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갈등의 정치를 넘어, 협치의 시간으로
길고 격렬했던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재명 정부가 지난 4일부로 출범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순간을 단순한 ‘정권 교체’로만 받아들여선 안된다.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의 정치 풍경은 지나치게 격렬했고, 때로는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헌법기관 내부에서조차 충돌이 벌어졌고, 국민은 정치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금, 이제는 갈등을 넘어 진정한 협치의 정치를 펼칠 때다.
2017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고, 이후 보수·진보 양 진영은 양극화된 대결 구도를 강화해왔다. 지난해에는 이러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12.3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며, 정치는 그 본래의 역할을 상실한 채 ‘국가를 두 동강 내려는 투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는 공동선을 위한 지혜로운 통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가 과연 그러한 이상에 부합했는가? 지금까지 정치의 언어는 너무도 자극적이었고 타협보다는 배제를, 설득보다는 공격을 우선시했다. 국민은 반복되는 갈등과 정쟁에 지쳤고, 정치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특히 최근 선거에서 20대 유권자의 표심이 극단적으로 나뉜 현상은 단순한 ‘갈라치기’의 결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젠더 △계층 △가치관의 차이는 이 세대가 처한 현실과 정치에 대한 기대의 차이를 반영한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 공정한 경쟁의 토대, 미래에 대한 실질적 안전망을 원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단순히 전략적 변수로만 다루고 있지는 않은가. 정치는 왜 이들이 분열되었는지를 직시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이들을 협치의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정치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초저출산 △고령화 △청년 일자리 부족 △지역 소멸 △기후 위기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서로 얽혀 있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당 간 초당적 연대가 불가피하다.
압도적 여대야소 정국과 함께하는 이번 정부는 야당을 국정의 ‘방해자’가 아닌 ‘동반자’로 대우하고, 국정의 주요 이슈를 함께 조율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야당 역시 민의를 받들어 건전한 비판과 생산적 대안을 통해 국정의 동반자로 나서야 한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 협치의 실현에 달려 있다.
시민사회 역시 정치권의 협치를 적극 요구하고, 감시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정치권이 협치를 주저하는 배경에는, 갈등 구도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치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국민이어야 한다. 정파의 이해득실을 넘어서 국민 다수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존재 이유임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이다.
갈등의 정치를 반복할지, 협치의 정치를 새로 쓸지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는 갈등을 멈추고 국민을 위한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선택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며, 이재명 정부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