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저물 무렵 한 역사 전문 방송에서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11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1000년 동안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인가?”하는 설문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가장 많은 역사학자들이 중요한 사건으로 꼽은 사건은 전쟁이나 혁명 같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구텐베르그에 의한 금속활자의 발명이었다. 역사 공부하면서 왜 금속활자가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않았을 지도 모르나 활자가 중요한 이유는 곧 대학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활자로 인해 책을 펴내는 비용이 극도로 절감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중요한 사건임이 틀림없다. 지식의 전파는 또 다른 지식의 생성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인류가 원시 상태에서 현 상태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조상들의 경험과 업적이 그 세대에서 소멸되지 않고 축적되어 후세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물리학자 뉴튼(Newton)은 “내가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건 거인의 어깨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If I have seen farther than others, it is because I was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말을 했다.

정말 멋있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난 천년을 빛낸 천재 중의 천재인 뉴튼보다 더 많은 물리학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뉴튼보다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뉴튼이라는 위대한 거인의 어깨를 딛고 서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뉴튼 이후의 물리학자들의 어깨도 딛고 서 있다.

이미 돌아가신 거인들이, 그리고 살아있는 거인들이 자신의 지식을 책으로 남기고 있다. 그 덕택에 우리는 거인의 어깨를 디딜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구텐베르그 이전에도 책은 많이 있었지만 만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고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없었다. 그런 현실을 극적으로 바꾸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거인의 어깨를 빌려준 것, 그것이 바로 활자의 위대함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야 말로 나를 키우는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 것인가.

지식의 전달 수단은 21세기 들어 더욱 다양해지고 저렴해졌다. 달리 말하자면 21세기는 어느 때보다 자신을 키우기 적당한 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학령인구의 감소와 취업의 어려움으로 과거에 비해 많이 움츠려 들기는 했지만 대학은 많은 자유를 주는 진정 축복 받은 공간이다. 이렇게 축복받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학생들이 더 많은 거인들을 만나고 그 어깨를 디디기고, 마침내 그 곳으로부터 도약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누가 거인인지를 잘 모르겠는 학생들을 위해 한 마디만 더 한다. 교수 방문을 두드려 보라. 교수는 그런 거 하라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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