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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당선작] 별이 빛날 밤
홍은지(문과대ㆍ국문3) | 승인 2014.12.08 23:03

1

아빠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요리는 볶음밥이었다. 가끔씩 엄마만 일을 하러 간 날에, 아빠는 방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 묻곤 했다.
"유진아, 배 안 고프냐?"
그 때에 내 대답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빠가 밥 맛있게 볶아줄게”
‘맛있게’라는 말에 들어간 악센트가 볶음밥을 더 기다려지게 만들었다. 아빠의 볶음밥은 엄마가 만든 것보다 더 맵고 질었다. 기다림만큼 볶음밥은 맛있지 않았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아빠의 이마를 보면서 언제쯤 숟가락을 내려 놓아야할 지 고민했다. 숟가락으로 뒤엉킨 밥알과 채소들 사이를 자꾸만 갈라놓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숨어있던 고기를 골라 먹었다.
몇 달 사이 아빠의 볶음밥을 먹는 날이 잦아졌고, 프라이팬을 잡는 아빠에게 당부를 잊지 않게 되었다.
“아빠 너무 매워서 못 먹겠어, 조금만 덜 맵게-”
“에이, 칼칼해야 맛있지”
어떤 날은 아빠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먹었다. 아빠의 요리 실력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2

아빠의 볶음밥이 엄마의 것만큼 맛있어졌을 때 쯤 아빠는 일을 그만 두었다.
모처럼 동기들과 술을 먹은 날이었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내게 전화를 했다. ‘따알’하고 부르는 수화기 너머로 진한 맥주 냄새가 풍겨왔다. 말소리가 정확히 끝을 맺지 못하고 뭉개지고 있었다. 길게 듣고 싶지 않아 가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술 취한 엄마의 목소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이를테면, 본 모습을 잃어버린 물건들과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시퍼런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아빠의 팔뚝 같은 - 것들을 끄집어내곤 했다.
집 앞 대문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욕지거리가 들렸다. 신발장 옆에 걸려 있는 거울이 무사했으면 싶었다. 1층 현관문을 닫고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이 향해 있는 곳이, 대문 앞에서 들은 욕지거리가 새어나온 곳이 우리 집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한 숨이 나왔다. 문을 열자 숨 막히는 담배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빠져 나갔다. 아빠는 화가 나면 늘 집안에서 담배를 태웠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입으로 담배를 물었다 놓았다 하는 아빠의 모습은 나에게 배고픔을 물어올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럴 땐 집안에 맴도는 담배 냄새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 담배 냄새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기침을 참으며, 신발을 벗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안방에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밥은?”
“먹었지”
안방 문까지도 가지 못한 대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등 뒤에서 내가 돌아보기를 기다리는 엄마가 느껴졌지만 끝내 엄마를 돌아보지 못했다. 다행히 거울은 무사한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살짝 들어 올려 조용히 닫았다.
“당신만 힘들어?”
코가 잔뜩 막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뭉개지던 발음이 더 뭉개지고 있었다. 아빠는 쉽게 힘들어 했다. 엄마는 허리를 자주 두들겼지만 일을 쉬지는 않았다. 집안일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끝내고 온 아빠는 안방에 누워 TV를 켰지만 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어질러진 집을 보면 아빠는 엄마 탓을 했다. 그럴 땐 아빠가 참 식상했다. 아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늘 아빠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같이 일을 하는 아빠의 동료였다. 아빠는 무언가 수틀리면 쉽게 그것을 포기했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은 새로 시작한 지 3개월이 다 돼가고 있었다. 굳이 아빠가 아니어도 새벽같이 나온 또 다른 누군가 금방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일이었다.그래서 아빠가 일을 쉬는 것은 물론이고 그만두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자리에 누워 왼쪽 귀를 파묻고 턱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렸다. 엄마아빠의 얘기가 담배 연기를 타고 온 집안을 맴돌았다. 틈이 잘 맞지 않아 벌어진 문 사이로 담배 냄새가 들어왔다. 거실을 떠나온 지 한 참이지만 아직도 나는 거실에 서 있었다. 겨울에 깔아 놓은 전기장판에 자리를 내준 엄마아빠는 활짝 열린
문 옆, 거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 그것을 듣고 있자니 내 코도 맹맹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계속해서 코를 훌쩍거렸다. 아무리 들이마시고 풀어 봐도 제대로 풀어 지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가 꽤나 답답해 보였다.
그 다음 날부터 6시에 울리던 아빠의 알람은 제 할일을 잃고 말았다. 방학이라 한가로운 평일에는 이제 더 이상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아빠가 나가면 거실 한 쪽 면을 가득 채운 창 앞에서 커피를 마시던 엄마의 여유도 사라져 버렸다. 엄마는 차로 40분쯤 가야하는 공장에 나가 매일같이 밥을 차려줬다. 아빠가 일을 그만 나간 후로 엄마의 일과는 더 길어졌다.


3

아빠가 일을 그만 나간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B시로 가는 빨간 버스가 들어오자 고개를 돌리고 선 사람들을 비집고 겨우 버스에 올랐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드문드문 패인 곳이 많았다. 그 중 제일 내리기 쉬운 곳을 찾아 자리를 채웠다.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 순간 손을 올려놓은 가방에 진동이 퍼졌다. 더 길었으면 좋았을 진동에 아쉬워하며 휴대폰을 켰다. 너무나 선명한 화면이 눈을 아프게 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빛 속을 파헤쳐 보니 10시가 지나있었다. 그 시간은 진동을 퍼뜨린 진원지가 어딘지 말해주고 있었다.
‘어디’
물음표라도 하나 찍어주지. 무심한 엄마의 말투를 따라 답장을 보냈다.
‘버스. 금방 가’
전송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안 읽음 표시가 사라졌다. 내가 올 때 까지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을 엄마가 그려졌다. 방금 보낸 메시지처럼 버스도 집 앞까지 금방 전송되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창 옆에 몸을 기대고 앉은 엄마가 보였다. 신발을 벗으며 엄마에게 ‘아빠는?’하고 물었다. 엄마의 턱이 굳게 닫힌 안방 문을 가리켰다. 그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엄만 뭐하고 있었어?”
“별 보고 있었어.”
엄마의 시선이 닿는 곳을 바라보았다.
“뭐 보이지도 않고만.”
“아직 덜 어두워져서 그래”
말을 마친 엄마는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엄마는 내가 씻고 스킨로션을 바를 때 까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거실로 나와 다시 엄마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닥을 짚고 있는 엄마의 왼 손목이 보였다.
우리 가족이 3번째로 옮겨간 집 유리문에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가던 날이었다. 금이 간 유리문을 보며 생각했다. 왜 아빠는 이런 식으로만 화를 표출하는 걸까. 집에 큰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면 언제고 아빠를 붙잡을 준비를 하며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깜짝 잘 놀라는 것은 다 이 때문이었다.
그날도 온 몸으로 아빠를 붙잡고 있었다. 엄마의 왼쪽 손목에는 두 줄로 된 금색 팔찌가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팔목을 붙들고 놓지 않고 있었다. 결국엔 그 힘에 못 이겨 엄마의 팔찌가 툭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아침을 먹던 중에 엄마의 빈 손목을 보았다. 생선 접시를 내려놓는 왼 손목에는 처음보는 흉터가 있었다. 하필이면 손목에 자리를 잡은 기다란 흉터가 무섭게 느껴졌었다. 젓가락으로 밥을 뒤적이다 결국 아침을 포기하고 일어났다. ‘왜 안 먹고’ 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괜히 생선 탓을 했다.
‘생선이 너무 비려’
상처를 처음 본 후에, 하얀 환자복을 입은 엄마가 한 손에 붕대를 감고 병실에 누워있던 것을 생각해냈다. 언젠지 모를 기억이 기다란 흉터 끝에 걸려 올라온 것이다. 엄마의 손목에 남겨진 날카로운 기억은 무엇일까. 여러 갈래로 뻗은 그것들과 함께 끊어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3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헤집어봤지만 걸려 올라오는 기억은 없었다. 시퍼런 힘줄이 올라온 아빠의 팔뚝만 생각날 뿐.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였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꺾인 손목위에 길게 이어진 흉터가 불안 불안했다. 곧 그어질 위기에 처한 절취선처럼 선명한 흉터가 계속 눈에 거슬렸다. 조용히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하며 다물어진 입이 ‘마’하며 터질 때, 불안한 것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부르는 자체로 안심이 되는 것. 엄마가 고개를 들기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엄마 죽으면 따라 죽을 거야 그러니까 죽으면 안 돼”
바닥에 내려놓은 휴대폰 때문에 구겨졌던 엄마의 어깨가 펴졌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가 말했다.
“미쳤어”
엄마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오랫동안 엄마를 바라보지 못했다. 엄마와의 눈 맞춤은 언제나 힘들었다. 눈을 맞추면 엄마의 지친 얼굴이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그것을 피하려 엄마처럼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고 SNS 창을 켰다. 화면을 끌어당기며 궁금하지도 않은 새 소식을 재촉했다.
“엄마도 유진이 없으면 못살아”
애틋함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만 들어가 자라는 엄마의 말에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방으로 갔다. 오랜만에 맞는 조용한 밤이었다. 며칠 사이 길어진 밤이 어둠을 더해가고 있었다.

 

4

주말에는 5시부터 10시까지 백화점 뒤에 자리 잡은 파스타 가게에서 일을 했다. 탁 트인 주방에는 설거지를 하는 나와 요리를 하는 사장님, 보조 요리사 언니 까지 3명이 일을 했다. 평일이나 주말 오전 시간에는 손님보다 일하는 사람이 많을 때도 있었다.
주말 저녁시간은 그 때 없던 손님들이 죄다 몰리는 시간 같았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서 오세요.’가 이어졌다. 그렇게 사람이 많을 때면 셋은 말 한마디 못한 채 자기 자리에만 서있었다. 가끔씩 ‘유진인 어디 갔냐?’며 바로 뒤에서 일하는 나를 찾는 사장님의 너스레가 정적을 깼다. 하루 종일 개수대 앞에서 그릇을 붙잡고 있으면 손이 퉁퉁 붓고 허리가 저릿했다. 일이 바빠 5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지만 무슨 일이든 그 시작이 항상 어려웠다. 일을 하러 가는 시간만큼 괴로운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 차를 타고 출근하면 조금의 유예시간이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나았다.
오늘도 일하러 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선뜻 집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공장 아저씨들의 점심을 해주고 온 엄마는 아침에 까먹은 물고기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몇 달 전 아는 분에게 받은 어항과 물고기들은 엄마의 새로운 낙이었다. 옷을 입고 나와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나보다 걔네들이 더 좋지?”
엄마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잘 자잘한 물고기들 하나하나를 눈길로 쓰다듬고 있었다.
“얘들아 너네가 이해해, 언니가 질투하나보다”
엄마 옆으로 다가가 입을 크게 벌리고 어항을 집어삼키는 시늉을 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안방에 있던 아빠는 휴지에 끓어 넘치는 가래를 뱉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끊기고 엄마에게 데려다 달라고 얘기했다. 차 키를 손에 쥐고 일어난 엄마는 열쇠 끝으로 안방을 가리키고 신발장으로 갔다. 숨이 넘어갈 듯한 기침을 하고 있는 아빠는 양말을 신고 있었다.
“아빠 나 일하러 간다, 엄마가 태워준대”
먼저 신발을 신고 기다리던 엄마가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신발장까지 세 걸음도 떼지 못했을 때, 아빠가 소리쳤다.
“야. 카드 살려놨냐”
날이 선 아빠의 말이 현관 쪽으로 날아갔다. 무뚝뚝한 아빠의 말투는 요즘 들어 더 삐죽 삐죽 돋아있었다.
“주말 지나야 된다니까”
휘-유. 화를 누르는 듯 아빠의 커다란 한 숨 소리가 들렸다. 신발을 신고 일어선 내 등 뒤로 통장으로 돈을 보내라는 말이 들렸다. ‘지겨워’ 들릴 듯 말 듯 한 엄마의 목소리가 문을 열고 나갔다. 엄마의 입버릇 같은 그 말을 들으며 오늘은 엄마 차를 타는 것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잠시 후 그 선택이 일하러 가는 시간을 평소보다 이백 배는 더 괴로워지게 했음을 깨달았다.

 

5

대문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슬쩍 바라본 엄마는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자잘한 물고기를 쓰다듬던 눈길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엄마의 차가 집 앞 골목을 벗어나 신호 앞에 멈춰 서자 엄마가 말했다.
“유진아, 엄마 아빠랑 헤어질까?”
엄마의 고개가 왼쪽으로 비스듬히 뉘여 졌다. 핸들은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것 같은 엄마의 오른 손을 받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던 고개를 운전석으로 돌렸다.
“왜?”
엄마와 나는 잠시 눈을 마주쳤다. 엄마는 이내 고개를 돌려 빨간 불이 켜진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그냥, 엄마가 너무 힘드네.”
살짝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운전석을 향해있던 고개를 조용히 앞으로 가져왔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열 자도 안 되는 말인데,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입을 열면 방금 전 엄마의 것 보다 더 흔들리는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 게 돼버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힐끗거리는 엄마의 눈을 피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을 더 꽉 다물었다. 핸들이 받치고 있던 엄마의 오른손이 바삐 움직였다. 멈춰있던 창밖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줄지어 선 앙상한 나무들이 흘러갔고 사람들이 흘러갔고 건물들이 흘러갔다. 혼자 빨간 신호가 켜진 그 곳에 멈춰있었다. 아빠와 헤어지고 싶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 그 곳에. 남겨진 나를 두고 모든 것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6

대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지나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면 15분도 지나지 않아 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버스를 탈걸’
남에게도 할 수 없는 말들을 서로에게 던지는 엄마 아빠를 보며 생각했다. 남보다 못한 사이는 이런 거구나. 그때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는 상상을 했었다. 그리고 TV에서처럼 아무렇지 않게 양쪽을 오가며, 용돈을 두 번씩 받는 생각도 했었다. 나란히 붙여 부르던 엄마아빠가 따로 떨어져 엄마와 아빠가 되어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무섭지 않은 척 정해놓은 최후의 결말일 뿐이었다. 이것이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했음을 방금 전 엄마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그저 최후이길 바랐던 결말이 갑작스럽게 거리를 좁혀온 것이다. 말 그대로‘척’에 지나지 않을 센 척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놀랐구나, 그냥 해 본 소리야”
엄마도 나도 그런 이야기를 그냥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해보였던 그 센 척을 엄마에게도 보이고 싶었다. 이제 난 성인이고 엄마아빠의 뜻을 존중해줄 수 있다고. 나는 신경 쓰지말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항상 어려웠던 엄마와의 눈 맞춤이 생각났다. 피하고만 싶었던 엄마의 지친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에 돌아온 엄마가 아빠가 만든 볶음밥을 먹으며 허기를 달랠 때, 그래도 우리가족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바람들을 솔직하게 마주하지 못한 채, 센 척을 해보였다. 엄마가 아빠와 헤어져도 상관없을 거라는 센 척. 그런데, 아빠와 헤어지고 싶다는 엄마의 말은 그 모든 것들을 무너뜨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엄마를 본 순간 어떤 방식으로도 세보일 수 없었다. 굳게 다문 입으로 본의 아니게 또 다시 엄마를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그래도 눈물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차 문을 닫고 엄마를 뒤로한 순간, 꽉 다물었던 입이 파르르 떨렸다. 밀려나지 않는 앞 차를 보며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엄마가 느껴졌다. 그 시야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게를 지나 옆옆 건물의 화장실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했다. 빼곡히 들어 찬 테이블을 보고 주방으로 들어가 얼른 개수대 앞에 섰다. 한 바탕 설거지가 끝나고 얼마 안 됐는지, 개수대가 텅 비어 있었다. 차라리 그릇이 쌓여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입을 꽉 다물며 뒤를 돌아 조리대 위에 놓인 행주들을 모아왔다. 평소보다 깨끗했던 행주들에 세제를 잔뜩 묻혀 있는 힘껏 문질렀다. 거뭇한 기름때가 하나도 남김없이 빠지길 바랐다. 그때 보조 요리사 언니가 페페로치니를 꺼내 잘 게 부수고 있었다. 사장님은 붉은 부스러기들을 모아 프라이팬에 넣고 마늘과 함께 볶기 시작했다. 매운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참았던 눈물이 났다. 매콤한 냄새가 테이블에 닿지 못하도록 후황이 돌아가고 있었다. 소리가 요란했다. 덕분에 훌쩍거리는 내 소리도 함께 빨려 들어갔다. 다음 주문도 그 파스타이길 바랐다. 후황이 꺼지고 조용히 티슈를 가져와 코를 풀자 사장님이 말했다
“뭐, 얼마나 맵다고 유난은”
풉-.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코푼 휴지를버리며 사장님을 흘겼다. 사장님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나를 보며 ‘뭐?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둘 손님들이 나가고 빈 그릇을 가져와 설거지를 시작했다. 테이블은 비워지기가 무섭게 채워지고 있었다. 페페로치니의 매운 향기가 주방을 가득 채우다 빠져나가길 수차례 반복했다. 오늘은 가게가 더늦게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는 페페로치니도 없었고 후황도 없었기 때문에, 훌쩍거리는 소리가 핑계를 찾지 못하고 집 안 가득 차 버릴 것이 두려웠다. 손님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 마감을 시작했다. 오늘따라 구석구석 낀 찌든 때가 눈에 더 잘 띄었다. 더 이상 닦을 곳이 없도록 청소를 한 후 가게 문을 닫았다. 곧 마주해야할 괴로운 시간까지의 유예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7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꽤 조용했다. 안방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엄마는 전기장판이 아닌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고 있었다. 아빠의 자리는 헝클어진 이불만이 놓여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충전기를 휴대폰에 연결했다. 메신저를 열어 친구 목록을 천천히 내려 보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자주 고민을 나누었던 친구의 이름을 검색했다. 활짝 웃고 있는 친구와 그의 애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차마 저 해맑은 얼굴에 대고 엄마가 아빠와 이혼할 것 같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창을 닫은 후, 몰려다니던 동기들과 만들어 놓은 대화방을 눌렀다. 조용한 대화방에 노란색 말풍선 하나를 가만히 띄워보았다.
‘다들 뭐해?’
사라지는 숫자들을 바라보며, 또 다른 말풍선을 만들었다.
‘우울해’
동기들은 하나 둘 물음표를 던졌다. 우울해라는 말풍선이 꽤나 무거워보였다.
엄마아빠가 이혼할 것 같다는 말을 하면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어쩔 줄 몰라 할 모습들이 떠올랐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친구들에게 조금은 미안할 것 같았다. 우울해라고 날린 말풍선을 후회하며 익살맞은 표정의 이모티콘을 찾아 보냈다.이내 친구들은 오늘 갔던 맛집 사진을 올리고 터무니없는 농담을 던졌다. 대화방의 하얀색 말풍선이 계속해서 떠올라 자꾸만 밀려올라갔다. 하얀 풍선들은 저마다 키읔을 머금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무게가 실린 ‘우울해’라는 말풍선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올라가버렸다. 대화방을 닫아버리고 휴대폰을 끈 순간 다시 진동이 울렸다.
‘[한국장학재단] 임유진님은 학자금대출대상자로 선정되었으니 홈페이지에서 지급신청을 클릭하세요.’
며칠 전 상환금의 1%도 내지 못한 학자금 대출 서비스를 또 신청했었다. 아무런 독촉도 하지 않고 말없이 빌려주기만 하는 장학재단의 대출 서비스가 요즘 들어 무서워지고 있었다.
누구나 알만한 K대학에의 입학은 꿈같은 일이었다. 300만원이 훌쩍 넘는 한 학기 등록금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클릭 한 번이면 그것들을 대신 납부해줄 친절한 나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등록금납부 기간에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 대출 서비스를 이용했다. 5분도 걸리지 않는 납부 시간은 그 액수를 헤아려 보기에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년 후 갚아나가야 할 빚 목록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빛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나의 대학생활은 빚으로 가득해지는 중이었다. 동기들은 저마다 앓는 소리를 했지만 다들 꽤나 살만해 보였다.
항상 빚 문제에 시달려야했던 우리 집에 끝을 모르고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까지 더해졌다.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수많은 빚들이 엄마와 아빠 사이에 쌓여 벽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불 꺼진 방 안 곳곳에는 어둠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 어떤 빛도 들어올 수 없도록 어둠이 빈틈을 모두 막아버린 것 같았다. 하루하루 더해지는 어둠이 우리 집을 집어 삼킬 것 같은 두려운 밤이었다. 아빠는 결국 집에 오지 않았다.

 

8

잠에서 깨어 방을 나가 집안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3시가 지나 있었다. 무리해서 마감을 하고 온 탓에 온 몸이 뻐근했다. 엄마는 내가 일어나기 전에 공장엘 간 것 같았다. 거실에 걸린 거울을 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밤사이 흘린 눈물이 눈두덩에 오동통한 살집을 만들었다. 그때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으로 살이 오른 눈두덩을 문지르며 말했다.
“누구세요”
“응, 주인집이에요”
이번에 이사 온 집은 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특히저 주인집 아주머니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처음 이사를 온 날에는 이삿짐을 옮기는 내내 집안에 들어와 이것저것 참견을 해댔었다. 거실 창으로 커다란 냉장고를 들여올 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또, 집에 못을 박을까 싶어 같은 얘기를 또 하고 또 하셨다. 행여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인 것을 우리가 까먹을까 싶어 전화를 할 때나, 문자를 할 때나 말끝에 ‘주인집’이라고 덧붙이는 아주머니였다. 세입자가 어떤 존재인지 한 순간도 잊지 못하게 해주시는 분이었다. 그런 아주머니가 집에 찾아왔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엄마는 어디 가셨나 보네?”
문을 열자 아주머니는 제 집을 온 듯 -사실 아주머니의 집이 맞았다- 여기저기를 살피셨다. 일을 가셨다고 하는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번 달 월세랑 전기세가 하나도 안 들어와가지구”
“아...”
“저 저번 달도 그렇고 계속 이러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어요?”
“네..”
“그리고 편지들 좀 제때 찾아가고”
아주머니는 마지막말과 함께 편지뭉치를 던지듯 쥐어주시고 나가셨다. 겨우 4개 밖에 안 되는 편지뭉치가 우편함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었을 지 떠올려보았다. 갈 곳을 찾지 못해 홀대 받는 편지 뭉치들이 주인집에 얹혀사는 우리 집을 보는 것 같았다. 편지 뭉치에는 나와 아빠, 엄마 앞으로 날아온 휴대폰 요금 고지서가 있었다. 그리고 엄마 앞으로 온 또 하나의 편지는 개인 파산 지원센터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엄마가 요 며칠 서류 뭉치를 들고 다니던 것이 생각났다. 세계 여행을 하며 호텔을 짓던 게임에서나 보던 ‘파산’. 그 게임에서처럼 우리 집의 재산이 모두 동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투를 뜯어볼까 요리조리 살피는 사이에 또 다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쿵 쿵 내리치는 발소리가 아빠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들고 있던 편지뭉치를 부엌으로 가져가 전자레인지가 있는 선반 옆에 끼워 놓았다.덜컥 문이 열리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빠가 신발장 앞으로 쓰러졌다. 술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아빠, 아빠- 들어가서 자!”
아빠를 흔들어 깨우는 중에 뒤이어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쓰러져 있는 아빠를 보며 또 다시 ‘지겨워’라고 말했다. 아빠를 안방에 눕히고 나와 물었다.
“일하러 간 거 아니었어?”
물을 마시는 엄마의 턱에 생채기가 생겨있었다. 붉어진 엄마의 목을 보며 더 이상 묻지 않고 부엌을 나와 화장실로 갔다. 빨리 일을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등 뒤로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대문을 나와 언덕을 오르니 찬바람에 얼굴이 따끔거렸다.

 

9

가게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내 얼굴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너 어제 누구한테 맞았냐?”
오동통하게 오른 살집이 빠지기엔 일어나서 일을 하러 오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손으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어제 너무 힘들어 가지고 그런 거예요.”
사장님은 입을 반쯤 벌리고 ‘헐’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누가 보면 너 혼자 일 다 한 줄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가셨다. 비어있는 테이블이 곧 들어찰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개수대에 쌓인 그릇들을 다 씻어낼 쯤에 사장님이 다시 들어왔다. 손에는 따뜻한 커피를 잔뜩 들고 있었다. 나와 보조 언니, 서빙 언니에게 커피를 주며 사장님이 말했다.
“야, 니들이 행복한 적이 있으니까 힘들기도 한 거에요-”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를 보며 사장님은 ‘어?’ 하며 눈을 크게 뜨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말이야 어? 한가할 때 앉아서 쉬면서 행복했어, 안 했어? 어? 좀 바빠지니깐 투덜대고 말이야 콱-”
이해할 수 없는 사장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보조 언니가 입을 열었다
“또 어디서 명언 하나 찾으셨나보다”
언니의 말에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찬 기운이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손님에게만 들려주는 사장님의 굵은 ‘어서 오세요.’가 들렸다. 우리는 각 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빈 개수대를 등지고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방금 전 내 웃음소리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엄마가 생각났다. 휴대폰을 켜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데리러 오면 안 돼?’
대화창을 닫자마자 곧바로 진동이 울렸다.
‘그래’


10

운전석에 앉아 있는 엄마의 눈이 내 눈처럼 부어있었다. 조수석 앞에 붙은 선바이저를 내려 그 안에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조금은 붓기가 가라앉은 눈을 보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사장님 진짜 이상한 거 같아.”
“왜?”
“갑자기 예전에 행복해봤으니까 지금 힘들다고 느낀다는 거야”
“...”
“손님 없을 때 행복했으니까 바쁘다고 투덜대지 말라구- 멋있는 말 하고 싶어서 막 끼워 맞추셨나봐.
엄청 웃기지?”
“끼워 맞추기는- 맞는 말이구만, 그런 말은 어디서든 다 통하는 거야”
마지막 말과 함께 엄마는 휴대폰을 넘기며 ‘계좌 번호 좀 찍어서 보내’라고 말했다. 넘겨받은 엄마의 휴대폰에는 ‘민희엄마’와의 대화가 있었다. 엄마는 ‘민희엄마’에게 돈을 빌리고 있었다. 돈이 없다는 하얀 말풍선 사이사이에 자꾸만 액수를 줄여 가는 노란 말풍선들이 보였다. 엄마의 계좌번호를 찍어 보내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는 언제 행복했다고 이렇게 힘든 걸까.”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이번엔 엄마 눈을 피하지 않았다. 살짝 입 꼬리를 올려 보였다. 엄마가 얘기했다.
“곧 행복해지려고 그런가보지”
엄마의 말을 들으며 한 숨을 쉬었다. ‘지겨워’ 엄마의 입버릇 같은 그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엄마랑 아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엄마도 나도 코앞까지 다가온 결말을 느끼고 있었다. 밖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밤이 더 어둡네. 얼마나 더 어두워지려나.”
“별이 뜨려고 그러나보네”
밤마다 나를 기다리면서 별을 보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어두울수록 별이 더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가만히 차창 밖으로 하늘을 올려봤다. 별을 찾아보았지만 눈에 띄게 반짝이는 것은 없었다. 가늠할 수 없는 어둠만 있을 뿐이었다. 새까만 밤 속에서 곧 반짝일 별을 상상해보며 눈을 감았다.

 

11

새 학기가 시작되고 엄마와 나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와 아빠는 별거를 시작했다. 엄마의 파산 신청 이후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재산이었지만 분할 절차가 꽤 복잡한 것 같았다. 아빠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 지방으로 내려갔다. 엄마와 이사를 하는 날, 방학이 되면 아빠네 집에 놀러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렇게 엄마아빠는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K대학 입구에는 노점상들이 아주 많았다. 보도블록을 꽉 채운 노점상들 때문에 걸어 다닐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수업까지 시간이 남아 그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곧 ‘소원 팔찌 5000원’이라고 쓰여 있는 좌판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서자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말했다.
“이거 끊어질 때 까지 차고 계시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팔찌예요”
여자의 말을 듣고 팔찌들을 하나 둘 살펴보았다. 그 중에 까맣고 노란 줄들로 만들어진 팔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새까만 줄들이 빈틈없이 엮여 있었고 간간히 노란 줄이 그 사이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별이 뜬 밤하늘 같았다. 팔찌가 끊어지고 거기에 박힌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면 정말로 소원이 이루어 질 것 같았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자 여자는 팔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여자가 팔찌를 차주는 동안 다른 모양의 팔찌 2개를 더 골랐다. 더 고른 2개의 팔찌를 봉투에 받아들고 길을 나섰다. 가만히 손목을 감싼 팔찌를 당겨 보았다. 팽팽히 당겨진 팔찌가 끊어지는 날을 생각했다. 노란 별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나오는 밤,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홍은지(문과대ㆍ국문3)  kk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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