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대학 환경보건전공 교수, 환경과학자 안윤주
환경과학자 안윤주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열리며 모든 과학은 그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 들어섰다.
AI는 이제 단순한 연구의 도구가 아니라, 실험실 안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변수를 산출하며 인간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패턴을 찾아내는 능동적인 연구의 구성원이 되었다. AI는 데이터 속에서 질서를 읽어내고 예측을 통해 새로운 해답을 찾아내기도 하며, 그 결과 연구의 속도와 효율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 정교한 진보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AI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지만, 그 결과가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스스로 알지 못한다. 때때로 AI는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만들어내거나 오류를 진실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이른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 불리는 이런 현상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판단이 빠진 인식의 왜곡에서 비롯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과학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이 있고, 그 책임의 주체는 과학자다. 결국 과학을 움직이는 힘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해석하는 인간의 지성이다. 다시 말해 과학은 분석이 아니라 이해와 성찰의 과정이다.
과학의 역사는 언제나 ‘왜’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했고, 많은 발견은 수치보다 ‘이상한 변화’에 대한 직감에서 시작됐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이 살충제의 편리함 뒤에 감춰진 봄의 침묵을 들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생태계 파괴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 독성 시대에 던진 양심의 질문이었다. 2004년 영국의 해양생태학자 리처드 톰슨은 ‘Lost at Sea: Where is all the plastic?’ 논문에서 미세플라스틱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하며, 바다의 보이지 않는 오염의 존재를 의심하고 그 근원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과학자의 통찰에서 비롯된 발견이었다. 그리고 수서생태계 및 토양생태계에서 다양한 환경오염 물질의 영향을 탐색해 온 생태독성학자인 필자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오염의 경로나 수치가 아니었다. 그 속에서 드러난 것은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상호작용의 방식, 그리고 그 관계가 남긴 상처의 흔적이었다.
오늘의 환경과학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기후변화, 미세플라스틱, 생태독성, 자원순환 등 모든 문제가 수많은 데이터와 모델속에서 분석된다. 그 속에서 AI는 이제 강력한 조력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은 여전히 과학자의 손에 있다. AI가 기후시나리오를 계산하고 오염 확산을 예측할 수는 있어도 그 결과를 토대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과학자의 윤리와 판단에 달려 있다.
AI와 과학자의 관계는 우위나 대체가 아니라 상호작용과 균형이어야 한다. AI가 데이터를 처리하고 예측을 제시하면 과학자는 그 결과를 검증하고 그 속의 맥락을 읽어내야 한다. AI가 보여주는 패턴은 탐구의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니며, 과학의 본질은 분석이 아니라 이해이다. 결국 과학을 인간의 언어로 유지시키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지성’이다.
AI의 시대는 오히려 과학자의 책임을 더 무겁게 만든다.
인간은 이제 데이터의 관리자이자, 의미의 번역자이며, 지식의 윤리적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AI의 시대일수록 과학자는 더욱 주체적으로 서야 하며, 과학의 길 중심에는 언제나, “묻기를 멈추지 않는 인간”이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