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UN 기후변화협의체는 IPCC 6차 보고서를 통해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인간’을 꼽았다. 보고서는 지난 170년간의 지구 온도 변화 그래프를 근거로 들며 인간의 모든 행동마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탄소가 지구 온도를 상승시킨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막중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탄소 중립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쓰레기 대란’을 겪은 데 이어 코로나19 상황 속 일회용품 쓰레기 급증 현상을 몸소 체감하게 되면서 ‘제로 웨이스트’ 문화가 급부상하고 있다.
본질은 아나바다 운동
‘제로 웨이스트 국제 동맹(Zero Waste International Alliance)’에서 정의한 ‘제로 웨이스트’란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태우지 않고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환경운동가 비 존슨이 제시한 5가지 기본 원칙(5R)으로 연결된다.
제로 웨이스트는 우리나라에서 IMF 이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확산됐던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과 본질이 비슷하다. 쓸 수 있는 물건은 다시 쓰고 고쳐 쓰면서 새로운 쓰레기 발생을 줄이고 이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왜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를 실천해야 할까?
지난 2018년 중국의 폐자재 수입 중단 선언 이후 우리나라 시민들의 환경 의식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내놓아도 수거되지 않는 쓰레기들을 보며 분리 배출된 쓰레기는 재활용되리라는 믿음, 그래서 쓰레기의 양과 환경피해는 무관하다는 믿음이 깨졌다. 특히 플라스틱은 쓰레기 문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플라스틱은 우리의 증손의 증손이 죽을 때까지도 썩지 않는다. 잘게 쪼개진 미세 플라스틱은 인간을 넘어서 지구 생태계 전체에 잔류한다. 둘째, 우리 생활 속 플라스틱은 일회용으로 제작된다. 분리배출만 잘하면 될 줄 알았던 재활용은 사실 허상이었다. 2018년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86.1%인데, 여기서 재활용률은 ‘재활용 시설로 반입된 양’을 뜻할 뿐 재생물질 제품으로의 재활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질적인 쓰레기 문제 해결방법은 배출량 자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소소한 습관
① 다회용기 사용하기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쓰레기가 증가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달문화’다.* 배달 대신 집에 있는 다회용기를 챙겨 가까운 곳에서 포장해온다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자주 사용하는 샴푸, 세제를 구매할 때도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데, ‘리필 스테이션’을 이용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리필 스테이션은 △샴푸 △세제, 나아가 △쌀 △원두 등을 원하는 만큼 담아가고 가격을 그램(g) 단위로 책정하는 곳으로 필요한 내용물만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해 불필요한 플라스틱 용기와 포장재 사용을 줄여준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각 구청이 운영하는 재활용품 선별장의 2020년 2월 하루 평균 재활용 쓰레기 반입량은 1200t을 넘었다. 2019년 같은 기간에는 하루 평균 1000t가량이었다. 또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년도 4분기에 비해 20년도 1분기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2800억 원가량 늘어났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일회용 위생용품 생산량은 2019년에 비해 2020년에 1.2% 증가, 포크와 젓가락은 각각 64,1%, 60.5% 증가했다.
② 지구에 영향 덜 주는 제품 구매하기
생산부터 판매까지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상품이 있다. △샴푸바 △대나무 칫솔 △다회용 빨대 △천연 수세미 등이 그 예시다. 샴푸가 담긴 플라스틱 펌핑 용기는 금속 스프링과 결합해 있어 제대로 된 분리배출이 어렵다. 반면 샴푸바는 용기가 필요 없는 비누 형태로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고 실리콘, 계면활성제 등 수질오염을 유발하는 화학성분도 포함돼있지 않다. 대나무 칫솔을 비롯한 다른 제품들 역시 생분해성 물질이나 불필요한 포장재를 줄여 자연 친화적이다.
③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
플라스틱은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하는 물질이다. 무(無)라벨 생수병이나 에코백 사용을 통해 줄일 수는 있지만 일상에서 한 번씩은 필연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미 내 손에 들어온 플라스틱을 더 똑똑하게 사용해보자. 원래 비닐봉지는 쉽게 버려지는 종이봉투를 대체하고자 생겨났다. 잘 찢어지지 않고 세척도 쉬운 비닐봉지를 재사용해 쓰레기가 되는 것을 늦출 수 있다.
MZ세대의 제로 웨이스트
우리나라의 제로 웨이스트 문화는 2018년 ‘용기내챌린지’를 통해 확산됐다. ‘용기내챌린지’는 포장 시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고자 비닐, 플라스틱과 같은 포장 용기 대신 다회용기 및 천 주머니를 사용하는 캠페인이다. ‘용기내챌린지’를 비롯해 제로 웨이스트 문화는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는데, SNS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MZ세대(1980년 초에서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가 이 중심에 있었다.
본지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 중인 MZ세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대학 최주인(상생대·산조20) 학우는 “기후위기를 야기한 산업의 전유물로 편리함을 누린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며 제로 웨이스트 실천 이유를 밝혔다. 김보민(24)씨도 전 세대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덧붙여 “나부터 실천하고 이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 선한 영향력이 된다면 언젠가 모든 사람이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 대해선 모두가 입을 모아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길 권했다. 이지현(경영대·경영19) 학우는 “거창하게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며 “배달 주문 시 ‘수저, 포크 필요 없음’을 체크하는 것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것”이라 말했다. 한가경(22)씨는 “음식 포장을 위해 다회용기를 들고 가거나 우유팩을 모아 재생휴지를 만드는 주민센터에 가져간다”며 “처음엔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젠 습관이 됐다”고 전했다.
MZ세대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소비하는 미닝아웃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다. 이는 제로 웨이스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나아가 기업, 정부를 포함한 전 세대가 기후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 씨는 “MZ세대는 가치소비를 통해 세상을 바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개인 소비자가 바뀌면 세상도 바뀔 것”이라며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지속적인 실천을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