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바뀐다는 세상에서, 이상하리만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시스템도 정교해졌지만, 여전히 ‘일하다 죽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달 19일 새벽,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고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2022년엔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23년엔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골절상이나 절단상 같은 사고는 그보다 더 빈번하다. 이대로라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사고 열흘 뒤인 지난달 29일, SPC 도세호 대표이사는 더불어민주당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진짜대한민국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노동본부’가 공동주최한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2022년부터 진행해 온 3년간 1천억 원 규모의 안정경영 투자 플랜을 확대·연장하겠다”며 설비 자동화와 안전 인력 강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역시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2022년 평택 SPL 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SPC 허영인 회장은 사과와 함께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3년간 1천억 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의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SPC는 지난해 2월까지 약 520억 원을 안전에 투자했으며, 주요 생산 시설에 대한 국제표준 안전 인증 취득 현황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SPC삼립에서 ‘또다시’ 노동자가 숨졌다. 사고가 날 때마다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이 쏟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현장은 다시 위험 속에 방치된다. 이처럼 반복되는 ‘닮은 꼴’ 사고는 SPC의 대책이 ‘수박 겉핥기’ 수준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2022년부터 시행된 이 법은 노동자 50인 이상인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경영 책임자에게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 사례는 드물다. 2022년 평택 SPL 공장 사망사고 당시 관련 임원들은 중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1억 원 등에 그쳤다. 이는 기업이 충분한 경각심을 갖기엔 턱없이 가벼운 수준이다. 고용노동부의 우리나라 산업재해현황 통계를 보면, 산업재해자수는 △2021년 122,713명 △2022년 130,348명 △2023년 136,796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법 시행 이후에도 사고가 줄지 않는 현실은 중처법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선, 사고 발생 시 강력한 처벌을 포함해 기업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우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윤이 생명보다 우선일 순 없다. 기업은 노동자의 생명을 경영의 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도 대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자세로 다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변화는 선언이 아니라 적극적 실천을 통해 증명돼야 한다.
우리 또한 더 이상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뎌져서는 안 된다. 산업재해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문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복되는 비극 앞에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날과 오늘 사이,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이 영영 반복되지 않도록 말이다. 더 이상 뉴스 헤드라인에서 ‘또다시’ 반복되는 산업재해 소식을 마주하지 않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