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축제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라 칭하고, 놀이가 문화 그 자체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생존과 무관한 비생산적 활동인 놀이를 통해 법, 예술, 종교 등 인류 문명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독일의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는 「바보들의 축제」에서 인간을 ‘축제하는 인간(Homo Festivus)’이라 칭했다. 그가 말하는 축제는 일상의 규범을 넘어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공동체가 되새기고 기억해야 할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의 본질적 행위이다.
놀이하는 인간과 축제하는 인간은 모두 ‘공동체성’을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호모 루덴스’는 규칙의 공유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한다. 놀이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로 자발적으로 동의하며 ‘우리’라는 소속감을 느끼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며 단단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반면 ‘호모 페스티부스’는 일상의 해체를 통해 공동체의 일체감을 회복시킨다. 신분을 넘어 동질성을 체험하고, 공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집단적 열광 속에서 개인들은 하나로 묶인다.
우리의 명절 추석은 이 두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한국적 축제의 원형이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며 손을 맞잡고 둥글게 도는 강강술래와 마을 장정들이 힘을 겨루는 씨름판은 명백한 ‘호모 루덴스’의 장으로, 공유된 규칙 안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동시에 다함께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는 행위는 ‘가족’이라는 원초적 소속감으로 돌아가는 신성한 ‘축제’의 시간이다. 이처럼 놀이와 축제의 조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라는 연대감을 회복한다.
우리 대학의 가을 축제인 ‘성신의 예술제’ 역시 이러한 이상적인 축제 모델의 연장선에 있다. 실제로 지난 2024년 건대신문에 실린 기사가 잘 설명하듯, 이 축제는 10.28 건대항쟁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기리는 신성한 추모의 장으로 시작하여 예술제로 발전한 건국대학교 만의 독자적인 가을행사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선배들의 후예’라는 집단 정체성을 확인하는 축제인 동시에 다양한 동아리 공연과 놀이가 가득한, ‘호모 루덴스’적 즐거움이 넘치는 일상 탈출의 공간이기도 하다. 즉, 성신의 예술제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공동의 의미와 ‘어떻게 즐길 것인가’라는 자발적 참여가 공존하는 축제였다. 이러한 가치가 흐려지고 있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올해, 우리에게는 ‘가을대동제 Fall in Konkuk’이라는 새로운 축제가 찾아왔다. 가장 큰 변화는 성신의 예술제에는 없던 다채로운 스타 가수들의 화려한 무대가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화려한 조명과 귀가 먹먹한 음악, 스타를 향한 함성 속에서 우리는 분명 짜릿한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호모 페스티부스’와 ‘호모 루덴스’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볼 때, 이 축제가 우리를 더 깊이 연결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축제가 끝나고 불 꺼진 무대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공동체 의식을 다질 것인가, 아니면 각자의 일상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인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우리가 직접 만들어 참여하는 축제, 관람객이 아닌 주인이 되는 진정한 ‘대동(大同)’의 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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