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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자> 노사정 합의
심재호 기자 | 승인 2015.10.06 19:58

 알 것 같으면서도 알쏭달쏭하다. 중요해보이긴 하는데 흥미롭게 보이진 않는다. 지난 9월 13일 이뤄진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합의’에 대한 온갖 기사와 성명이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자기주장과 전문용어가 난무한다. 이 거대한 논쟁의 구조를 <건대신문>이 알기 쉽게 정리해봤다.

임금피크제? 노동시장 이중구조? 당최 무슨 소린지…
 
정부에서 강조해온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목표는 청년고용 확대다. 방송광고 뿐만 아니라 버스나 지하철 등의 광고판에서도, 거리의 현수막에서도 ‘노동개혁’ 또는 ‘청년 일자리 확보’ 등의 문구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지난 노사정(노동자ㆍ사용자ㆍ정부) 합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은 청년일자리 확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엄밀히 말해 좀 더 포괄적 문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인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잠깐, 위의 문단에서 작은따옴표가 씌워진 여섯 개의 문구들 중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줄 수 있는 것들이 몇 개나 되는지 한 번 세어보자. 만약 다섯 개 이상이라면, 당신은 더 이상 이 기사를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기껏해야 두어 개 뿐이라면, 이어지는 내용에 주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문제의 발단,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어떤 재화를 사고 파는 시장에서 그 재화의 가치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기제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거래되는 재화가 노동력일 뿐이다. 수요(일자리)가 공급(구직자)에 비해 많으면 그만큼 노동력의 가치(임금)가 오르고, 반대면 내려간다. 수요자(기업)는 고급 노동력을 최대한 싸게 구입하려 하고, 공급자(구직자)는 최대한 비싸게 판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수요가 공급에 비해 부족하면, 공급자들은 다른 공급자보다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경쟁(한국사회의 경우 스펙 쌓기)에 돌입한다. 학자들은 이러한 노동시장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이다. 1차 노동시장은 고임금ㆍ고용안정ㆍ좋은 노동환경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2차 노동시장은 저임금ㆍ고용불안정ㆍ열악한 노동환경이 특징이다. 보통 노조가 잘 조직돼 있는 대기업ㆍ공기업 등이 1차 노동시장에 해당하며, 노조가 아예 없는 비정규직ㆍ일용직ㆍ아르바이트 등이 2차 노동시장에 해당한다. 중요한 부분은 지금부터다. 1차 노동시장에 주목하자. 고용안정이 전제된 대기업 등의 내부에서는 임금, 즉 노동력의 가치가 시장기제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공급자 간 경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기제는 처음 입사할 때 까지만 작동한다. 입사 직후 결정된 임금은 이내 승진이나 배치전환 등을 통해 변동된다. 외부와 같은 시장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기업 내부에만 존재하는 이러한 노동시장을 학자들은 ‘내부노동시장’ 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엄격히 구분되는 ‘내부’와 ‘외부’가 존재하는 노동구조가 바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라는 것이다.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대기업 등의 인사구조를 내부노동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내부노동시장에 속하는 노동자는 고용안정이 보장된 정규직을 말하는 것이다.
 
정년연장 대처법, 임금피크제
 
   
 
‘임금피크제’의 구체적인 적용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직무능력에 비례해 임금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정점을 의미하는 피크(peak)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대체로 노동자의 생산성이 나이가 들수록 상승하다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계속 하락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의 생산성이 ∩자 모양을 그리기 때문에, 임금 역시 그와 비례하게 주자는 것이 임금피크제의 핵심 내용이다. 언뜻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아이디어가 문제로 대두되는 까닭은 우리나라의 내부노동시장이 여태껏 그러한 방식을 채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로 채택해온 방식은 경력과 연차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연공급 체계다. 경력이 쌓일수록 직급과 함께 임금이 꾸준히 상승하고 정년이 되면 은퇴한다. 젊은 시절엔 능력에 비해 임금을 적게 받고(A), 나이가 들면 능력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B). 정년이 늦어지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이유다. 그런데 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2013년 국회를 통과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정년법)에 따라, 오는 2016년부터 300인 규모 이상의 사업장들은 모두 정년을 최소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정년보다 7년 정도가 갑자기 확 늘어나는 것이다. 현재 설정된 정년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노동자의 생산성과 기업이 지는 부담의 균형이 맞는(A=B) 시점이다. 그러나 연장된 정년에서는 이러한 균형이 깨진다. 기업의 부담이 불균형하게 커진다. 따라서 기업의 입장에선 이 기간의 임금을 다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이 임금피크제다. 정년 연장 기간의 노동자가 받는 임금을 대폭 삭감해 균형을 다시 맞추는 것(a=b)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당사자한테 지나치게 잔혹한 형태이므로, 그래프 전반을 완만하게 조정하는 방식이 채택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년 연장 노동자의 임금을 낮춰 확보된 재원은 그보다 젊은 신입사원 및 중간급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에 활용될 것이다.
 

정년 보장 노동자에게 치명상,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현행 근로기준법은 의외로 상당히 엄격하다. 우리나라에서 사용자가 적법하게 노동자를 해고하는 길은 매
우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한 정리해고와 타당한 사유가 있는 징계해고뿐이다. 물론 외부노동시장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이야 근로기준법이고 뭐고 언제나 고용 불안정 상태에 놓여있지만, 원칙상 그렇다. ‘일반해고’란 성과 부진 등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현재 부당해고에 속한다. 취업규칙은 그 기업의 노동자가 지켜야 할 규칙과 근로조건에 대한 사항을 정해놓은 사내규칙이다. 근로조건에는 임금이나 정년, 근로시간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근로조건을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예컨대 임
금을 낮추거나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라고 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의 동의 없이 불이익변경을 할 수 없다. 임금피크제가 내부노동시장에서도 정년까지 보장되는 일부의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었다면, 일반해고와 불이익변경은 모든 노동자에게 떨어진 폭탄과도 같다. 이번 합의가 저 두 가지를 허용하는 길을 열었다는 말은 곧 외부노동시장과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길을 열었다는 말과 같은 셈이다.

외부노동시장에 놓인 ‘청년’과 관계없는 노사정 합의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임금피크제’, ‘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은 모두 이 내부노동시장에만 관련된 사안들이라는 점이다. 임금피크제의 경우 내부노동시장의 임금체계를 어떻게 개편하느냐의 문제고, 일반해고와 불이익변경은 비교적 보호받고 있던 내부노동시장과 외부노동시장의 경계를 부숴버리는 하향평준화의 문제이다. 정부와 여당의 대대적인 홍보 내용과는 달리, 당장 ‘외부’의 무한경쟁 속에서 허덕이는 청년들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청년들이 바라는 일자리는 내부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이지만,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그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심재호 기자  sqwogh@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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