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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항쟁 31주년, 민주주의 외친 그들은 아직도 빨갱이‘떳떳한 부모’가 되기 위해... 재심 청구 추진
최의종 기자 | 승인 2017.11.08 18:44
지난 28일 건대항쟁 기림상 앞에서 '건대항쟁 3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미 빨갱이라고 낙인찍은 상태에서 수사를 했습니다, 수사과정은 공산주의자임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과 강제자백을 통한 조작 그 자체였습니다” 10.28건대항쟁계승사업회 이상근 공동위원장은 ‘10.28건대항쟁은 당시 군부독재가 진압, 연행, 수사, 실형선고 모든 단계를 계획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 공동위원장은 건대항쟁이 당시 공안 정국에서 군사정권의 지속적인 집권을 위해 국민들을 호도하기 위해 키운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를 통한 민주화 요구를 막기 위해 언론을 통제해 ‘북한이 금강산댐을 방류해 수공을 계획하고 19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 한다’고 선동했다. 이후 애국학생투쟁연합(이하 애학투)의 반외세 반독재에 대한 시위를 ‘북한의 수공과 함께 빨갱이들이 선동한다’며 사건을 키워 강제 진압했다.

30여년이 지난 현재 시위참여자들은 과거 선고를 부당하다고 보고 다양한 ‘역사 바로 잡기 활동’을 하고 있다. 이에 건대항쟁 30주년이었던 지난 해 10.28건대항쟁계승사업회를 창립했으며 지난 28일 31주년 건대항쟁기념식에서 첫 번째 계승사업으로 건대항쟁 참가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 청구를 하기로 했다.

 

1265명 구속되고 최종 395명은 국가보안법과 폭력행위 등으로 징역형과 집행유예

건대항쟁 당시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525명이 연행돼 1285명이 구속연장이 신청됐고 영장이 신청된 학생 중 482명의 여학생이 포함됐다. 우리대학 학생 111명이 당시 구속됐으며, 서울대 180명, 연세대 115명, 고려대 161명 등 전국 대학생 1265명이 최종 구속이 됐다. 구속된 시위참가자 중 1차로 11월 20일 413명이 기소유예로 석방됐고, 2차로 26일 여학생 195명이 석방됐다. 이후 12월 2일 추가로 282명이 석방됐고 최종 395명이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애학투를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단체로 규정했다. 당시 구속 기소된 395명 중 △국가보안법위반죄 34명 △방화죄 4명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특수공무집행 방해치상죄 239명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및 집시법 위반죄 118명 △이적단체 구성 죄 10명이 적용됐다. 법원에서는 이들에게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결 근거는 애학투의 이적성, 북한 동조세력의 폭력행위이다.

건대항쟁 시위참가자들은 집시법 위반, 방화죄 등은 성립하지만 국가보안법과 애학투의 이적성에 관한 처벌은 정권에서 악의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최종 법원 판결문을 보면 각 개인들의 판결문이 굉장히 내용이 비슷하며, 개인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모두 애학투의 이적성에 대한 관련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강제 자백을 통한 진술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건의 조작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원 검토, 당시 수사기록물을 통해 재심청구 추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는 10.28건대항쟁계승사업회의 재심 청구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는 각 개인들의 판결문을 보면 공통적으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이라는 문구가 있으며 이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민변은 건대항쟁계승사업회를 통해 수사기록물과 판결문을 입수하여 재심 청구를 통해 명예 회복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또한 민변은 계승사업회를 통해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들의 판결문만을 확보한 상태이지만 실형을 받은 사람의 판결문을 확보하면 재심 청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10.28건대계승사업회는 서울지방검찰청과 국가기록원을 통해 수사기록물을 취합하고, 법원을 통해 판결기록을 찾고 있다. 하지만 수사기록물이 파기돼 쉽지만은 않다. 우리대학 동문인 계승사업회 사무국 백인숙 간사(원예·89)는 건대항쟁 관련 지방검찰청에 자료 요청을 하고 있지만 이미 수사기록물이 파기돼 사건 번호를 입력해도 열람이 되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서부, 동부, 남부지검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사업회는 남은 북부지검의 기록물을 통해서라도 사건에 대한 조작성과 부당성을 입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사업회는 수사기록물 뿐 판결기록물에서 수사기록물이 포함됐기 때문에 판결기록물 취합에도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재심청구가 단순한 명예회복이 아닌 이유

건대항쟁계승사업회 홍보실장이기도 한 뉴스플러스 이철원 편집국장(당시 국민대학교 무역학과 84학번)은 이번 재심청구를 통해 가장 바라는 점은 ‘떳떳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식들이 당시 빨갱이라고 보도했던 언론 보도 자료를 봤을 때 가장 할 말이 없다고 한다. 6월 항쟁 이후 사회가 많이 민주화가 됐지만 아직도 빨갱이라는 기록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건대항쟁을 주도한 애학투가 이적성을 띄는 단체로 보도됐지만 실제로는 역사적 맥락과 증언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이었다. 1974년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이 재조사가 이루어져 2009년 9월 법원에 의해 관련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우리대학 동문인 이중기(물리·87) 10.28건대항쟁기념사업회 공동위원장은 ‘민청학련 사건처럼 건대항쟁 역시 집권 세력이 조작과 강압으로 탄압한 사건이기 때문에 재심청구는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라고 건대항쟁 재심청구의 의미를 밝혔다.

최의종 기자  chldmlwhd731@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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