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1조 1항의 내용이다. 국민 주권주의는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최고 권력,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으로 민주주의 이념의 핵심이다. 그리고 헌법에서는 이러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첫째, 국민의 정치참여를 보장하여, 참정권과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둘째, 복수 정당제 및 민주적 선거에 바탕을 둔 대의 정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뽑은 대표의 결정이 정말, 국민 모두의 의견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idle model로 꼽는다. 평등한 시민들이 중앙 광장인 아고라(Agora)에 모여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국가의 일에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 민주주의로서 가장 멋진 이상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테네의 ‘시민’의 개념은 현대의 ‘시민’과는 다른 아주 협소한 의미로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여자와 외국인은 제외되었으며 아테네 자체도 여러 식민지로부터 강탈한 세금으로 그러한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했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민주주의의 최초 모델이자, 이상 모델인 아테네 민주정이 사실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았던 제도라는 것이.

하지만 그럼에도 아테네의 민주정은 구성원들의 동등한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국가 정책을 결정했다는 데에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구성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현대에는 구성원의 다양화와 사회의 복잡성으로 말미암아 보든 구성원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귀 기울일 수 없게 되었다. 이로서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위임할 대표를 선거로서 선출한다. 위임된 대표는 국민을 대신하여 입법 활동을 하기도 하고, 국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투표는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이다. 여기서 또 다시 앞서 던진 질문이 떠오른다. 물론, 대표를 뽑아야만 하는 상황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나, 그들은 정말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대의제의 위기’가 드러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관은 입법부와 행정부 두 곳인데, 정책의 전문화로 인해 국민들을 대표하는 입법부보다 행정부에서 발의하여 통과되는 법률의 수가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즉, 결과적으로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임명직 관료 집단이 국가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정치 문화적으로 ‘신뢰’의 저하에 따른 정치적 무관심화 현상도 빼 놓을 수 없다. 민주주의적 가치는 일반적으로 널리 이상적 가치로 수용되는 반면, 동시에 대의제의 핵심 제도에 대해서는 점차 비판적이며 심지어는 무관심화 된다. 이는 투표율의 하락으로 나타나는데, 투표율이 하락함은 다시 선출된 대표의 대표성 부족으로, 악순환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의민주주의지만, 그래도 아플수록 더 세게 끌어 안을 수 밖에 없다. 국민 투표, 국민 발안, 국민 소환의 제도 도입, 인사 청문회의 제도화 등 보완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측면이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으로서 주권을 확인하고 실천하려는 자세가 아닐까. 내가 뽑은 후보가 당선이 되지 않았다고, 나의 의견은 항상 무시당하기만 해-하나 둘씩 손을 놓아버린다면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며 세상을 바꿀 기회는 더 줄어들 것이다.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자가 정치에 대해 불평하는 일은 불편하다. 당신은 당신의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인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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