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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못 배운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정치, 대의민주주의
박현수(정치대·정외3) | 승인 2017.09.26 14:00

‘평등’이라는 단어는 매력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에서는 모두가 행복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부자와 빈자,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여부에 상관없이 모두의 이익이 정치적으로 대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현대정치의 핵심 주체인 정당이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 속에서 모든 시민들의 이익을 넓게 대표하고 조직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당은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을 대변해야 한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은 경제, 교육, 사회, 문화 대부분의 영역에서 스스로의 삶을 지킬 자산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사회적 소외계층은 그렇지 않다. 정치가 외면하면 그들은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어렵게 된다. 오늘날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은 정치가 사회적 소외계층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지 못해서이다.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하게 되면 국민들의 실질적인 의사가 정치에 반영될 수는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모든’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주된 수혜자는 ‘교육 받은 중산층’ 이상의 국민들이다. 그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있으며 복잡한 정치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학습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회적 소외계층’들은 직접민주주의를 하게 된다면 그들의 목소리는 정치의 공론의 장에서 묻히게 될 것이다.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또한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노동자가 생산의 역할을 대신하고 여성이 재생산의 역할을 맡아주었기 때문이다. 직접 공적 결정을 하고 공적 업무를 담당하려면 여가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그런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계층은 ‘교육받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일 뿐이다.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투표율이 낮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참여율’ 조차 그러한데,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사회적 소외계층 한 명 한 명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다. 그들의 이해관계를 결집하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고,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의미이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사회적 소외계층들의 이익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이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만이 정치에 참여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소외된다면, 정치적 평등은 요원해질 뿐이다.

박현수(정치대·정외3)  kucorehyuns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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