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를 입학하면 피해갈 수 없는 과목이 있다. 교양필수 과목인 ‘창조적 사고와 표현’과 ‘비판적 사고와 토론’ 이다. 그래서 이 두 교양과목은 학생들에게 신선하거나 지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봄 학기는 정신이 없다. 왜냐고? 가을학기보다 구성원의 포지션이 아노미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인적 구성을 보자면, 고등학교 4학년처럼 보이는 새내기들이거나 이제 막 제대해서 군기가 빠지지 않은, 그리하여 민간인인지 군인인지 알 수 없는 복학생들과 한참이나 미루어 두었다 할 수 없이 이 과목을 들을 수밖에 없는 졸업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꼭 물어보는 것이 하나 있다. ‘비판적 사고와 토론’을 듣지 않고 ‘창사표(창조적 사고와 표현)’을 왜 들으려 하느냐는 것이다. ‘창사표’를 수강하려는 학생들의 대개는 자신이 비판적 사고와 토론이 잘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 또는 창조적 사고는 조금 된다는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학구파는 글을 좀 잘 써보기 위해 수강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아, 마지막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수강신청이 이 시간밖에 안되기 때문에 얼떨결에 들어온 학생들이다.(마지막 이유가 진짜 수강의 이유라면 비극은 시작된다. 어떤 과목을 수강할 때에는 반드시 교수자가 정성껏 그리고 진심으로 올린 강의계획서를 참고하여 읽어보고 수강해야 된다. 이는 신상 물품을 구입하는 것에 비유하자면, 사용설명서를 반드시 읽어보고 이 물품을 구입할지 말지 결정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객의 변심은 반품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과목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업을 받게 되면 교수자의 열정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그 과목을 성실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궁극에는 만족스런 결과를 교수자나 학생 모두가 추수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강의계획서를 학생이 숙지하는 것은 학생과 교수의 권리를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

자, 동상이몽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창조적 사고와 표현은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인 콘셉트로 논리정연하게 표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때 표현은 글과 말, 두 가지 것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창의적인 생각을 기발하게 표현하는데 급급하여 논리성이나 맥락을 무시한 채, 소설이나 영화를 만드는 어느 쯤으로 창조성을 생각하는 듯하다. 소설과 영화야말로 촘촘한 논리구조 위에 빛을 발하는 격조 있는 장르다. 더욱이 ‘창사표’라는 과목은 논리적인 사고와 관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착각은 자유다’.

아무리 창의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논리’라는 레일을 올라타고 달려야 한다. 이때 ‘논리’의 각도를 달리하면 재미있는 장치가 된다. 더욱이 학년, 전공, 나이, 성별이 모두 다른 이들이 ‘창조적 사고’와 ‘표현’을 하고자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함께 공부하는 자리이기에 ‘논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다.

따라서 ‘창사표’와 대학 학문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첫째, 그동안 마음대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고 다른 각도에서 대상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회의하고 의심하는 데서부터 창의성은 출발한다. 익숙했던 문맥들을 곱씹어 보고, 질문이라곤 전혀 없었던 무지에서 걸어 나와 호기심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대학이라는 커뮤니티에서 학문을 하기위해서는 반드시 숙지해야 할 일이다. 둘째, 셋이 걸어가면 그 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는 성현의 말, 기억하시는지. 다양한 인적 구성원이 나의 스승이자 텍스트가 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모둠과제 형식의 대학과제나 활동들은 모두 ‘필유아사’ 그 자체이다. 구성원의 경험이나 전공에 따라 퍼즐을 함께 맞추는 것만으로도 창의성은 학습될 수 있다. 그리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색다른 경험으로 봄을 느꼈던 어느 복학생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다양한 창의성을 그대들에게 독려하려 한다.

이 글은 ‘봄’이라는 진부한 주제로 진부하지 않은 글을 A4지 한 장으로 글을 써내라는 과제에서 ‘한 그릇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제출된 학생의 리포트다. 필자가 만나본 진부한 봄의 이야기를 새로운 프레임으로 만나게 해 준 멋진 글이기도 하다.

나는 남들보다 이렇게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깐 자연스럽게 밥은 건대 주변에서 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2,500원이라는 혁명적인 가격에 감탄하며 학생식당을 애용했다. 하지만 밥알 하나하나가 날리는 듯한 맛에 우리는 금방 학생식당에 질렸고, 결국 맛있고 싼 집을 찾아 건대 주변을 배회하게 되었다. ...(중략).... 문득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며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서게 된 골목, 그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에 끝에는 조그마한 일본식 돈부리집이 있었다. 처음 보는 가게였지만,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집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단순했다. 가츠동, 오야꼬동, 도리동, 메뉴는 이 3개가 다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츠동을 주문하였다. 잠시 뒤 투박하게 생긴 사기그릇에 방금 튀긴듯한 돈까스가 그 위에 황금색 노른자를 가진 계란을 입고 밥 위에 올려져서 나왔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돈까스를 한 조각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순간, 입안 가득히 튀김 옷의 고소한 맛과 이게 돼지고기가 맛나 싶을 정도로 잡내 없고 깔끔한 맛이 나의 입안에 가득 퍼졌다. 따뜻한 돈까스와 밥이 아직은 춥기만 한 3월의 한기를 단숨에 녹여주는 듯하였다. 몇 번을 먹어도 느껴지는 그 따스함은 마치 봄날의 기분 좋은 햇살을 쬐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한 그릇의 봄은 단숨에 비어졌다.

이 봄, 새내기를 비롯한 제대로 인생을 계획한 모든 학생들에게 한 그릇의 봄을 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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