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지도 어느덧 반년이 되어 간다. 현재 대한민국은 적절한 대응을 통해 감염자 수를 일정한 수준으로 잘 관리하고 있지만, 대다수 국가들은 여전히 방역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세계적으로 볼 때 감염자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을 대조해 볼 때, ‘모빌리티(mobility)’만큼 두 삶의 차이를 명료하게 드러내주는 용어는 없는 듯하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우리는 ‘자유로운 이동’을 아무런 제약 없이 실천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자 당연한 인간의 권리로 여겼다. 친구 만나기, 학교 가기, 여행하기, 유학 떠나기 같은 행위는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하면 되는 일이지 정부의 통제나 허가를 반드시 얻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인천공항에서는 세계 각지를 운항하는 항공기들이 쉴 새 없이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고 있었고, 이탈리아의 베니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일본의 쿄토 같은 유명 관광도시들은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과 함께 그러한 삶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등교 중지, 외출 자제, 여행 제한, 비행 금지 등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묘사하는 필수불가결한 용어들이 되었다. 심지어 모든 이동은 통제와 허가, 그리고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은 지난 2018년 설립 이래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을 수행하면서 인간·사물·정보의 이동과 그를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연구는 포스트-팬데믹 시대 들어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더욱 강하게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더 빨리 더 많이 더 자주 더 멀리 이동하는 것을 추구하던 시절이 있었다면(대한민국의 경우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1980년대 후반 이후 약 30년 동안이 그에 해당하는 듯하다), 이제는 이동이 인간의 생명, 정치의 형태, 문화의 편성 등과 내적으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예컨대, 지금 우리가 바라는 ‘자유로운 이동’은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국가 행정, 의료 체계, 법률 제도, 과학기술, 생명공학, 교통 인프라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있는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될 때 비로소 (과거와 완전히 동일한 형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현 가능한 것임을 자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동에 대한 이와 같은 복합적 접근법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된 듯하다.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들이 번역·출간한 다섯 권의 해외 도서 /사진제공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이 지난 1년 동안 펴낸 9권의 책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동’이 문제가 된 시대에 대해 생각해 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우선 우리 연구원은 《모빌리티 정의》(미미 셸러), 《혼종성 비판》(하임 하잔), 《삶은 장소에서 일어난다》(데이비드 시먼), 《여행 텍스트와 이동하는 문화》(애니타 퍼킨스), 《도시 모빌리티 네트워크》(말렌 프로이덴달 페데르센, 스벤 케셀링 편) 등 다섯 권의 해외 도서를 번역·출간했다.

《모빌리티 정의》는 2003년 존 어리(John Urry)와 함께 모빌리티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모빌리티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미미 셸러(Mimi Sheller)의 최근 저서다. 이 저서에서 미미 셸러는 오늘날 우리 세계가 도시화, 이주민 수용, 기후변화라는 삼중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지적한 후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모빌리티 정의(mobility justice)’를 주장한다. 이때 모빌리티 정의란 ‘모빌리티 공유재(commoning mobility)’(협력적 사회 영역과 공유 이동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를 보호하고 회복하려는 상호독립적인 사회운동을 말한다. 한편, 《혼종성 비판》(하임 하잔)은 지구화 시대 이동하지 못하는 존재들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인간, 사물, 정보 등의 세계적 이동과 혼종화(hybridization)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바람직한 시대의 변화로 간주되고 있지만, 그 이동과 혼종화에서 배제됨으로써 시대적 흐름과 변화에 참여하지 못하는 존재들(예를 들면, 죽음을 앞둔 초고령 노인,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자폐증 환자 등)이 있음에 주목해야 하고, 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권의 책은 우리 시대 이동의 문제를 생명과 의료뿐만 아닌 정의와 인권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삶은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인간이란 언제나 ‘장소 내의 인간 존재’라는 점에 주목하여, ‘사물, 인간, 체험, 의미, 사건을 모으고, 활성화하고, 유지하고, 식별하고, 상호연결하는 공간적 장’으로서의 ‘장소’에서 삶이 현상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본 책이다. 그리고 《여행 텍스트와 이동하는 문화》는 인간의 이동이 문학 및 영화 작품들에 재현되는 방식을 역사적 관점에서 통시적으로 서술하고 있고, 《도시 모빌리티 네트워크》는 모빌리티가 공간, 상호작용, 이동, 공동체, 정체성, 테크놀로지 등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중심으로 고도로 이동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세계 속 도시의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국내 학자들의 연구 성과들을 모아 발간한 도서 / 사진제공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은 또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 성과들을 모아서 세 권의 책을 발간했다. 《모빌리티 시대 기술과 인간의 공진화》(김태희 외)는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와 인간이 공-진화하는 형태, 그에 따라 역사적으로 등장한 공간(‘모빌리티 스케이프’)과 인간(‘호모 모빌리쿠스’), 그리고 이동하는 사회와 거기에서 작동하는 권력(통치)의 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고, 《모빌리티 인프라스트럭처와 생활세계》(김수철 외)는 그 논의의 선상에서 도시 생태계를 테크놀로지 및 인프라스트럭처 문제와 관련해서 다루고 있다. 그와 달리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와 텍스트 미학》(이진형 외)은 모빌리티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문학, 미술, 영화, 연극 텍스트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탐구하고 있다. 이 외에 우리 연구원은 모빌리티라는 주제를 인간의 생명 및 환경과 관련해서 다루고 있는 《모빌리티 생태인문학》(이명희, 정영란)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들을 통해서 포스트-팬데믹 시대의 삶에 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를 가게 되기를 바란다.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 전체 사진 / 사진제공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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