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는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다. 다 합쳐야 7,000명이 안 되는 하버드 대학 학부생 중에서 그 강의는 수강생이 800명에 이른다. 이 강의의 주제는 정의로운 세계를 만드는 관점과 방법의 도덕적 토대다.

하지만 관념이 아니라 현실을 다룬다. 플라톤, 로크, 밀, 칸트 등의 고전을 읽고 그들의 철학이 지금 여기의 현실 세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강의하고 토론한다. 강의실에서 미진했던 토론은 기숙사에서 밤늦게까지 연장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에서 철학 전공이 인기라는 외신의 보도는 한국의 대학들에 충격이었을 것이다. 철학의 인기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신입사원 선발에서 철학 전공자들이 우대받는다는 가디언 지의 보도가 있다. 기업들이 현재 원하는 것은 단편적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선입견 없이 파악해서 열린 시각으로 접근하는 인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영준 선생이 올해 4월에 국내의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분이다.

‘실용’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그것도 미국을 이끌어갈 인재의 산실이라고 자처하는 하버드 대학에서 왜 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과학기술의 발전과 급격한 정보화 혹은 세계화로 대표되는 현대사회는 지식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에 따라 21세기는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는 수고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로움뿐만 아니라 유용함을 갖추어야만 한다. 새로움이란 과거의 것들과 비교해서 부여되는 성질이며, 유용함이란 문제 해결에 기여함으로써 부여되는 성질이다.

새로움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새로움이란 기존의 것을 변형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래서 흔히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다. 발상의 전환이란 이미 있는 것들의 관계를 다르게 구성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플라톤, 로크, 밀, 칸트와 같은 철학자들의 고전이 다시 읽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지성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고전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다시 음미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하지만 새롭다고 해서 모두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고는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유용함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고가 문제 해결에 유용한 사고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유용한 사고인지를 가리는 일은 평가를 요구하는 일이다. 이러한 평가는 논리적인 사고력과 치밀한 분석력 그리고 총체적인 통찰력, 다시 말해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에 주목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학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인 명료한 말하기와 글쓰기의 능력을 훈련시킨다. Law School, Medical School, MBA 지망생들까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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