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상허교양대학 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말한 게 엊그제인데 이제는 모두 ‘뉴노멀’ 시대를 말하고 있다. 대학존립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으나, 팬데믹이 펼쳐 놓은 가혹한 생존경쟁은 오직 소수의 적자에게만 진화와 도약의 기회를 허용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디지털 세상의 재구축이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이 강제한 뉴노멀은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감각과 소통방식을 요구한다. 이를 대학에 적용해보면 결국 교육콘텐츠의 생산과 유통방식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제는 누구나 필요한 고급정보를 유튜브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교수들의 경쟁상대는 ‘비슷한 대학순위’의 교수들이 아니라 이미 전 세계의 분야별 초고수 전문가들이다.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국내 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 수도 없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오히려 넘쳐나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효율적인 ‘지식의 큐레이션’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대학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지식의 생산과 전수에서 ‘전수’에 해당하는 교육의 역할은 확립된 지식을 정리된 체계로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므로, 원래 교육이란 넓은 의미에서 지식의 큐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11세기 중세대학이 처음 생긴 이래 20세기까지는 이 과정이 교수 개개인의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면 21세기 팬데믹 시대에는 교수 개개인의 ‘로컬’을 넘어 디지털의 특장점이 극대화된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여기서의 ‘로컬’에는 특정전공분야까지 포함된다. 지금은 기존의 전공 카테고리가 무력화되고 분야별 경계가 허물어지며 다양한 융합이 다발적으로 촉발되는 시대이다.

 

 또한 지식의 큐레이션에서는 학습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중요한 만큼 학생들의 직접적인 탐구와 행위를 통한 학습(LED, Learning by Exploring and Doing)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일부 시행 중인 플립트 러닝은 LED와 결합돼야만 원래의 취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결국 필자는 앞으로 누가 더 나은 디지털 콘텐츠를 더 많이 확보하고 더 높은 완성도의 큐레이션을 제공할 수 있는가로 대학의 생사여부가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전체가 하나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으로서, 궁극적으로 우리 대학 또는 더 나아가 한국의 학문지형도를 디지털로 재구축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책임질 일종의 ‘디지털 라이브러리’ 구축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가장 강력한 무기라 되리라 확신한다.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잘 극복한다면 우리가 새 시대의 대학상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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