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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빛 누런 하늘 아래 오늘도 일본대사관 앞에서…수요집회 현장스케치
김영경 기자 | 승인 2004.03.02 00:00

여기저기서 번쩍이며 터지는 후레쉬가 간신히 누런 하늘을 밝히고 있는 이곳은 597차 수요집회가 열리는 일본 대사관 앞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방송국 기자들과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주변이 웅성거린다.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일장기, 건물을 등지고 할머니들을 향해 무표정으로 선 전경들, 지난 집회보다 줄어든 기자들. 12시 정각, 오늘도 어김없이 힘든 걸음을 하신 할머니들. 그 뒤로 어린 학생들과 얇은 수녀복 차림의 수녀들이 피켓을 들고 서있다.

“이번 사건에 국민들이 가져준 관심을 보며 우리가 외롭게 싸워왔던게 아니구나, 잘 싸워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라는 윤미향씨의 말로 오늘 집회가 시작됐다. 윤씨는 12년 동안 할머니들과 수요집회를 함께 해왔다. “처음 집회를 시작할 당시 딸이 뱃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수요 집회 나이만큼 열두 살을 먹었어요”라고 그간의 세월을 말한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잘 자라는 동안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실.

연세대 노래패 학생들이 할머니들을 위해 즉석 공연을 연다. “할머니 살아 생전에 해결해야만 해요. 할머니, 건강하시고 힘내세요”라며 힘이 되는 응원에 대견한 듯 활짝 웃으시는 할머니들. 안정은(59세)씨의 단소공연이 이어진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어릴 적부터 온 국민이 부르며 자라온 ‘반달’. 할머니, 학생, 기자 할 것 없이 모두 흥얼거리는 모습에서 우리가 한 민족임을 마음 깊이 느낀다. 안씨는 할머니들께 우리 민족의 어린 동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때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앞으로 나선다. “나, 여기 와주신 여러분들하고 정들고 싶어요. 자주 봐야 정도 들겠지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우리들과 정이 들기도 전에 일본 대사관과 정이 들어 버렸단다. “해결될 때까지 일본 대사관과 함께 할 것”이라며 힘든 이 길을 계속하리라 오늘도 다짐한다. “이승연 사건 보도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나왔다”는 정진진(고려대 3)양은 “수요집회를 알고 있는 대학생은 많지만 직접 참여하는 학생은 드물다”며 “엉덩이를 떼고 모두 나와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집회가 끝난 후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리는 학생이 있다. “할머니 한 분과 직접 대화를 나눴는데 너무 죄송해서 그런데요”라고 친구 신영진 군이 대신 말해준다. 신군은 “작년 이맘때도 왔었는데 올해는 이승연 사건까지 터져 씁쓸하기도 하고 할머니들 걱정이 많이 되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누런 하늘처럼 뿌옇고 답답하기만 했던 할머니들의 가슴. 여기에 네티즌들, 나아가 온 국민이 ‘관심’이라는 작은 불을 반짝이고 있다. ‘뭉쳐야 산다’란 말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모두 모이면 태양보다 더 뜨거운 법이다. 이제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온기가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김영경 기자  purplemin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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