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정국에 뒤따르는 교착 난관을 타개하는 해법이 군사력을 앞세우는 ‘계엄’이었다는 점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가 정치를 통해 정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강압과 억제에 기반한 윤석열 대통령의 전근대적 시각이 다시금 놀라웠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그들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는 법적 권한을 신중히 사용하려는 ‘제도적 자제’와 상대편을 통치할 자격을 갖춘 경쟁 상대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이라는 두 가지 규범에 따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치부하면서 ‘비상계엄’을 꺼내 든 것은 규범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독재의 ‘경계를 넘어서는’ 명백한 순간”을 여실히 보여준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선출된 권력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저자들의 주장을 방증하는 하나의 사례가 돼버렸다.

이미 10월 말부터 대학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두고 쏟아져 나온 시국선언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는 점점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일, 우리 대학 교수·연구자 237명도 “초현실적인 비상계엄으로 반헌법적 내란을 획책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요구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국민의 시위 열기도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7일, 탄핵소추안 통과를 촉구한 국회 앞 촛불시위는 주최 측 추산 누적 인원 100만 명, 경찰 추산 순간 최대 인원 16만 명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경제 상황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지난 9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최저치를 경신했고 환율도 같은 날 15시 30분 기준 1,437원을 나타내며 약 2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비상계엄 사태 정국의 해법은 대통령의 즉각적 퇴진 혹은 탄핵밖에 없다. 국민도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고 있다.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6~7일 실시한 국민일보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응답자 74%가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87%가 계엄 조치를 지지하지 않으며, 국회 권한 제한을 위한 ‘반국가적 내란행위’라는데 응답자 71%가 공감했다.

물론 향후 많은 정부가 ‘탄핵의 굴레’ 속에 빠져들 것이라는 비판은 뼈아프다. 정서적 양극화 속 탄핵이 또 다른 정치 문제의 도화선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탄핵의 굴레를 우려해 ‘대표자의 국민 배반 행위’를 묵인한다면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 헌정의 대원칙을 져버리게 된다. 소탐대실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표자는 법적 책임 외에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국민을 배반한 대표자에게 명예로운 퇴진은 있을 수 없으며, 자신 스스로 희생을 감내하거나 또 다른 대표자인 국회의원에 의해 탄핵 소추되는 길밖에 없다.

다시금 돌아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기존 정치 지도자가 정치적 책임을 저버릴 때 그 사회는 전제주의로 들어서는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고 했다. 민주화 공고화 이전으로 돌이켜 국민을 배반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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