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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그 푸르른 하늘 아래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건대신문사 | 승인 2003.05.13 00:00

토요일 오후 동숭동 대학로에 가 본 일이 있는가?

더 이상 춥지도 않고 선선한 바람을 동반한 따뜻한 대학로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소리, 좌판의 고함소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정성스럽게 치장한 젊은이들이 눈과 귀를 가득 메운다. 그 속에 가슴을 메우는 것이 있다.

마로니에 광장에서 열리는 ‘2003 민중가요 페스티벌 첫 번째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공연은 전쟁을 반대하고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항쟁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새겨지는지 그 시대정신을 말하고, 민중가요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평화’라는 주제로 기획되었다.

늦은 3시부터 6시까지 진행된 공연은 끊임없이 전쟁의 추악함과 폭력성을 얘기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함만큼이나 잔잔하지만 뜨겁다. “생각의 차이가 있지만 잘 들어보세요. 이 지구에 있는 꽃, 달, 고릴라 등 많은 것들 중에서 오직 인간들만이 서로 싸우고 죽입니다. 함께 공존하는 지구. 평화는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여느 사회자와 같이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차분한 사회자의 말이 잠시 시끌벅적한 주위의 시선을 모은다.

곧이어 발광다이오드, 윤미진, 손현숙, 박창근, 마구리밴드, 밴드바람, 솔바람, 참좋다, 이반밴드, 풀린개 등 10개 팀의 민중가수가 차례로 나와 ‘평화의 시작은 전쟁반대’임을 음악으로서 말한다. 반전평화, 인간답게 살아보기 위한 노동자의 몸부림과 미국의 만행이 고스란히 담긴 민중가요의 외침은 단순한 말이 아닌 멜로디로 시민들에게 불편하지만 조금씩 가슴에 전달된다.

공연 중 만난 우석대 전 총학생회장 고명희(26)씨는 머리에 살짝 걸친 썬글라스가 낯설게 노래 한 곡 한 곡을 정성스럽게 듣고 있다. “평화는 뿌리깊게 포용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전은 소수만의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런 공연이 계속적으로 열려 자리를 잡아야 한다”라며 “예쁘게 화장하고 가꾼 노래는 아니지만 민중의 마음을 담은 노래인 만큼 민중들과 가까워지고 그들이 그 노래를 이해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여전히 고민된다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얘기를 마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던 도중 마침 녹화방송을 위해 카메라 조정하는 사람이 눈에 띄여 이 공연의 특징을 물어보니 대뜸 “함께! 참여!”라며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와 섞여 분간이 가지 않는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하지만 곧 “전쟁은 어쩔 수 없고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앉아있다는 한 학생의 밍근한 말의 냉소적 도전을 받는다.

공연무대 앞에서는 온몸으로 이라크 전쟁을 막겠다며 이라크 현지로 출국한 인간방패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이 보내온 이라크 민중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임민의 한 벼룩시장과 시장가는 사람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등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는 평범한 이라크 민중의 사진은, 5월의 주말이 즐겁기만 한 사람들에게 괜히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나의 일이 아니고 우리나라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무관심한지도 모른다.

예전에 화염병과 깃발, 구호가 있었던 시위라면 이제는 문화예술이 청년문화 중심에 서있다. 거리의 시끌벅적한 붉은 악마와 광화문의 촛불의식에 이어 대형 반전콘서트까지. 문화라는 코드가 무의식 중에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을 일깨우고 있다. 긴장감보다는 묘한 흥분을 부추기며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긴 정치연설 하나보다 민중의 마음을 담은 노래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동국대 노래패 ‘차돌’의 멤버인 김지혜(정보관리 3)양의 말대로, 지극히 비정치적이고 개인적인 문화가 이제 그 자신의 감성으로 거대한 정치의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경훈(경희대·국제관계 4)군의 “본질에 접근하기도 전에 이벤트성으로 그치는 것”이라는 비판과 “‘피’나 ‘깃발’로 대변되는 운동이 이제는 대중적으로 일상에서 실천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본과 싸워야 하는 부담이 있다”라는 노동자방송국에서 일하는 ‘푸른살이’의 지적은 따끔하다. 앞으로 ‘운동권의 구호’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모두가 함께하는 진정한 ‘반전’, ‘통일’, ‘노동자’ 운동을 위해서는 행사를 기획하는 충분한 시간과 인력과 자본을 확보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있다.

1980년 슬픔에 가득찬 5월의 광주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민주와 평화를 부르짖다 죽어갔고, 2003년 전쟁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무심히 평화를 가장하고 있는 5월의 한반도는 이방의 나라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서운 굉음과 함께 죽어간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만 있다. 하지만 음악소리 하나에 모든 걸 제쳐두고 무대 앞으로 뛰어가는 저 젊은이들의 가슴에 조금씩 새겨질 문화의 힘을 믿는다. “인간답고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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