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유행어는 ‘중립’일지 모른다. 한쪽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한쪽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 그런데 언론이 아무 판단도 하지 않은 채 그 둘을 ‘양측’이라 부르고 ‘양측의 주장’을 나열하며 책임을 회피할 때 그 중립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비정상을 정상처럼 포장하는 적극적 정치 행위이며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다.
평화로운 한밤중에 선포된 비상계엄 그로 인한 대통령 탄핵, 이어진 조기 대선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헌정 질서 회복과 민주주의 재건을 향한 국민적 열망이 응집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선거와 같은 절차적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시민의 감시와 참여가 있어야 비로소 살아 있는 민주주의가 된다. 이때 언론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를 넘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언론은 기계적 중립이라는 껍질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양측의 입장을 들려주었다’는 말은 균형 있어 보이지만 결국 진실의 무게를 지워버리는 편리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혐오를 사실처럼 다루고, 거짓을 의견처럼 포장하며, 폭력을 논쟁의 한 축으로 삼는 순간, 언론은 더 이상 공론장의 촉진자가 아닌 진실 왜곡의 공범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시민적 자질은 미디어 리터러시다. ‘뉴스를 읽는 법’은 곧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을 지닌 존재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 맞춤 정보를 반복 노출한다. 이것이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인지 지평을 좁히고, 세계관마저 타의에 의해 구조화한다. 이 구조는 정치 양극화, 젠더 갈등, 세대 분열을 더욱 심화시킨다. 갈라치기 정치는 필터 버블과 확증편향의 토양에서 더욱 극단화된다. 각 집단은 전혀 다른 현실을 믿고, 대화는 단절된 채 적대만 남는다. 언론이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양쪽 입장’이라는 이름 아래 중계하고 포장할 때, 우리는 더 깊은 분열의 늪으로 빠져든다.
제자 이전에 후배이기도 한 건국인에게 당부하고 싶다. 뉴스의 중립성을 판단할 때, 그 내용이 민주주의 원칙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기준으로 삼기 바란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에 있다. 그 존엄을 해치는 말과 행동에 중립을 가장해 마이크와 카메라를 넘기는 순간, 언론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편이 아니다. ‘누구나 말할 자유가 있다’는 말은 맞지만, 그것이 곧 ‘모든 말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비판없이 재생산되는 극단의 언어, 거짓을 유통하는 유튜브 알고리즘, 갈등을 소비하는 클릭 장사는 민주주의의 안녕을 위협한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라는 무책임한 구호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판단해야 하며, 시민은 언론을 감시할 줄 알아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민주주의를 향한 책임 있는 응시다. 좋은 언론은 ‘중립’으로 위장하지 않고, 진실의 편에 선다. 좋은 시민은 그 진실을 분별할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첫걸음이 건대신문을 손에 든 당신의 조용한 결심에서 시작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