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인지 올해 건대신문 문화상 시부문에 응모한 작품 대부분은 ‘고립’과 ‘쓸쓸함’, ‘망설임’에 집중되고 있다. 팬데믹이 지나고 사회가 빗장을 푼 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 때문이며 갈수록 분명해지는 자본주의 물신의 비인간적인 폭력과 위악(僞惡)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3년을 단절 속에서 살아온 만큼이나 이 사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망은 자못 크다. 필자에게 건너온 작품들은 모두 이러한 사태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또한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아울러 ‘고립’이 초래한 자기
텅 빈 거리에 여자아이가 홀로 서 있다. 이미 떠나보낸 그 아이가 길을 잃은 듯 다시 내 눈앞에 서 있다. 맞아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있지나는 다시금 아이에게 길을 제시해야만 한다. 작년의 내가 가르쳐준 지름길에서 아이는 다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어쩔 줄 모르는 발걸음으로 줄곧 이곳에서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길을 알려주고 싶다.아이 앞에 놓인 수많은 갈래들을 살피다 지름길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멈춘다. 그래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지그녀는 떠밀리듯 그 길에 오른다. 나는 내년 이맘때쯤 그녀
응모작 중에서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은 〈흐늘흐늘한 것들〉과 〈환의 천재〉 였다. 두 작품 모두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의 통찰을 보여줬고, 정직한 문장, 주제에 접근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환의 천재〉 는 익숙한 연애담으로 시작한다.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두 남녀의 관계는 이들의 아랫집에 펫숍이 들어오면서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펫숍은 ‘사랑’과 ‘소유’라는 오래된 질문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를 때, 너를 안다고 할 때, 과연 그 언어는 누구의 것이며 무엇을 소외시키는가. 사랑의 폭력성을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이거 책으로 너무 도망치는 거 아닌가?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을 조금 더 나중으로 미루고 소설을 읽던 중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책 읽는 것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제 취미란에는 독서가 빠졌습니다. 독서량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늘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찜찜함을 느꼈던 탓인 것 같습니다. 그 독서량이 마음이 힘들 때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등 특정한 이벤트가 있을 때 더 늘었기 때문입니다.올해는 유난히 해내야 하는 것, 선택해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는 건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몇 년이 지나도, 그때의 추억이 생생하게 느껴지니까.촬영한 사진을 보면 날개를 지닌 생물이라는 점에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그 순간순간을 포착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생명체의 사진을 찍을 때는 더 그런 것 같다. 구도, 색감 등에 중점을 두는 것도 좋지만, 먼저 타이밍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사진도 타이밍이다.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예전에
[서로를 의지하는]촬영 : 2023년 3월 18일 건국대학교 일감호아이폰14pro ISO32 82mm f2.8 1/365s건국대학교의 상징 동물 거위, ‘건구스’를 촬영한 사진이다. 넘실넘실 일렁이는 일감호의 물, 그 위에 두 마리의 거위가 나란히 물을 마시는 아름다운 순간을 담았다. [아름답고 달콤한 곳을 향해]촬영 : 2023년 5월 29일 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관 앞아이폰14pro ISO32 113mm f2.8 1/99s노란 금계국 위에 앉은 ‘흰나비’를 담은 사진이다. 쏟아진 비로 인해 시든 꽃과 활짝 핀 꽃이 공존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2023학년도 건대신문 문화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소설 부문은 정혜수(공과대·기항공19) 학우의 △시 부문은 강민정(공과대·화공20) 학우의 △사진 부문은 김하원(상생대·축식23) 학우가 당선됐다. 정혜수 학우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소설 부문에 입상했다. 올해 문화상에 지원한 작품 수는 제출 양식이 미준수된 작품을 제외하고 △소설 9편 △시 32편 △사진 16장이다. 수상자에게는 △소설 부문 100만 원 △시 부문 80만 원 △사진 부문 60만 원의 상금과 KU미디어센터장상이 수여된다
흔적 너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니 내 시간은 시계와 같아 숨막히게 정교한 태엽부품 하나하나가 작은 톱니바퀴들을 맞물리며 거대한 시침을 돌게 해그 거대한 금속 틈 사이로 분홍빛 설렘을 풍기고 나는 그 향기의 째깍임에 맞춰 눈꺼풀을 깜빡이지내 지구는 네 설렘의 시침을 축으로 돌아 그래서 나는 매일 펜을 들어 그 역사를 기록해그건 일종의 사명감이지그 아름다움이 종이에 기록되어 유물이 되고 언젠가 역사의 일부가 되어 미래를 정의할 수 있도록 하지만 동시에 그건 오만함이지아름다운 것들은 기록되지 못해불빛과 꽃향기와 밤과 만년필의 사각거림은 아
2023년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에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이용해 자연의 모습을 잘 포착한 김하원 학우의 응모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번 사진 부문에 선정된 작품 네 점은 서로를 의지하는 듯한 모습으로 건국대 일감호를 헤엄치는 거위의 다정한 모습, 노란 금계국 속에 흰 나비 한 마리가 사뿐히 내려앉은 자태를 잘 담아낸 사진, 5월의 일감호에서 날개짓을 하는 청둥오리의 모습이 일렁이는 물결과 조화를 잘 이룬 찰나의 순간을 잡아낸 작품, 끝으로 강원도 정선의 비룡굴에서 야행성인 박쥐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낮잠을 자
해파리가 떠났다. 내게 익숙한 죽음은 아니다. 내가 아는 죽음은 원래의 색이 바래고 비린내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해파리는 여전히 반투명하고 비린내가 나지도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평소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죽었다고 느낀다. 사실 몇 번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해파리가 갓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유영하는 것을 지켜보다 문득 이 해파리에게 마음을 너무 쏟고 있다는 걸 의식했을 때 그 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뼈가 있는 작은 것들은 화장을 많이 한다고들 한다. 패각이나 껍질이 있으면 화분 같은 곳에 묻었다가 속이
[서울의 광망(光芒)]촬영:2022.09.20 남한산성 서문SONY a6000 SEL18135mm/ ISO160 61mm f5 1/2500s밝은 낮 시간의 서울의 풍경입니다. 남한산성 서문에서 촬영하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구름을 관찰할 수 있으며 롯데타워부터 뒤에 남산까지 맑은 서울의 풍경과 구름을 지나는 햇빛을 볼 수 있습니다.[빛의 산란] 촬영: 2022.09.20 남한산성 서문SONY a6000 SEL18135mm/ ISO200 43mm f5.6 1/320s이번에는 해가 저물어가는 서울의 풍경입니다. 저물어가는 노란 태양 덕분
얼마 전에 만난 고등학교 때 친구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습니다. 자신은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알기에 크게 기뻐할 일도, 슬퍼하거나 놀랄 일도 없다고 말한 친구는, 자기 삶이 남의 것보다 특별할 거라고 기대할 이유가 어디 있겠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글쎄요, 저는 아직까지도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이끈 저의 힘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질투라기보다는 이다지도 저를 못 살게 구는 세상에게 복수하고 싶은 억하심정에 차라리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
올해 건대신문상 시부문에는 총 52편이 응모되었다. 작년에 비해 다소 줄어든 수치지만, 작품의 밀도는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무거웠다. 무엇보다 대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정밀하고도 섬세한 ‘응시’와 뛰어난 언어 감각, 이미지의 독특한 운용은 이번 작품들이 도달한 평균적 성취다. 아울러 가벼운 스케치에 그치거나 자의식의 낭만적 과잉으로 점철된 작품보다는 뚜렷한 주제의식과 정확한 문장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산출한 작품이 많았다는 것도 특징이다. 여기에 더해 ‘비(非)-주체화’되어버린 현대사회를 적극 반성하고 이를 투사한 작품도 있
그대는 시를 태운다밑도 끝도 없는 말들의 밀실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상강 지나서 나무들 머릿결만큼 불그레한 뺨으로, 더는 부끄럽지 않게나무에 의탁하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지전처럼 태운다마치 어릴 때 무서워하던 서당골 무당 할멈그 허리가 땅에 내리도록 굽은 할멈이 맨손으로 불에 마른 작약 덩굴 밥을 먹이듯이 그대는 비슷한 일을 한 차례 지나왔다가을과 겨울 사이가 시작되는 날, 신들린 듯눈 뜨자마자 온 집안을 뒤엎으며 과거를 찾았다사과 상자와 포장지 사이로 나부라지는 상과대 졸업장과 학사모, 연애편지와 타자기 잉크자국, 자취방에서부터 모
좋아하는 것들은 왜 이렇게 빨리 사라질까요. 아주 오래 좋아했던 가수의 신곡이 나온 걸 알면서도 들을 생각을 안 하고, 여름을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더위에 짜증을 내고 있다는 걸 알아챌 때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어떻게 좋아했단 사실조차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좋아했던 것들이 어떻게 더 이상 아무 감흥도 없어질 수 있고 그렇게 좋아했던 것들이 없어졌는데 저는 또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 한 채로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었을까요. 피아노를 이틀만 못 쳐도 손이 근질거릴 때가 있었는데 집에 있는 키보드엔 저도 모르는 새 먼지가 두껍게
2022년 건대 문학상 소설 부분에 응모된 작품은 총 다섯 편으로, 인상적으로 본 작품은 과 이었다. 은 일명 ‘고시원 생활 연대기’로 경제적 곤고함이 공간의 문제로 치환될 때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 위협이 개인을 어떻게 잠식시키는지를 위트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다. 서사적 활력이 있는 작품이라 일단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고시원이라는 공간과 그 활용이 이미 지난 세대의 그것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소재와 주제의 변주를 고민해보면 좋겠다. 해 아래 새로운 이야기란 없지만,
먼저 2022년 문화상 사진부문 수상을 할 수 있어 매우 영광입니다. 2020년 이후로 2년 만에 다시 수상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올해 제출한 사진의 경우 한 장소에서의 다양하며 다른 모습들을 담는 것을 컨셉으로 하였습니다. 이동하면서 각각의 장소에서 다양한 풍경과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정해진 한 장소에서의 풍경 또한 빛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맑은 푸른 하늘이 펼쳐진 날, 맑았다가 점점 해가 저물어가면서 붉은 노을이 형성되는 날, 비가 와서 흐린 날, 비는 오지 않지만 구름 가득한 날 등 한 장소
2022년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에는 6번 학생의 남한산성 서문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풍경4가지 모습을 포착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번 문화상 사진부문에 선정된 작품 네 점은 한 장소에서 잠실의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를 중심으로 한 도심의 전경 및 야경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 같은 피사체의 다른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한 노력과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특히 노을을 배경으로 한 야경과 하루 종일 흐렸던 날의 사진이 각각 담아낸 잔잔한 붉은 색과 푸른 색의 대비가 보기 좋았습니다. 다만 밝은 낮 시간의 서울 풍경이
몇 번이고 고쳐업어도 헤나의 발은 땅에 질질 끌리기만 한다. 한번 내려놓으면 다시 업기까지 한참이 걸릴 걸 알면서도 초록은 바짝 힘주던 팔에 힘을 뺀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헤나가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먼저 자리 잡은 헤나 위로 초록도 그대로 엎어진다.고개를 돌리자 기다시피 걸어온 길이 보인다. 헤나의 발이 만들어낸 얕은 고랑 두 개는 끝도 없이 늘어진다. 사람들이 여길 밭으로 착각하고 씨를 뿌리면 어쩌지. 초록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옆으로 몸을 굴린다. 헤나의 몸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헤나의 딱딱한 몸보단 바닥이 덜
2021년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에는 14번 학생의 ‘관계의 형상’을 주제로 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문화상에 선정된 이번 작품은 경북 포항 양포 방파제에서 바라본 파도와 경주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포항의 야산에서 찍은 불꽃놀이 형상의 야생화, 어둑한 저녁 불빛을 받은 서울의 광화문 4장면을 찍은 사진들로 곡선과 사선이 눈길을 끄는 구성을 카메라 앵글에 잘 담았습니다. 반면에 파도가 부서지는 ‘찰나’의 순간을 망원렌즈를 이용해 조금 더 클로즈업했다면 보다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