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은 남자, 미대생은 여자’ 클리셰… 점차 깨져 간다

예디대 남학우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 ㆍ 유동화 기자

우리대학 예술디자인대학과 공과대학 건물을 한번 들어가 봤다면 ‘왜 이렇게 여자밖에 없는지 혹은 남자밖에 없는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예술엔 여성이 더 뛰어나며, 물리적인 지식을 요하고 무언가 궂어 보이는 공학엔 남성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건대신문>에서 학우들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해본 결과, 실제로 남자 미대생과 여자 공대생들 마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조건 학과마다 남녀의 성비가 비슷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남자와 여자의 관심사와 전공은 그렇게 달라야만 하는 것일까. 굳어져버린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진로는 서로 다르게 설정되고, 많은 학생들이 그에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공대엔 남성이, 예디대엔 여성이 많다

우리대학에서 남녀의 성비차가 가장 큰 단과대는 공과대학과 예술디자인대학이다. 2016학년도 2학기 기준 예디대는 여성의 비율이 76.8%에 달했으며, 공과대는 남성의 비율이 75.4%에 달했다. 그 뒤로 문과대가 여성의 비율이 67.1%로 두 번째로 높았으며, 정보통신대학이 남성의 비율이 74.2%로 두 번째로 높았다.

우리대학에서 남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학과는 △기계공학과(92.48%) △기계설계학과(92.46%) △기계공학부(92.3%) △전기공학과(87.8%) △인프라시스템공학과(85.8%) 순이었다.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학과는 △텍스타일디자인학과(89.5%) △현대미술학과(87.1%) △신산업융합학과(86.6%)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84.6%) △국어국문학과(83.8%) 순이었다.

 

예디대엔 왜 여성이 많을까

예체능계열 학우들과 교수에게 예디대의 성비차가 큰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박찬홍(예디대·산디4) 학우는 “예술ㆍ디자인이라는 분야는 감성이 중요한 학문이라 상대적으로 감수성이 더 풍부한 여성의 진학률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건호(예디대·의디1) 학우는 “예술 쪽은 남성보다는 여성에 특화된 분야라는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강성중(예디대ㆍ산디) 교수는 이에 대해 “학과의 남녀 성비는 결국 성적이 좌우한다”고 말했다. 1997년 이전까지 국내의 많은 미술대학은 입학 규정에 남녀 비율을 뒀다. 일례로 서울대학교의 경우 미술대학의 모든 학과는 남녀 동수로 뽑았다. 당시 입학 성적을 보면 여학생의 입학 성적이 남학생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즉, 동일한 성적이라도 여학생은 탈락하고 남학생은 합격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1998년 대통령직속으로 여성인권위원회가 생기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대학의 남녀 비율을 규정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이었다. 이후로 여자대학을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미술 대학에서 급격한 성비 불균형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미술대학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남학생을 압도하는 것은 비단 우리대학만의 뿐만 아니라, 서울대, 홍익대, 국민대 등에서 모두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달리 말하면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입학성적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남학생이 미술을 전공으로 택할 확률이 여학생보다는 매우 낮다”며 “아마도 부모님이 성적이 좋은 아들이 미술을 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알게 모르게 자식들의 진로에 대한 장기간의 압력과 의견 제시가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그는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섬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만, 학생을 지도해보면 남녀의 성비보다는 개인적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며 “섬세하거나 파격적인 성향은 철저히 개인의 문제”라고 말했다. 황진숙(예디대·패디) 교수도 “남학생 중에서도 충분히 섬세하고 감성이 발달한 학생이 많고 남성 패션디자이너들도 많다”며 “미감의 차이는 성별에 따른 차이보다 개인의 성격에 따른 차이가 더 큰 것 같다”말했다.

남자 미대생인 강한(예디대·산디4) 학우는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고,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디자인학과에 왔다”며 “남자가 무슨 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예술대의 성비가 고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호정(예디대·산디3) 학우는 “고전적인 ‘남자는 미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관념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원하는 진로에 대해 지원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대엔 왜 남성이 많을까

공학계열 학우들과 교수에게 공과대의 성비차가 큰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양지혜(정통대ㆍ전자2) 학우는 “수학을 좋아해서 이과에 진학했고, 간호학과는 적성에 맞지 않아 취업을 고려하여 전화기를 선택했다”며 “아무래도 오래전부터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남성 중심이었고, 그러한 인식이 뿌리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윤(정통대·전자4) 학우는 “여성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크기 때문”이라며 “사실 이공계의 남녀 성비차 비율은 쉽게 호전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건률(공대ㆍ전기4) 학우는 “애초에 고등학교만 봐도 이과로 진학하는 여학생이 문과에 비해 적다”며 “그조차도 대부분 화학 생물 쪽으로 가니 나머지 학과의 성비가 맞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대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은 학과는 △환경공학과(46.9%) △유기나노시스템공학과(45.2%) △생물공학과(45.2%)다. 박기수(공대ㆍ생물공학) 교수는 “기계나 전자에 비교해서 생물 분야는 여성 과학자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공학적 감각이 떨어진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환술(정통대·전자) 교수는 “대학실험은 3~4명 팀을 짜 함께 협력해 가며 밤을 지세워야 할 때도 있는데, 여학생들이 이런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니 저학년 때부터 실험에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한다”며 여성들이 공대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를 들었다. 오 교수는 “공부를 잘하는 여학생들은 대기업에 곧잘 취업하고 연구소에 잘 적응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학원에 진학하는 여학생 수는 적은 편”이라며 “딸의 대학원 진학을 꺼려하는 부모가 많고, 남성들은 결혼 배우자로 대학원 출신 여성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휘영(공대ㆍ유기나노) 교수는 “사회인식에 ‘공대는 남자가 중심’이라는 인식이 아직 존재한다”며 “여학생으로 공학도의 꿈을 키우는 학생이 있지만,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여성이 공장 및 연구소에 가는 것이 힘들다고 여겨서, 공대를 졸업하고 나서도 여학생에게 다른 쪽의 진로를 권유하려 한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에 반해 안형근(공대ㆍ전기) 교수는 “예전엔 재봉사나 요리사, 간호사 등이 여성들의 영역이었지만 현재는 남성들이 많이 진출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듯이 공학 분야에서도 여학우들의 비중이 작업환경 및 사회경제적 주도권의 변화에 따라 증가하고 있다”며 “우리 연구실의 대학원생의 경우 2015년부터 점차적으로 그 비율이 50:50 방향으로 가고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무너져 가는 ‘금남(禁男), 금녀(禁女)의 영역’

최근 대학에서는 특정 성별로 굳어진 전공의 틀이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통하는 기계공학전공이 처음으로 두 여대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화여대에서 올해 휴먼기계바이오공학부를 신설했으며 숙명여대도 지난해 처음 공대를 설립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기계시스템공학부, 전자공학전공 등의 학부·과를 신설했다.

대학에서 여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금남(禁男)의 영역’이 무너지는 사례는 음악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국내 4년제 대학교에서 10년 전 남성 비율이 24%였던 음악학과는 33%로 늘었고, 작곡과도 남성이 25%에서 35%로 늘었다. 사회복지학, 식품영양학 등 전통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은 전공들도 남학생이 꾸준히 많아져 10년 새 8~10% 늘었다.

또한 올해 간호사 국가고시에서도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2004년 이전까지는 채 1%도 되지 않았던 간호사 국시의 남성 합격자 비율이 올해 처음 10%대를 돌파한 것이다. 4년제 대학 간호학과 재학생 중 남성 비율 또한 2006년 4.3%에서 2016년 18.4%로 크게 늘었다. 간호직에 대한 남학생의 선호도가 높아지자 ‘나이팅게일’로 대표되는 간호사의 여성적 이미지가 바뀌고있다.

반대로 남성 비율이 높았지만 10년 새 여성이 더 많아진 전공도 있다. 치의학은 10년 전 35%이던 여성 비율이 지난해 75.6%로 늘었다. 광고홍보, 언론, 사진·만화 등의 전공도 여성이 매년 늘어 50%를 돌파했다.

안 교수는 “여성 비율이 문과 및 예체능 계열에서 높고 공학 계열에서는 낮다는 사실은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준비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하는 의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며 “남녀의 성차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고 예술과 문과계통, 그리고 공학분야와 미래 산업의 환경이 변화한다면 남녀의 사회진출과 기여에 관한 인식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에는 그에 상응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실례로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여성 공대생을 지원하기 위한 ‘여성 공학인재 양성 사업(WE-UP)’을 시작했다.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이 이 사업에 선정돼 10대 대학에 3년간 정부 예산 150억원을 지원받는다. 각 대학은 △여성공학도 맞춤형 교육과정 개발·운영 △여성공학도 진로 진출 지원 △여성 친화적 공학교육 문화 개선 등을 위해 노력 중이다.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한양대는 올해 2학기부터는 여성 친화적인 6개 강의를 정규 과목으로 개설할 예정이다. 여성 공학자를 초청해 멘토링 강의를 하거나 선배 여성 공학인이 참여하는 취업·창업 상담도 진행한다. 최근엔 건물 안에 여학생이 휴식을 취하거나 토론·과제를 할 수 있는 ‘여성 엔지니어 라운지’도 생겼다.

학교 밖으로 나온 학생들이 사회에서 성별 때문에 차별 당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직장 내 업무 환경의 개선도 필요하다. 이위형(공대·유기나노) 교수는 “중소 기업체에서는 아직 남자 공대생을 선호하는 편이다. 회사복지가 좋은 곳은 결혼·육아의 문제가 걸리지 않아 여학생들을 뽑으려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육아 후에도 계속 다닐 수 있는 직장이 늘어난다면, 어느 정도 여학생의 공대 기피현상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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