추던 불빛처럼 희미하게나마 밝게 빛을 내며 지금 우리에게 그들의 삶과 존재를 증명하며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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