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이 내년 제58회 시험을 마지막으로 폐지된다. 법률의 양성과 충원은 이제 2009년에 도입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제도가 도맡게 된다. 최근 사법시험제도의 존치론이 빈발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대학원 과정인 로스쿨은 교육비용이 적지 않은 만큼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실질적으로 박탈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래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예를 들며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기회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법시험은 기회의 면에서 진정 열린 제도이다. 누구든지 합격만 하면 사법연수원에서 적지 않은 봉급을 받으며 변호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논지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합격한 사람들의 케케묵은 무용담에 불과하다. 없는 집에서 모든 식구의 희생 위에 어렵게 합격하여 판·검사가 되어 영감님 소리 들으며 위세를 과시하고, 변호사가 되어 돈을 다발로 싸 들고 와 베개삼아 베고 자던 시절은 이미 전설이 되어 사라졌다.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해서 “용”이 되던 시절은 이미 지난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얻어지는 전리품 또한 합격한 사람만이 누린다. 낙방생의 경우에는 실패의 고통에 가족의 고통까지 겹친다. 실제 우리가 쉽게 말하는 제2, 제3의 노무현이라는 꿈의 이면에는 동생 뒷바라지하느라 시집도 안 가고 공장에서 일하던 누나의 고통이 자리잡는다. 실현확률이 3%도 채 안 되는 그 희미한 희망의 존재근거는 가족들의 희생이기 때문이다.
 원래 로스쿨제도의 도입목적은 법률가의 충원과 양성을 국가가 통할하던 국가주의적 체제를 벗어나고자 함이었다. 대학이라는 시민사회가 법률가를 양성함으로써 보다 다양하고 다원적인 법률가공동체를 만들어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자는 목적 또한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사법시험과 같은, 97%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고비용의 법률가충원제도에 대한 비판도 한 몫을 하였다. 다만, 로스쿨에 대한 기존 법조인들의 반발이 로스쿨제도의 장점을 지워버린 것이 문제였다. 2000명으로 한정지워 버린 입학총정원제는 야간로스쿨이나 파트타임 로스쿨과 같은 저비용의 제도가 등장할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렸다. 인가주의가 아니라 허가주의로 이루어졌던 로스쿨 인가과정은 로스쿨설립비용을 과도하게 상승시켜 학생 한 사람당 교육비용을 사회적으로 부담가능한 수준을 초과하게 만들었다.
 사법시험제도 존치론의 문제점은 여기서 나온다. 그것이 진정으로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것이 되려면 그 해답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채 사법시험에 매달리는 고비용의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호사의 자격에 도전할 수 있는 야간로스쿨과 같은 제도적인 대안들을 모색하고 그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는 방식의 것이 되어야 한다. 개천에서 탈출하는 것은 바람직하되, 그것을 오로지 개인의 부담으로 전가해 버릴 것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와 사회가 부담하는 보다 선진적인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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