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 소설가

이번 심사에서 흥미롭게 읽은 작품은 <발견의 확률>, <오이디푸스>, <구원> 이었다.

<발견의 확률>은 맨홀을 통해 의외의 시공간으로 이동한다는 판타지 설정의 소설이다. 맨홀이라는 무중력의 공간, 가난하고 자유로운 젊은 여행자,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만나는 낯설고 따뜻한 관계가 눈길을 끌었다. 상실을 다루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이야기가 좋았다. 다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 - 그것이 주인공의 과거와 미래를 어떤 식으로 연결 짓는지를 보다 선명히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돌연 열렸다 닫혀버린 맨홀처럼, 작품의 마지막 결말은 어쩐지 의문이 남는다.

<오이디푸스>는 제목처럼 아버지 살해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와 끝내 합일할 수 없으며, 아버지를 넘어뜨린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 말고 다른 식으로는 삶을 계승할 수 없다는 체념적 비애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굉장히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향집이라는 생과 사의 공간을 다루는 솜씨도 어지간하다. 다만 우리가 대학생 문인에게 기대하는 새로움과 개성이라는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소설이든 작가의 몸을 거쳐 육화되지 않고는 개성을 습득할 수 없다. 이 소설이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한 발 나아가기 위해 숙고해야 할 지점이다.

<구원>은 반지하 방을 함께 쓰는 두 룸메이트의 이야기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가까스로 입사한 회사가 부도나면서 다시금 취업의 장으로 내몰렸다. 통과의례일 뿐이라 생각했던 반지하방의 삶은 재취업의 실패로 영영 출구가 닫혀버린다. 실직이라는 사회적 죽음을 경험한 ‘나’의 초조함과 절망은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자살한 이웃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결국 나도 그와 같은 존재라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아티스트의 하나뿐인 악기마저 빼앗기는 재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이는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누군가의 온기를 원한다. 하지만 끝내 그녀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음악처럼 소모되어 버린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몰린 청춘을 상징하는 반지하의 음습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이 둘은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머리를 마주 댄다. 이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룸메이트가 되었으나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엿보고, 상대방의 체온을 위로를 얻으면서 일시적이나마 삶을 공유하게 된다. 그 생명력이 작품의 시종 어두운 분위기를 밝힌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청춘의 구원이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들이 가난하고 헐벗은 삶 가운데 서로 연대하는 방식, 그 관계의 진전이 다름 아닌 구원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죽어가는 이의 신음을 방기하지 않고, 흐느끼는 재이의 등을 두드리며 다 괜찮다고 위로한다. 청춘이기에 알지 못하는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를 수 있고, 자신을 위협하는 암흑과도 같은 현실에 주먹을 휘두르고 도망칠 수 있다. 그 때 이들의 무덤과 같은 현실은 다르게 모색될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은 앞의 두 소설보다 단순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소박함과 진실성이 마음을 울린다. 이것은 이 작가만의 고유한 이야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안정적인 구성과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밀어붙이는 힘도 좋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전한다.

예심과 본심을 홀로 다 치른다는 부담감 속에 응모작 한 편 한 편을 고심하며 읽었다. 이번 심사를 통해 만난 청춘의 풍경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암담하고 적막했다. 시대의 아픔이요 초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에 있어 객관적 판단이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좋은 작품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은 공감의 힘이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나 아닌 타자로 나아가는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그 때에 삶은 불평등과 불의로부터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다. 우리가 글쓰기를 소망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15년 전 나는 건대 신문사에 찾아가 소설을 응모했다. 그 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외로웠으나 세상을 다 가진 자처럼 충만했다. 저만치서 반짝이는 꿈 때문이었다. 그 꿈 때문에 많이 아팠지만, 그 꿈 때문에 많이 행복했다. 다시는 그와 같이 꿈과 대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청춘의 시절이란 그처럼 희소하고 귀하다. 당선자와 낙선자, 그리고 글쓰기를 꿈꾸는 수많은 학우들도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그 청춘의 시절을 만끽하기 바란다. 삶이 찰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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