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 소설부문

                                             문어를 아시나요

                                                                                          신보람(문과대ㆍ국문3)

수심 8미터. 수온 22도. 다이빙 슈트 속으로 스미는 갑작스런 한기에 비늘 돋듯 소름이 돋아난다. 비취옥 빛깔의 얕은 바다를 지나 일렁이는 햇살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거대한 암초 위로 노랑, 빨강, 파랑 연산호들이 빼곡히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다. 진홍나팔돌산호 옆으로 쏠배감펭이 지나간다. 방추형 몸통과 울퉁불퉁한 정수리, 가시를 곧추 세운 녀석은 긴 지느러미를 너울거리며 천천히 흘러간다.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두 짝의 오리발로 연신 물길을 박찬다.

앗, 두동가리돔떼다. 산호초에 부착해 서식하는 산호 말미잘과 공생하는 이 녀석들은 그 생김새가 예뻐 수중사진사들에겐 훌륭한 모델 감이다. 청백색 몸통에 흑갈색 허리띠를 두 번 두른 녀석들의 네 번째 가시는 우아한 곡선을 이루며 뻗어있다. 바다의 나비라고도 불리는 녀석들은 뾰족한 주둥이를 이용해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쑤시듯 툭툭 부착조류를 뜯어먹고 있었다. 몇몇 놈은 지레 겁을 먹곤 말미잘에 몸을 숨기고, 대담해진 어미들은 그 작은 주둥이로 뭍에서 온 침입자인 나의 호흡기와 물안경을 쪼아댔다. 원뿔모양의 주둥이들이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바삐 살아가는 이곳은 먹먹한 고요의 세계다. 오직 메마른 숨소리만이 반복되는 이곳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알알이 새끼를 밴 거대한 어미의 태속에 들어앉아 호흡기를 탯줄 삼은 것처럼 나는 꼭 알맞게 붙어있는 숨을 고른다. 나는 태초의 세계를 알고 있다.

-아줌마, 자리돔 물회 5인분요.
왁자한 횟집에 앉아 젖은 머리칼을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젖은 슬리퍼에서 자꾸만 찍찍 새어나와 발바닥을 적시는 물방울들을 종아리에 번갈아 문지르며 젓가락을 쭉쭉 빤다. 일행 모두 지쳤는지 눈 밑들이 검다. 커다란 사발에 물회가 담겨 나왔다. 당근, 오이, 양파, 무, 상추, 미나리, 깻잎 등에 대가리와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비늘을 친 자리돔을 뼈째 자잘하게 썰어냈다. 주인아주머니는 주방장 특제 소스를 강조하며 어느 집도 이런 맛은 못 낸다고 금으로 해 박은 송곳니를 반짝이며 웃었다.
-아줌마, 여기 소주 좀.
소주잔을 비우며 붉은 양념을 뒤집어 쓴 자리돔 살점을 씹었다. 문득 올려다 본 주방 입구의 커다란 메뉴판 옆 TV에선 수중촬영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청람색 바다 속을 가르는 카메라맨의 앞으로 적갈색의 문어 한 마리가 검은 먹물을 뿜으며 달아나고 있었다.
-아이갸, 저 봐라. 저 문어가 토신다 아이가.
-허, 거 엄청 빠르네.
-이집 문어회도 맛있는데.
둥글고 조그만 테이블을 끼고 앉아 사타구니를 긁적이던 형들은 일제히 TV를 쳐다보며 저마다 한마디씩을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시끄러운 소음 속 TV소리에 집중했다.
-「어미 문어는 바위 숲 깊숙한 곳에 산란을 하는 순간부터 스스로 약자의 길을 택합니다. 이만 내지 십만 개의 알을 며칠에 걸쳐서 낳아 부화할 때까지 보호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며, 다리를 이용해 신선한 물을 알에 흐르게 하여 산소를 공급해 줍니다. 부화하기까지 일곱 달 혹은 그 이상을 암컷은 먹이를 먹지 않으며 알을 보호합니다. 이러한 암컷의 보호가 없으면 알은 대부분 죽습니다.」
낮은 목소리의 남자 성우의 설명이 끝나고 화면에는 투명한 알들이 맺혀있는 수 십 개의 알 기둥을 끌어안은 어미문어가 나타났다. 어미문어는 여러 개의 다리로 알들을 훑으며 산소를 공급해주고 있었고, 몇몇 포식자들이 기회를 노리며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부화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어미문어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힘없는 다리로 주변에 널려있는 돌멩이들을 끌어 모아 방어벽을 만들고 있었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문어가 위기에 처하면 일부러 다리를 잘라서 포식자에게 줌으로써 잡아먹히는 것을 피한다고 했다. 참으로 총명한 바다생물이 아닐 수 없다. 부화한 유생들이 물 표면으로 하나둘씩 헤엄쳐 가기 시작하고 텅 빈 알 기둥만 남게 되자 기력이 쇠한 어미문어는 자리돔떼의 주둥이에 쪼이기 시작했다. 어미문어는 이제 도망갈 힘조차도 없어 보였다. 어미문어의 눈동자에 죽음이 어리자 자리돔떼는 새끼들을 따라 물 표면으로 사라져 갔고 어미문어는 그렇게 깊은 바다 밑바닥으로 쓸쓸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청양고추를 씹은 탓일까. 눈이 매웠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희미해지며 바삐 움직이는 그들의 주둥이들만 보였다. 모두들 상추를 고등어를 문어를 뜯어먹으며 서로를 쪼아대는 것 같았다.

습관처럼 냉장고 문을 열고 기웃거리며 바나나와 우유를 꺼냈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먹지 않는 아몬드 후레이크를 꺼내 우유에 타고 바나나를 썰어 넣었다. 3주간의 제주 섬 다이빙 투어를 마치고 이른 아침비행기로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동이 울렸다. 엄마다. 문자메시지가 한 개. ‘아들잘도착했니엄마랑점심먹자병원으로와중요한부탁이있어’ 엄마는 곧 죽어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신다. 나는 점심때까지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한다.
등을 축축하게 적시는 땀에 잠에서 깼다. 꿈을 꿨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날카로운 시계바늘은 벌써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아차 싶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곧장 달려가 벌겋게 익은 얼굴에 찬물을 두 번 끼얹었다. 차가운 수돗물기운에 등줄기가 서늘해져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떨림은 계속되었다. 그것의 진원은 주머니 속이었다. 나는 황급히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대며 왼손으로 차 키를 챙기고 신발을 구겨 신었다.
-아들. 왜 전활 안 받어.
-깜빡 잠들었어. 십 분 내로 갈게. 진료 없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세차를 안 해 때가 꼬질꼬질한 승용차를 향해 질주했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정신질환전문병원 ‘사랑병원’. 큰할아버지는 그 곳 901호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껍질처럼 쭈글쭈글 변해가며 세월을 보내오셨다.
사랑병원 901호. 글자가 적힌 문 앞에 서자 오래된 기억들이 나를 괴롭혔다. 큰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었던 게 언제였더라. 큰할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보내셨다. 귀머거리 벙어리처럼. 그리고 어쩌다 한번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볼 때면 ‘딸’ 이라는 말만 반복 하셨다. 큰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철수세미로 놋그릇을 박박 닦는 것처럼 볼품없이 갈라져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딸!’을 외칠 때마다 입술 사이에 하얀 침이 거미줄처럼 늘어졌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큰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어느 날은 오줌줄기를 뿌리기도 했었고 나를 보고 울고 웃고 소리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쥐어뜯기도 했다.

나는 큰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고, 그가 스스로를 쥐어뜯고 물어뜯어 피투성이가 되었을 땐 뛰어 들어오는 간호사들을 보며 울다 지쳐 새까맣게 기절했다. 큰할아버지의 병문안을 오는 것이 어린 나는 정말이지 죽도록 싫었다. 엄마는 큰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큰할아버지가 나를 기억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올 만큼 기뻤다고 하셨다. 나는 미쳐버린 큰할아버지의 병문안이 끔찍하리만치 싫었다. 내 친 할아버지도 아닌데 그토록 정성껏 문병을 오는 엄마가 미웠다. 가끔씩 엄마는 잠이 드신 큰 할아버지의 쪼그라든 손을 붙들곤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할아버지께도 딸이 있었어. 그 분이 엄마를 키웠지. 그러니까 큰할아버지는 엄마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야. 알았지? 엄마한테 소중한 사람이면 우리 아들한테도 소중한 사람 맞지?

문을 열었다.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작은 방, 작은 침대 위에서 몰라보게 작아진 할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짧게 깎은 머리에 드문드문 나 있는 흰 머리, 축 늘어진 주름진 눈꺼풀 아래 흐린 회색의 눈동자, 바짝 말라붙은 살가죽 여기저기에 박힌 검버섯, 그리고 쪼그라든 입가에는 허옇게 마른버짐이 피어있었다. 그것은 결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암초에서 피어났던 산호초를 떠올렸다. 나뭇가지처럼 군더더기 없이 쪼그라든 큰할아버지는 오래된 흰산호처럼 구부정하게 피어있었다. 큰할아버지는 또렷이 나를 바라보셨다. 할아버지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큰할아버지는 바보 같은 표정으로 피식하는 웃음소리를 내셨다. 할아버지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할아버지는 대뜸. 왜 몰라 이 자식아. 하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절 기억하세요? 그러엄 누구새낀데.

나는 허,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큰할아버지는 그저 한명의 괴팍한 노인네가 되어 있었다. 잔뜩 미쳐서 나를 괴롭히던 그는 온데간데없었다. 큰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목은 괜찮으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할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는 내 목의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뒷목 위쪽부터 사선으로 왼쪽 쇄골 뼈까지 왼쪽 목에 십이 센티미터 가량의 상처가 있다. 어린 시절 입었던 화상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큰할아버지께 되물었다. 이게, 제 상처가, 기억나세요? 큰할아버지는 푸, 하고 길게 숨을 내쉬고는 물을 달라고 하셨다. 종이컵에 담아드린 미지근한 맹물을 두어 모금 마신 후 할아버지는 옛날 얘기를 들려주시겠다고 하셨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46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46년 전 일을 기억할 리가 만무하지만 그는 진지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니까.

한 여자가 있다. 푸석푸석한 단발머리의 여자는 비루하게 마른 남자의 손을 붙들고 있다. 여자는 열두 살 남짓 먹었고 아빠, 아빠, 우리 왜 이렇게 멀리 가요? 라며 남자의 팔꿈치 쪽으로 주욱 미끄러져 매달리며 어둑한 저녁 길을 걷는다. 아빠, 여기가 어디예요? 여긴 대전이란다. 아빠, 졸려요. 아빠, 배도 고파요. 그만 가면 안돼요? 거의 다 왔어. 우린 느이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거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는 건 아빠의 소원이야. 못 뵌 지 너무 오래 됐구나. 남자는 대문이 크고 담장이 높고 뜰 안의 커다란 감나무 잎이 무성한 어느 집 앞에 멈춰 선다. 여기다. 남자는 혼잣말을 읊조리며 대문을 두드린다. 세 번째 대문을 두드리자 키가 작고 이마가 좁고 얼굴빛이 노란 여자가 문을 열었다.

-여기 김권철씨 댁이 아닙니까?
-아닌디요.
-이집이 맞는데요?
-이집 주인양반은 김가가 아니라 이가라니깬?

남자는 딸의 손을 잡고 골목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리곤 난처한 목소리로 이집이 우리 집이 맞는데, 라며 중얼거린다. 여자는 졸린 눈을 비비며 말한다. 아빠, 여기 아니래? 그래. 할아버지는 아마 이사를 가셨나보다. 작은 할아버지 댁에 가서 여쭤보자. 졸리니? 업힐래?
남자는 여자를 들춰 업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날은 완전히 저물어 달무리 진 보름달이 정수리 위에 떠 있었다. 흙먼지가 축축하고 남자의 코가 간지러웠다. 남자는 팔꿈치로 코를 훔치고 골목길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길가마다 아카시아가 흐드러졌다. 남자는 아카시아 나무들 사이에 낮은 콘크리트 담의 어느 집 앞에 선다. 어둔 밤 아카시아 향내가 코를 찌를 듯 여자의 잠을 깨운다. 아빠, 다 왔어?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문패를 확인해본다. 누가 써줬는지 지저분한 글씨로 『김창기』 석자가 적혀 있다. 남자는 대문을 살며시 손으로 밀어본다. 문이 열린다. 마당 수도꼭지엔 빨다 만 빨래가 젖어있고 댓돌 위에는 크고 작은 두 켤레의 신발이 놓여있었다. 불 켜진 방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남자는 업고 있던 딸을 마당에 내려주고는 헛기침을 했다.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계십니까?
이윽고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파리한 얼굴색의 마른 남자가 상체를 빼꼼히 들고 말한다. 누구요?
-창기야! 나다. 형이야.  
-아니, 이게 누구야. 형!!!!!! 아니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그래?
비쩍 마른 김창기가 맨발로 뛰어나와 남자와 여자를 맞이했다. 방 안에선 일곱 살쯤 된 얼굴이 희고 새침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큰 눈알을 굴리며 낯선 이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남자는 허옇고 마른 김창기의 손을 붙들고 얘기했다.
-넌 왜 작은 아버지 집에 와 있는 거냐? 엄마 아부지는 어디 계시고?
-잘 왔어, 형. 이게 얼마만이야, 형이 여길 찾아 왔다는 게 믿기지도 않아. 난 형이 죽은 줄로만 알았어. 이게 꿈이야 생시야. 얘는 누구야. 형 딸이야? 예쁘네.
여자는 김창기의 칭찬도 듣지 못하고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옆에서 흰 얼굴의 아이가 무표정하게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얘는 니 딸이냐? 어떻게 널 하나도 안 닮았냐. 눈도 크고 얼굴도 조그맣고.
-세상에. 형이 고향에 돌아온 게 몇 년 만이지?
-13년만.
-형도 참 너무하다. 다들 죽은 줄로만 알았어. 13년 동안 어떻게 고향에 한 번 와 볼 생각을 안 한 거야?
-올 수가 없었어. 성공하면 오려고 했는데 뭐 결국 이 꼴로 왔네.
남자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하다. 그리곤 이부자리 위에 잠든 딸을 바라본다. 한참을 말이 없던 김창기가 입을 연다. 애 엄마는? 도망갔어. 니 마누라는? 김창기가 입을 꾹 다물고 이불 한 귀퉁이에 구부리고 누운 딸을 바라보며 말한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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