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공과대·화공20) 학우
강민정(공과대·화공20) 학우

 

텅 빈 거리에 여자아이가 홀로 서 있다. 이미 떠나보낸 그 아이가 길을 잃은 듯 다시 내 눈앞에 서 있다. 맞아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있지

나는 다시금 아이에게 길을 제시해야만 한다. 작년의 내가 가르쳐준 지름길에서 아이는 다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어쩔 줄 모르는 발걸음으로 줄곧 이곳에서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길을 알려주고 싶다.

아이 앞에 놓인 수많은 갈래들을 살피다 지름길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멈춘다. 그래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지

그녀는 떠밀리듯 그 길에 오른다. 나는 내년 이맘때쯤 그녀가 짠기를 가득 안고서 다시금 나를 찾아올 것을 안다. 그녀가 걷고 싶은 길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길을 걸을 용기가 없음 또한 안다. 나에게는 그 길을 가리킬 용기가 없음을 안다.

그래서 나는 시선을 옮기지 않는다. 멈춘 시선 끝 쇼윈도에 비친 여성이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그녀의 눈동자에 얼핏 내가 비친다. 작년보다 더 성숙해졌을까, 아니면 오히려 더 어려졌을까, 그 모습을 보려 그녀의 잔상에서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한다.

 

*

우울증을 앓았던 적이 있습니다. 영원히 눈이 내리는 스노우글로브에 혼자 덩그러니 갇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끝없이 쏟아지는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담아내려 일기장에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이 다 지나고 나서야 일기장에 써내린 글씨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씁니다. 매 순간 마주하는 수백 수천개의 선택지 앞에서 저는 걷고 싶은 길보다는 지름길을 선택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또 그게 제가 공과대학을 선택한 이유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과거의 제 선택 또한 과정임을 알고, 언제든지 일기장을 펼쳐 그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있음을 압니다.

제 시에는 그러한 감정들을 담으려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학우분들께 제 시가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과분한 상을 주신 관계자분들과 긴 글 읽어주신 학우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금 일찍 찾아온 겨울입니다. 이번 겨울은 다들 따뜻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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