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홍예교(교수기고)
세종시대와 인재 등용 함께하는 정치의 표본
신병주(문과대ㆍ사학과)교수 | 승인 2017.08.28 09:30
신병주(문과대ㆍ사학과)교수

왕으로서 정치가로서 세종의 위대함을 부인하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문자인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백성들을 위한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등의 농서와 의서 간행, 장영실의 발탁과 해시계, 자격루, 측우기 등의 각종 과학기구들의 발명, 박연으로 대표되는 궁중 음악의 완성 등 세종 시대의 찬란한 성과들은 나열하기가 없을 정도이다. 북방 개척에도 힘을 기울여 4군 6진을 쌓아 압록강 두만강으로 경계가 이루어진 오늘날 한반도의 영토를 확정하는 등 세종시대의 면면을 들여 보노라면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면모를 확인하면서, f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식하게 된다.

 

세종의 리더십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함께하는’ 정치의 표방이었다. 자신이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였음에도 세종은 독단적으로 정국을 운영하지 않았다. 전국의 인재들을 불러 모으고 이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위에 제시한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공법이라는 토지 세법을 정할 때 17만 명에 이르는 백성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본 것이라든가, 집현전을 설치하여 최고의 인재들로 하여금 국가 정책을 만들게 한 것, 당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음악가 박연의 발탁은 왕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겠다는 세종의 리더십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김종서, 최윤덕과 같이 국방 개척에 소임을 다한 인물들이나, 황희, 맹사성, 유관, 허조와 같은 청백리 정승들이 세종 시대에 많이 등장하는 것도 정치가 자리를 잡고 도덕적으로 기강이 잡힌 시대상을 대변해주고 있다. 천민 출신 장영실과, 자신의 즉위에 반대파 황희의 정승 기용 사례에서는 능력을 최우선 기준으로 하여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인 세종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세종은 즉위 후 바로 집현전을 학문과 정책의 중심기구로 발전시켰다. ‘재행연소자(才行年少者)’라 하여 재주와 행실이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모았다.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 최항 등 세종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집현전을 중심으로 왕과 함께 시대적 현안들을 해결해 나갔다. 집현전이 위치했던 곳은 현재의 경복궁 수정전 자리로 왕이 집무하는 곳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집현전에 대한 세종의 배려는 이들에게 왕의 진상품인 귤을 하사하고 자유롭게 학문연구 분위기를 조성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세종은 스스로도 뛰어난 정치적 자질을 갖춘 왕이었지만 홀로 정책을 결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집현전과 같은 기구에서 배출된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반영했고, 세법 확정에서는 투표의 형식으로 백성들의 의견을 직접 물어보기도 했던 것이다.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최대한 양성하여, 15세기 당면한 역사적 과제를 실천한 세종. 함께하는 정치의 모범을 보인 세종의 사례는 현재의 정치에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신병주(문과대ㆍ사학과)교수  shinby7@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건국대학교 건대신문사
05029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120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5층 건대신문사
대표전화 : 02-450-3913  |  팩스 : 02-457-3963  |  창간년월일: 1955년 7월 16일  |  센터장 : 김동규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동규
Copyright © 2018 건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