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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헌 교수의 세계유산이야기 - ⑥ 세계유산과 유산 해석을 둘러싼 갈등
최재헌 교수(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 승인 2019.06.07 14:00
취재헌 교수(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올해 열리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6월 말부터 열리게 된다. 현재 세계유산이 1092개이니만큼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100번째 세계유산이 탄생할 것이다. 그 사이 자국의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각국의 외교전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국은 유교 학당서원이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이번만큼은 느긋하게 위원회를 지켜볼 수 있을 듯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와 보존 관리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현재의 심사절차를 보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와 IUCN(세계자연보존연맹)에서 각각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심의하고, 그 결과인 권고안을 등재, 보류, 반려, 등재 불가로 나누어 21개 이사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함으로써 최종적인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등재과정에서 자문기구의 권고안을 따르기보다는 정치적 외교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등재를 결정하는 ‘등재의 정치화 현상’이 지속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전문가들의 견해보다는 비전문가인 외교관들에 의해 패거리 짖기와 편 가르기에 의해 등재가 결정되는 것이다. 세계유산위원회에 가보면 아랍과 중동국가군, 스페인어 사용 국가군, 아프리카 국가군 등의 서로 친밀한 국가들이 한패가 되어 서로 밀어주기를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최근 열린 세계유산위원회를 지켜보면 유네스코에서 탈퇴한 미국과 이스라엘은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주류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지 않다. 또한, 미국 탈퇴 이후에 유네스코에 지원금을 많이 부담하는 일본과 중국의 입김과 발언권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현재까지 자문기구가 등재로 권고한 유산이 등재 불가가 되는 예는 없지만, ‘등재 불가’로 권고한 유산이 ‘보류’나 ‘반려’로 상향조정 되거나 권고안이 뒤집히는 일이 다반사이다. ICOMOS 세계유산패널 심사에서 전문가들의 장고와 토론을 거쳐 내려진 권고안이 단 몇 분의 외교적 수사로 무시되고 뒤집히는 것을 보면 세계유산 제도에 대한 신뢰감마저 흔드는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 다른 문제는 세계유산의 해석에 있어서 일부 역사를 왜곡하거나 고의로 무시하는 일이다. 세계유산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며 현재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올바르게 전승하는 것이므로, 유산의 가치에 내재한 전체 역사를 올바르게 반영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일본은 자국의 메이지 산업유산을 등재하면서 한국인이 강제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와 국제사회의 동조 때문에, 2015년 독일 본에서 일본의 메이지 산업유산에서 일어난 조선인의 강제노동을 인정하고 유산 해석에 반영한 이행보고서 제출을 세계인 앞에 약속하였지만, 아직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의 메이지 산업유산/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왜 일본은 강제동원 유산이나 남경대학살, 731부대 등 제2차 대전에서 일본이 저질렀던 잔혹한 역사적 사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할까? 해외에서 만난 어떤 일본 학자가 일본이 원폭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말하는 것을 보았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것이다. 너무 황당해서 그에게 원폭 투하는 오키나와 공방전에서 양측의 피해가 수만 명에 이르자 인명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던 경험이 있다. 만일 일본이 미래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일본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면, 역사의 명암을 함께 돌아보고 미래 세대에서 제대로 가르칠 수 있어야지 비로소 역사의 진실을 알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유산의 해석을 둘러싼 국제 간의 갈등이 꼭 한·일간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민주의 유산에 대하여 과거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가와 식민지를 경영하였던 국가 사이에 극명하게 해석이 갈리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식민 지배자의 시각에서는 철도의 도입이 근대화의 도입이라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지만, 식민지배를 받은 자에게는 자원의 수탈이자 착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전쟁 유산 등도 유산 해석을 둘러싼 갈등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장이었던 벨기에 솜강 전투지구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세계유산위원회는 해석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쟁유산은 될 수 있는 대로 등재하지 않기로 결정 한 바있다. 이와 함께 유산 해석을 둘러싼 갈등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잠정목록 등재신청 이전에 이해당사자 간에 이견이 없도록 조정과 합의를 권고하고 있다.

이해당사자에 따라 유산 해석에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갈등유산(conflict heritage)에 대하여 세계유산 전문가 사이에 국제적인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호주 이코모스에서 만든 버라헌장(Burra Charter)이라고 할 수 있다. 버라헌장에서는 유산뿐 아니라 유산이 있는 장소(place)의 문화적 중요성(cultural significance)을 유지하고 유산에 관계된 모든 역사를 유산 가치에 포함하여 해석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세계유산은 단순한 유산이 아니라 각 국가의 문화 외교가 벌어지는 대상이면서 국제적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자국만의 이익보다는 이해관계를 떠나 타인을 배려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문화 역량과 신뢰성을 갖춘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기 마련이다.

독일 본에서 열린 세계 유산위원회/출처 유네스코

세계에서 다른 나라의 지원과 도움을 받던 나라가 오히려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공여국이 된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한국이 세계의 어려운 국가 에게 물질적인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문화 역량과 도덕성을 갖춘 존경받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 나아가 한국의 세계유산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세계인으로 우뚝 설 수 있어야 한다.

타국의 문화유산을 비하하는 발언이나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각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성숙하지 못한 어리석음의 결과이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올바른 역사 인식은 우리 젊은이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교양이면서도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아시아의 세계유산 해석을 둘러싼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는 바탕이 됨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최재헌 교수(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kk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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