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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당선작] 싱글 사이즈
이호선(경영대ㆍ경영2) | 승인 2012.12.03 16:16

42평이라는 넓은 집만큼이나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크고 화려한 안방구석에 초라하게 놓여있는 싱글 사이즈의 침대다. 이 집에 들어 온지 1년이 가까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 침대에 적응하지 못하겠다. 아니, 어쩌면 내가 가장 익숙한 크기의 잠자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영 불만이다. 매일 밤 아내와 살을 부비며 자야 하는 것도, 그녀의 베개를 대신하여 팔을 내주어야 하는 것도. 이 모든 것이 이상하게 이런 부분에서만큼은 고집스러운 그녀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고수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다른 부분에서는 완벽하리만치 내 뜻을 따라주는 아내이지만 그녀는 절대로 침대에 있어서만큼은, 그리고 잠자리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길 원했다. 그것이 그녀와 나의 결혼 조건이었다.

그녀는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방에 있던 작은 싱글 사이즈의 침대를 그대로 안방으로 옮겨왔다. 나는 내심 넓은 침대를 바랬지만 그녀는 자신이 좁은 침대를 쓰고 싶다는 것을 돌려 말하기라도 하듯 강경하게 그 침대만을 고집했다. 결국 그녀는 그 침대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산 딱지를 붙여 버리게 되었지만 그 침대를 대신해서 안방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싱글 사이즈의 침대였다. 다만 새 침대라는 점이 달랐다. 좀 더 넓은 침대를 쓰는 편이 서로 불편하지 않고 좋지 않겠느냐는 내 설득은 전혀 먹히질 않았다. 중고등학생들이나 쓸 법 하다는 내 투정도 아내는 침대 위에서 자신이 두 바퀴를 구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녀의 성욕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의 매일 나와의 관계를 요구해 왔다. 직접적으로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매일 밤이면 안 그래도 좁은 침대 위에서 내게 더욱 바짝 밀착해 오며 내 가슴을 쓰다듬는 것으로 그 말을 대신했다. 꼭 침대 위에서만 관계를 가지란 법은 없지만, 그녀와 관계를 갖는 장소는 항상 싱글 사이즈의 침대 위에서 만으로 한정되었다. 혹여나 집 안의 다른 장소에서 내가 아내를 원할 때면 그녀는 어김없이 날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아내는 나와 관계를 갖는 밤이면 매일 기분 좋은 표정을 짓지만, 기분 좋은 신음소리까지 흘리지는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그녀가 나와의 관계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그녀는 단지 나와의 관계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었다. 또 아내의 특이한 성벽에 대해 써보자면, 그녀는 자신이 밑에서 눌리는 것을 좋아하지, 내 위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내 무게가 자신을 더욱 더 짓누를수록 좋아했다. 관계가 끝나고 난 뒤 내가 무너지듯 그녀의 위로 쓰러지는 그 순간을 가장 사랑했다. 어쩌면 그녀와의 침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그녀와 맞는 부분일지도 몰랐다. 나는 결혼 전에도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며 오로지 내가 올라타는 것만을 원했고, 내가 밑에 깔리는 것을 싫어했다.

“나 있지, 다음 주에 출장 가.”

관계가 끝나고 난 뒤, 아내는 꿀렁이며 사정을 하는 날 더욱 깊숙이 집어넣듯 다리로 내 허리를 꽉 옥죄며 그녀의 위로 쓰러진 내 등을 쓸어내리며 작게 말했다. 벌써 1주일째 듣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갑작스런 해외 출장이 잡힌 이후로 매일 밤 그 말을 반복했다.

“알아.”
“으응.”

어제도 들었고 또 내일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그 말에 슬슬 지겨움을 느꼈다. 또 한편으론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내가 그녀의 똑같은 말을 매일같이 들으면서도 그나마의 대꾸를 해 주는 것은 그녀가 하루하루 날짜를 세어가며 말해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아내의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몸을 돌려 그녀의 옆에 누웠다. 9월이지만 세게 틀어놓은 에어컨 덕에 땀은 나지 않았다. 나는 침대 맡에서 티슈를 적당히 빼어들어 아내와 내가 이어졌던 부분을 대충 닦아내곤 그대로 뭉쳐서 침대 옆에 떨어트렸다. 치우는 것은 어차피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아내는 조금이라도 어지러져 있는 것은 참지 못 하는 성격이었지만 뜻밖에도 이런 것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아니, 그렇다고 하기 보다는 관계가 끝난 후 내가 빠져나간 침대의 빈자리를 싫어했다. 그래서 아내는 항상 관계를 가질 때면 땀이 나지 않게끔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세게 틀었다. 그렇게 관계가 끝나고 난 이후에 내가 샤워를 핑계로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었다.

내가 옆으로 눕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베고 있던 베개를 머리 위쪽으로 밀어 세우고는 머리를 살짝 든 채로 날 바라봤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내 팔 한 쪽을 그녀의 머리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팔을 타고 내 어깨까지 올라와 머리를 뉘였다. 이것으로 우리 부부가 매일 밤 하는 일은 끝났다. 이제 곧 그녀는 잠이 들 것이고, 나는 그러면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 팔을 빼고는 베개를 들고 소파로 가서 잠을 청할 것이었다.

그녀는 아침이면 내가 자신의 곁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굉장히 섭섭해 했다. 하지만 난 도저히 옆에 사람을 두고, 그것도 내 몸을 누군가 짓누르며 자는 것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내라고 하더라도, 내 몸에 올라간 것이 그녀의 머리와 한쪽 팔 뿐이라 하더라도 난 그것을 혐오에 가깝게 싫어했다. 그래서 난 매일 아침이면 그녀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녀의 출근시간이 나보다 30분 여유 있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운일지도 몰랐다. 일찍 일어나는 덕분에 아침을 차리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지만 아내는 아침마다 자신의 곁에 내가 없는 사실을 함께 내가 차린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 상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내가 나보다 늦게 집을 나서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내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서둘러 몸치장을 한 뒤 언제나 조금 이른 시간에 나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의 회사가 출근 시간이 더 빠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아내가 독일로 출장을 가는 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쁜 마음으로 아내와의 출장 전 마지막 관계에 임했다. 아내의 다리는 더욱 더 강하게 내 허리를 옥죄었고 두 팔은 내 가슴에 짓눌린 그녀의 가슴이 터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내 몸을 끌어안았다. 관계를 가지며 아내가 내 몸을 감싸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기쁘게 그 모든 것을 받아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내도 그런 날 눈치 채기라도 한 듯 평소 자신의 갈망을 아낌없이 드러내었다.

아내의 위에서 내려온 것은 붉은 침실등보다도 그녀의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올라 터질 것 같이 변했을 즈음이었다. 나는 관계가 끝난 후 평소보다 그녀의 위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그것은 어쩌면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오는 일종의 서비스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나 내일 출장 가.”
“알아.”
“으응.”

내가 아내의 위에서 내려와 휴지를 뽑아들자 그녀는 어김없이 그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 ‘내일’이라는 단어는 날 설레게 했다. 이 작은 싱글 사이즈의 침대나마, 내일부터 일주일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이었다.

“몇 시 비행기라고 했지?”
“일곱시 반. 집에서 여섯시에는 나가야 할까봐.”
“그래. 알람 맞춰둬야겠네. 몇 시로 맞춰두려고?”
“다섯시.”

나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시라면 내가 일어나는 시간보다도 한 시간이 더 빠르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냥 오늘밤은 그녀의 옆에서 어깨를 내어준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지, 그녀보다 빨리 알람을 맞춰두고 일어나서 다시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침대로 돌아오던지.

“반찬은 다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어뒀어. 꺼내서 먹고 빨래 같은 건 그냥 내가 갔다 오면 할게. 그리고 우리 관리……”
“됐어. 다 알아서 할게.”
“으응.”

나는 아내의 말을 끊으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런 내게 아내는 어리광을 부리듯 더 깊게 머리를 파묻어 왔다. 아내의 정수리에 솟아난 잔머리가 내 볼을 간질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말을 중간에 차갑게 끊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아내가 떠나는 것을 반기는 못된 남편에 대한 스스로의 자책인지 나는 그녀를 안은 팔을 올려 그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런 내 손이 익숙하지 않은지, 내 맨가슴을 간질이던 아내의 숨이 살짝 멎는 것이 느껴졌다. 참 바보 같은 여자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다루기가 쉽다는 점이 말이다. 그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내와 결혼 전 가졌던 잠자리에서 좀 더 가까이 붙어있어 주었더라면 침대의 사이즈가 지금보다는 더 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잘 다녀와.”
“응.”

그리곤 나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눈을 감았다. 아내는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눈을 감지 않지만 내가 눈을 감으면 금세 잠이 드는 버릇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잠이 빨리 드는 것은 내겐 참으로 천만다행이었다. 팔을 빼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러지 않기로 했다. 기왕 마음 쓰기로 한 것, 끝까지 인심을 써 주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곱게 먹어서일까, 어쩐 일인지 아내의 머리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데도 빠르게 잠이 밀려옴을 느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아내는 떠나고 없었다. 새벽에 아내가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의 화장품 냄새가 가까워지는 것을 맡았으며 입술이 살짝 닿는 것을 느꼈지만 일부러 일어나지는 않았었다.
소파가 아니라 오랜만에 침대에서 잔 덕분인지 몸은 상쾌했다. 나는 괜스레 좁은 침대 위에서 몸을 한 바퀴 굴려보았다. 그 이상은 움직일 수도 없는 작은 침대였지만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이 좁은 침대나마 온전히 내 것이 된 것이었다.

나는 아내의 베개를 집어 들고는 곧바로 이불장에 넣어 버렸다. 그걸로 온전히 이 침대가 나만의 공간이 되었음을 확신했다. 거실로 나와서도 나는 출근시간까지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카펫 위에 팔과 다리를 크게 벌리고 드러누워 보았다. 이 넓은 집안에 나 혼자 살게 되었다는 사실은 감격이었다. 오랜만에 아내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으면서도 나는 식탁마저 독식한 기분에 황홀함을 느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일주일이라는 시간 한정의 개인 공간을 가식 없이 마음껏 즐기리라 생각했다.

아내가 떠난 첫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왼쪽으로 한 바퀴 구르고 다시 오른쪽으로 한 바퀴 구르는 것을 반복했다. 어린애처럼 이불로 내 몸을 칭칭 감싸기도 해보고 침대 위에서 방방 몸을 구르기도 해 보았다. 싱글 사이즈의 침대지만 이렇게 혼자 누워보니 그 크기가 꽤나 되었다. 정확히는, 혼자 쓰기에 딱 충분한 사이즈였다. 나는 이 좁은 공간을 3년간 아내와 나눴다는 생각에 슬쩍 화가 났다. 내가 지금까지 잠을 잤던 소파는 몸 한번 비틀면 옆으로 떨어져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좁은 곳에서 자서 잠버릇이 좋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소파 밑으로 떨어져야 했을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쓴웃음과 함께 과거로 돌아갔다. 부천 원미구의 반지하방에 살던 어린 시절로.

형제가 다섯이나 되었던 우리 집은 삭막하게도 여자형제라곤 하나도 없이 다섯이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런 다섯 형제에게 배정된 방은 집에서 가장 넓은 방이었지만 그래도 다섯 형제가 몸을 눕히고 자기엔 불편했다. 어린 시절에야 형제가 한 방에서 같이 자며 이런저런 장난도 치고 서로 많은 얘기도 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지만 나이를 먹고 덩치가 커지면서 우리는 슬슬 몸을 돌려서 어깨를 세워 자야 했다. 가끔 늦게까지 숙제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 날이면 부모님의 방으로 가서 불을 켜고 앉아 그곳에서 숙제를 했다. 다섯 형제가 눕기도 빠듯한 좁은 방은 작은 밥상을 놓기에도 버거웠다.

내가 첫째였던 덕에 내가 독립해서 나가지 않는 한 이 방에 사람이 줄어들 일은 없었다. 나는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시절부터 빨리 독립해 나가서 내 방을 갖길 원했다. 합격한 대학이 집에서 통학으로 다니기에 충분한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모든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조건으로 자취를 시작했다. 거기에는 온갖 핑계가 붙었다. 내가 커서 동생들이 자기에 비좁다, 대학에 가면 책이 많이 필요한데 이 방엔 더 이상 무언가를 놓을 공간이 없다.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덕분에 집에 손을 벌릴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혼자서 방을 얻기에는 학생 신분에서는 아무리 일을 해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내 최초의 독립은 당시엔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대학에서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친구와 같은 방을 얻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집에서 동생들과 다섯이 쓰던 방과 비슷한 크기의 방이었다. 그 방을 둘이서 쓰는 것이었고, 또 그 친구는 매일 술을 마시느라 집에 안 들어오기가 일쑤였기 때문에 이틀에 하루는 혼자서 쓸 수 있었는데도 나는 그 방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아니었던 덕이다. 언제 친구가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몰랐고, 익숙한 방의 크기는 답답함으로 내 가슴을 옥죄었다. 나는 그래서 더욱 많은 아르바이트에 몰입했다. 혼자서 방을 얻을 만 한 보증금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 계획은 이내 무너졌다. 연년생이었던 동생이 같은 학교에 합격을 하며 이듬해부터 나와 같이 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1년간 모았던 돈은 고스란히 새롭게 옮긴 방의 보증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방의 크기는 변함이 없었다.

아내가 살던 집에 그대로 들어온 덕에 42평이라는 평수는 두 사람이 살기엔 과할 정도로 넓었다. 덕분에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 방을 ‘서재’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휴일이면 나는 서재에 박혀서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틀어박혀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을 즐겼다. 아내는 특별히 트집 잡을 수는 없어도 그것에 대해 굉장히 못마땅해 하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냈기에 내가 그 방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에 불과했다. 다만 아내는 그 시간이 밤이 아니라 낮인 덕분에 그 시간을 그 정도로 묵인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나만의 침실을 만끽했다. 침대가 다른 가정들처럼 더 큰 사이즈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이정도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내 곁에 다른 사람이 없이 혼자 잠들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내겐 큰 의미가 있었다.
아내의 숨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귀를 두어 번 긁적이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김 대리, 오늘은 회식 올 거지?”

아내의 성화로 회식에 참석을 못 한 것이 벌써 오래되었다.
아내는 나보다 늦게 출근하면서도 또 일찍 끝났기 때문에 늘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와서 기다린 뒤 나와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자신이 돌아왔을 때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싫어했다.

“글쎄요.”

나는 웃으면서도 뜸을 들였다.
지금까지는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신혼부부라는 것도, 매일같이 회사 앞에 찾아와 날 기다려주는 아내의 모습도 회식 자리를 빠지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차하면 우리 팀의 회식 자리까지 ㅤㅉㅗㅈ아오거나 회식 장소 근처의 카페에서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에 팀원들 모두가 손발을 다 들었던 것이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다들 유별난 금슬이라며 칭송했다. 하지만 난 그런 아내의 빈 집에 대한, 공간에 대한 집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 공간에 집착을 하게 되었다. 아내가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한다면 나는 집에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지금은 집이 비어있는 얼마 안 되는 기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빼앗기기 싫었다.

“김 대리네 집 비었을 거 아냐. 오늘 우리 다 같이 거기로 갈까? 김 대리네 집도 좋잖아.”

눈치 없는 팀장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이프 출장 가있는 동안 장모님이 계셔 주시기로 했거든요. 오늘 사골 고아뒀다고 일찍 들어오라고 하시네요.”

회식을 빠지기 위해 돌아가신 장모님까지 팔아버리면서도 나는 일말의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단지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집으로 빨리 돌아가서 그 시간을 좀 더 길게 즐기고 싶다는 것 뿐 이었다. 평소보다 퇴근이 빨랐던 덕에 집에 들어온 시간은 오후 7시가 채 안 되었다. 현관문 앞에 서자 나는 가슴이 살짝 설레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아내가 곁에 팔짱을 끼고 딱 붙어서 내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지만 나는 오랜만에 홀가분해진 팔을 한번 돌리고 호기롭게 문을 열었다. 문 안쪽에 보이는 것은 불 꺼진 실내의 어두운 공기 뿐 이었다. 어쩐지 나는 아내가 있을 거란 착각에 뒤를 한 번 돌아본 뒤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내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던 이유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아했지만 내가 먼저 와서 기다려 주는 것 또한 좋아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평소와 같이 옷도 벗지 않고 침대로 가서 몸을 눕혔다. 아내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은 내가 침대를 독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내 습관과도 같았다. 아내는 그렇게 누워있는 내 곁에 5분 정도를 함께 누워 있은 뒤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가곤 했다. 아내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5분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그 이후의 30분을 위해 그녀에게 5분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아내가 떠나고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평소와 비슷하게 30분 정도가 걸렸다. 누워서 매일 하던 대로 몸을 뒤집기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는데 주방에서는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고 날 부르러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제야 옷을 천천히 벗어서 침대 밑에 내던지고는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아내가 반찬통에 일주일 정도 먹을 분을 덜어서 해 놓은 반찬들이 가지런히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김치 하나를 꺼내곤 라면을 끓였다. 밥솥에는 아침에 아내가 해 놓은 밥이 조금은 남아있을 것이었고 그대로 반찬만을 꺼내서 먹으면 될 것이었지만, 그 편이 더 간편할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괜스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귀찮다고 느껴졌다.

라면을 끓이는 것도 직접 하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어서 물을 맞추지 못해 약간 싱거운 감이 있었다. 나는 먹은 그릇을 그대로 식탁에 내려놓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방에 그제야 불을 켜니 내가 멋대로 내팽개쳐 놓은 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그 옷들을 집어 들고 옷장에 걸어놓은 뒤 8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침대에 다시 누웠다.

내 꿈은 이런 개인 침대를 갖는 것이었다. 서른이 되도록 이루지 못 한 꿈이 이루어지는 일주일의 순간을 나는 만끽하고 싶었다. 많이 뒹굴 수도 없는 침대 위에서 나는 몸을 비틀기도 하고 때론 침대 시트에 얼굴과 온 몸을 비비기도 했다. 그러다 나는 어느새 침대의 왼쪽에 누워 오른쪽을 쓰다듬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날 반기는 것은 전날 먹고 그대로 내버려 둔 냄비와 젓가락이었다. 설거지를 적당히 끝내고 난 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서는 것은 또 혼자만의 일이었다.

집을 나서자 아침 일찍부터 아파트 순찰을 돌고 있는 경비원이 인사를 건네어 왔다. 그 시간이 비슷해서 며칠에 한번 꼴로는 이렇게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 것이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경비원은 곧장 아내의 안부를 물어 왔다. 사모님이 안 계시네요, 그건 내겐 해방의 증명과도 같은 말이어야 하는데 어쩐지 나는 늘 아내가 잡아주던 내 왼쪽 손을 바라보며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 가슴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내 시선을 알아채기라도 했는 듯, 화면에는 아내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영상통화였다.

“잘 들어갔어?”
“응. 어제 바로 전화 못 해서 미안. 지금 출근하는 거지?”
“아냐, 괜찮아. 그러고 보니 시차가 어떻게 되더라.”

나는 차에 올라타서 차 키를 꽂으며 아내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국이 아침일 때 독일은 밤늦은 시간인 듯, 씻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의 얼굴이 화면에 비춰졌다. 잠들기 전에 또다시 나를 찾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쩐지 이 아침의 영상통화는 그녀가 귀국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 같았다.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금세 끊어야 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금요일이 되었다. 평소라면 한 주의 업무를 모두 정리해 두어야 했기에 일이 길어졌을 텐데 어쩐지 이전에 대어두었던 장모님 핑계가 아직도 유효한 듯 팀장은 날 배려해 일찍 집으로 들어가게 해 주었다. 애초에 거짓말이긴 했지만 그걸 뒤집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어쩐지 아내가 떠나고 세 번의 밤을 보냈지만 나는 되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베개를 들고 일부러 소파로 가서 잠을 청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내가 찾은 방법은 아내의 베개를 다시 꺼내어 내 옆에 두는 것이었다. 베개에 배어있는 그녀의 샴푸냄새가 아직도 은은하게 났다. 나는 내가 쓰던 베개를 아예 아내의 베개와 바꾸어 버렸다. 아내의 머리가 내 팔을 누르며 샴푸향이 내 코를 간질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우스웠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니 여전히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날 반기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거실의 불을 켜두고 간 덕인지 전날보다는 조금은 집안의 분위기가 가벼웠다. 아내가 먼저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이유를 아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아내와 빠른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집 때문이었다.
아내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려서부터 언제나 맞벌이로 집에 늦게 들어가는 일이 잦았다. 지금도 몸이 약한 아내는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는 날이 많았고, 그만큼 텅 빈 집에서 혼자 부모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시간도 많았다. 가끔 아내는 내게 형제가 많은 우리 집이 부럽다는 말을 했다. 또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부럽다는 말도 함께 했었다. 그래서 아내는 때로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현관에서 혼자 ‘다녀왔습니다.’하고 말하는 적도 있더라고 했었다. 그러다 아내의 부모님이 2년 전 사고로 함께 세상을 떠나시고 난 후, 그녀는 이 큰 집에 홀로 남았다. 혼자 살기엔 과하게 큰 집이란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 생각에 떠날 수 없었다는 말도 함께 했었다. 그 집을 유지하는 데에 부모님의 사망 보험금이 고스란히 들어갔지만 아내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집을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 돈을 고스란히 아끼고 큰 집에 바로 들어가서 살 수 있다는 것은 내겐 큰 메리트였다. 아내와 내가 안방을 쓰고도 그녀의 아버지가 서재로 쓰시던 방과 아내가 쓰던 방 두 개가 남는, 내가 언제나 부러워했던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은 언젠가 태어날 아기를 위해 극성스럽게도 미리 아기 방으로 꾸며둔, 그 전에는 아내가 썼을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곳곳에 그녀의 취향이 묻어나는 소품과 장식들이 느껴졌다. 가장 최근에 샀던 작은 아기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며 그 침대를 사는 것에 반대를 했지만 아내는 나 몰래 가서 어느날엔가 침대를 사다 집에 들여놓고는 날 보며 의기양양하게 웃어보였다. 자기 몫으로 할당된 용돈에서 깔테니 걱정 마시라는 말도 덧붙였지만 이런 것에 대한 아내의 집착을 알기에 난 웃고 말았던 것도 기억한다.
아내는 그렇게 이 방에 물건 하나를 더 들여놓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아이가 태어나면 직장을 곧바로 그만둘 것이라 했었다. 그것은 맞벌이 가정의 자녀로 큰 아내의 콤플렉스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온전히 그런 생각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작은 아기 침대가 놓여있는 구석자리는 원래는 아내의 침대가 있던 곳이라고 했었다. 그녀는 언제나 이 자리에서 부모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지금도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 아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정말로 또래에 비해서도 작고 가녀렸던 것을 기억한다. 한때는 그 작은 아이가 이 넓은 집을 혼자서 썼을 것이란 생각에 아내의 어린 시절을 질투한 적도 있었다. 그리 오래 된 생각이 아닌, 불과 며칠 전까지의 일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 독일과의 시차를 계산해 보았다. 한국은 지금 저녁 10시, 독일은 오후 조금 지난 시간이다. 아내는 한창 일하느라 바쁠 시간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그녀의 사진을 본 뒤 다시 닫고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아내의 체취가 진하게 배어있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어제보다 많이 옅어진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아내가 빨리 돌아오길 소망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여섯 번의 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보란 듯 아내는 회사 앞 카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날 보자마자 곧바로 팔짱을 껴 오는 아내를 보며 회사 동료들은 뒤에서 혀를 차는 듯 했지만 나는 아내의 그리 풍만하지는 않은 가슴의 감촉이 반가웠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한시도 내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독일에서의 일들을 재잘거렸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해 줄 말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끝없이 그녀의 말을 듣기만 해야 했다. 운전을 위해서 한 손을 놓아야 했지만 나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그녀가 잡은 내 손을 애써 빼내려 하지 않았다. 아내의 손은 당연하게도 일주일 전과 같이 보드라웠다. 하지만 그것을 느낀 것은 연애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손을 잡던 날 이후로 다시 느끼긴 처음인 것 같았다.

집으로 들어가자 나는 침대로 가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전과 같이 아내도 내 옆에 함께 누웠다. 그러고선 아내는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독일에서의 일도 이미 화제가 떨어진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만 셔츠 위로 내 가슴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나는 이것이 그녀가 내게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베개에서는 희미해진 아내의 샴푸향이 직접 내 코에 닿는 것은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머리칼에 코를 파묻고 그녀의 몸에 내 온 몸을 파묻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타이밍 좋게 나와 아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이 밥을 먹어야 할 때라는 것도 잊고 그녀와 함께 이 작은 싱글 사이즈 침대 위에서 겹쳐졌을 지도 몰랐을 일이었다.

“나가서 먹을까?”

나는 집의 냉장고에 특별히 먹을 것이 없는 것을 기억하고는 몸을 반쯤 일으키며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방금 전 자신의 배에서 난 꼬르륵 소리가 부끄러운지,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신기한 여자였다. 결혼 한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런 것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려 하는 것을 볼 때 마다 나는 그녀를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아내를 보며 마치 연애 초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내가 뭣 좀 해줄게.”

하지만 아내는 말을 하기보다는 일어나려는 내 소매를 살짝 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소매를 잡은 팔은 어느새 양복의 자켓을 당겨 벗기고 있었다. 나는 그 팔에 이끌리듯 자연스레 아내의 위로 올라갔다. 그녀에게 기대는 몸은 느긋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내와 처음으로 이어지던 싸구려 모텔방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나는 조급하게 아내의 옷을 그대로 놔둔 채 그녀의 치마 사이로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제지하고는 한쪽 팔이 걸쳐진 내 자켓을 완전히 벗겨내고는 그대로 내 셔츠의 단추를 완전히 끌러냈다. 그제야 나는 아내가 옷을 입고 관계를 갖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또 오늘에야 아내는 옷을 입고 관계를 갖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피부가 많이 닿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아내의 볼을 한 번 쓰다듬고는 함께 아내의 블라우스를 벗겨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따뜻한 아내의 가슴이 내 피부에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 벌써부터 땀이 이마에 맺히고 있었고, 한 방울은 이미 아내의 가슴에 떨어졌지만 서로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아내는 평소보다 더욱 격하게 날 끌어안았다. 나는 마치 내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 같은 착각을 받았다. 그 정도로 아내의 몸부림은 격렬했다. 하지만 그 몸부림은 온전히 나와 좀 더 많은 피부를 맞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나도 그런 아내에 못지않게 몸을 거칠게 움직였다. 그리고 비 오듯 땀이 쏟아져 아내의 얼굴과 가슴에 알알이 떨어졌다.

그러던 도중 아내는 갑자기 내 목을 으스러져라 감싸고 있던 손을 풀어냈다. 내 눈에 의아함이 비치자 아내는 웃으며 그 손으로 내 이마를 훔쳐내어 땀방울을 슥 닦아내었다. 그리곤 살짝 머리를 들고 침대 옆의 탁자에 놓인 머리끈을 집어 자신의 머리를 질끈 묶고는 내게 말했다.

“힘들면 바꿔요.”

아내와의 결혼생활 중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아내는 그렇다고 쳐도 나는 싫어할 말이었다. 아내는 보통의 여자들보다 분명 가벼운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 무게마저도 내 위에 실리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 또한 분명 오늘은 평소와 달리 아내에 맞추어 피부를 좀 더 맞대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몸을 뒤집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내가 내 위에 올라왔다. 처음으로 내 위에 올라탄 아내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도 않았고, 기분 나쁜 것도 아니었다. 아내의 움직임에 맞춰 그 몸무게가 실렸다가 또다시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그제야 아내를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성적인 쾌락과는 조금 거리가 먼, 하지만 기분 좋은 눌림이었다.

나는 아내의 안에 깊게 분출하며 내 위로 땀으로 범벅져 무너지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성으로 들었던 아내의 독일 이야기 중 하나를 떠올렸다.
나는 조용히 내 볼 옆에 머리를 떨군 아내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잦아들던 그녀의 숨소리가 순간 멎는 것이 느껴졌다.

이호선(경영대ㆍ경영2)  kk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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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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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이올 2016-09-06 22:51:38

    학교다닐때 지면으로 보고 생각나서 다시 찾아서 읽는데 역시나 너무 좋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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