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수(공과대·기항공19) 학우
정혜수(공과대·기항공19) 학우

이거 책으로 너무 도망치는 거 아닌가?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을 조금 더 나중으로 미루고 소설을 읽던 중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책 읽는 것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제 취미란에는 독서가 빠졌습니다. 독서량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늘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찜찜함을 느꼈던 탓인 것 같습니다. 그 독서량이 마음이 힘들 때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등 특정한 이벤트가 있을 때 더 늘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유난히 해내야 하는 것, 선택해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을 때, 물리적으로 도망은 못 가고 도서관에 가서 책 사냥을 했습니다. 특정 도서를 의도하지 않고 서가에서 배회하다가 꽂히는 책들을 집어 드는 것인데, 그중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있었습니다. 낮의 일들이 너무 머리가 아프고 복잡해서 저녁에는 내내 데미안속 데미안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방황하는 싱클레어에게 돌파구를 제시하고 새로운 시각을 주는 데미안이 저 또한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데미안은 결국 제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제가 도망갈 길로서가 아닌 뚫을 길로서 책을 찾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와는 반대로 글쓰기의 시작은 분명하게 도피였습니다. 자기 전 후회나 걱정이라도 시작하면 잠 못 드니 공상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정도 이야기의 진전이 있으면 그것을 글로 쓰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는 글틴(청소년 문학 플랫폼), 대학교에 와서는 건대신문 문화상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꾸준히 쓰며 점점 도망가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는 기분이 듭니다.

건대신문 문화상 소설 부문에 매년 응모해야지 하고 혼자 다짐하였는데 이번을 마지막으로 혼자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네 번 다 심사평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심사평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정진하여 문학으로써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건대신문과 심사해주신 작가님,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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