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현대로 명명되든 탈근대로 명명되든 개체에게 필요한 것들은 ‘주체’와 ‘정체’다. 이 두 가지가 내부에 없다면 그 삶의 주인은 타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는 무엇보다 인식과 실천의 원리, 곧 인간의 모든 인식 및 도덕적 실천의 토대로 기능하며, 다른 것들에게 예속되지 않는 자율적인 존재자로 간주된다. 또한 정체는 예속상태에서 벗어난 시민들이 정치사회를 구성하려는 개인들의 자발적인 의지에서 통치의 대상이 아닌 지배의 주체화된 자기지배의 규범적 토대를 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자명한 전제는 자유롭게 토론하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공동체의 문제에 개입하는 개인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행위와 관심 없이도 윤리적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내 삶의 프레임과 네트워크를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존재의 미학’이나 ‘도덕과 윤리’ 그리고 가치와 규범이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이기심과 이타심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 속에 있는 우리가 사유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서로가 단절되어 있다면 이는 필연코 정치는 부재하고 통치와 억압만이 우리를 에워싸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무관심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무기력 속에 대한민국은 혼돈과 무기력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를 자발적 복종과 침묵을 통한 윤리적 가능성을 채근하는 세력이 구원자이자 ‘공복’(公僕)으로 치부하는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불어 정치를 지배와 동일시하고 시민은 단지 자의식이 없는 ‘지배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길 원하는 정치집단에 과감히 우리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있다. 정치가 공동체의 가치나 이익의 공유와 분배체제인데 기득세력은 자신들의 독점과 소유체로 여기고 있다.

 기득세력권들은 말한다. 지나친 민주주의와 참여의 과잉이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행태를 이기적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위장이자 거짓 기만이다. 한국사회에서 기득세력권과 엘리트, 그리고 리더들에게선 사적 이익이 가득하지 공적영역에 대한 희생과 봉사는 없다고 하면 지나칠까? 

 몇 주째 토요일만 되면 “광화문 광장”에 나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금요일 저녁 내일도 다음 주에도 또 나갈 듯하다. 정치를 부정한다면 정치를 타인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순간 우리는 자아를 상실하고 집단의 정체성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이런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시대정
신’(Zeitgeist, 時代精神)이 나를 광화문으로 견인할 듯하다. 시민의 간곡한 외침에도 공화국은 대의제라는 껍데기만 가진 채 참주국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게 그냥 볼 수만은 없는듯해서 이다. 차디찬 ‘2016년 12월’의 아스팔트에 엉덩이를 대고 처음 보는 낯선 이와 같이 앉아서 목 놓아 외치고 싶은 것이다. 내 삶의 방식에 방향에 너희들이 맘대로 하지 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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