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심대] 존재를 향하여 축하를

2025-10-02     건대신문사
최지인(문과대·국문24)

 

현재 우리는 성과에 대한 판단들이 난무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성과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 이러한 방식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성과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요즘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던 중 성과에 익숙해져 본인조차 섬찟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서로를 향해 “졸업 축하해!”라고 외치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던 1년과, 반복되는 지침에 익숙해졌던 1년, 그리고 이 시간들을 정리하여 새로운 출발 앞에 놓았던 1년. 이 3년의 시간 끝에 우리는 졸업을 하게 됐고, 서로를 향해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축하들이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깨달음과 함께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몰려왔다. 그저 3년의 시간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축하할 일이지만, 판단과 평가의 연속이던 3년의 시간이 명분 없는 축하를 낯설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는 존재 자체로 축하받고, 돌잡이에서는 그저 무언가를 집어서 축하받던 우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성과로 축하의 여부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일 수 있지만 가끔은 존재의 소중함보다 성과의 소중함에 치중해 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뿐 아니라 대외활동, 각종 자격증 취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과를 위해 달려가는 시기를 살아내고 있다. 그런 여러분께 전하고 싶다. 성과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더라도 자신의 존재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태어났기 때문에 축하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성과를 평가하고 성공을 위해 달려가기에 바쁜 세상에서 앞으로 가끔은 이유 없이 존재의 소중함을 느껴 보고 서로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다. 더운 날씨에 지쳤던 마음들을 시원한 공기와 함께 풀어 보자.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 평소 읽어 보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등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며 살아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지만 이러한 마음과 달리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축하할 여유는 없다는 듯 정답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교육이, 취업시장이, 반복적으로 답을 요구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얼마 전 다녀온 지구 반대편 나라에선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파는 상인들, 곤돌라를 움직이는 뱃사공 등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삶들을 마주하고 나서야 인생에 있어 정답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반복해서 정답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 구조 안에서 많은 형식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상적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 구조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진로는 고민되고 할 일은 많지만, 청춘의 추억도 간직하고픈 시기. 설렘과 막막함 사이에서 아주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느끼는 시기이다. 인생에 빈칸으로 남아 있는 정답란은 여전히 채점 대상일지라도 태어나자마자 축하로 시작한 인생들이기에, 그렇지 않더라도 축하받을 만한 소중한 삶들이기에 서로를 축하하는 일명 ‘프로 축하러’가 되어 나아가자. 그 축하하는 마음,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데에 충분한 고급 연료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