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표면과 그 안에 숨은 진실로 나눠져 있다.” 이 문장은 어떤 철학수업을 듣고 마음에 남았던 말이다. 세상은 우리를 피상적인 것에 집착하게 만들고, 우리가 그 속을 읽을 수 있도록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다 가끔씩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것들과 마주할 때면, 견고한 껍데기 속에 여전히 얼마나 많은 비밀들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해진다. 최근, 일상적이고 정상적이어야 할 공적 영역에 비합리적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부친 최태민 영생교 교주의 관계에 대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불거지고 있다. 정계에선 박대통령과 최씨의 관계가 ‘신정정치’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그 내용이 과연 드라마를 능가하는 듯하다.

이런 정국에서 가졌던 의문은 이랬다. 현 언론 등이 국정혼란 사태를 비판하기 위해 ‘무당정치’, ‘샤머니즘 정권’ 등의 표현을 동원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이러한 표현들은 은연 중에 샤머니즘에 대한 반문화적 태도를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문제제기가 필요한 이유는 강력한 ‘이름짓기’는 박대통령과 최씨의 개인사 등에 집중돼 우리로 하여금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박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영생교를 믿든 말든, 그것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크게 관여할 수 없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분하지 못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국정혼란 사태는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과, 자본의 부패, 관료 전문가 사회의 침묵 등이 빚어낸 복합적인 문제다. 현 사태를 이름짓는 표면들 속에 과연 어떤 진실이 들어있을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민속학 전공자인 주강현 박사는 페이스북에서 최근 무당정치 담론에 대해 “무당정치라는 말보다 그냥 신정정치라 명명해 쓰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올바름’은 표현 자체에 내포된 정치적ㆍ문화적ㆍ성적 편견 등을 최대한 배제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캠페인이다. 예를 들어 '양성평등'이란 말을 사용할 때, 이 말은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만을 성 평등의 대상으로 한정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선천적인 장애나 성전환 수술 등 후천적인 이유로 인해 성별이 불분명한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양성평등’이라는 표현에 의해 소외된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은 이름 짓기에 의해서 숨겨지는 것들을 들쳐 낸다. 우리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가능한 한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껍데기들 속에서 숨은 의미를 발견하고, 중요한 것을 지적할 줄 아는 눈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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