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희(문과대‧미컴20)
반주희(문과대‧미컴20)

 

영화관이 없고, 엽기 떡볶이가 없고,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게 당연했기에 슬픔도 없었다.

다만 언제나 서울을 향한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가 있었고 그곳을 동경함과 동시에 그 먼 곳이 손에 언젠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와 서울이 독식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이득을 나눠 갖고 싶었다. 서울은 지금 필자에게 있는 현재의 어떠한 잠재성을 활성화 시킬 대단한 곳이었고 음성은 떠나야 할 지방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무조건 서울로 가야 했고, 취업을 무조건 서울에서 해야 하고, 미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에 달려있어야 했다.

끝내 도망치듯 마주한 그 세상은 이유 없이 무서웠다. 지나치게 서울에 오염된 것만 같았다. 고향인 음성은, 어떤 냄새를 맡으면 툭 튀어나오고, 어떤 과일을 먹으면 툭 튀어나오고, 어떤 곳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 툭 튀어나왔다. 음성에서 태어나 살던 스무 해를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시간이 따라잡을수록 오히려 더 그랬다. 서울이 곧 정답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지점이었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과 술을 먹고 자연스럽게 지하철(여기에서 지하철이란 당연히 수도권 노선만을 포함한다) 게임을 하고 나면 어느샌가 기본 소양이 부족한 인간이 돼 버린다. 서울의 지리와 지하철을 모르는 건 이 세계에서 그렇게 치부됐다. 물론 그 반대일 경우는 모르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너는 어디 살아?” “충청북도 음성군이라는곳에 살아.” “.. .. 그렇구나.” 그 순간 느껴지는 미지근한 온도의 분위기와 그럼 지하철도 없어?” “, 없어.” “그럼 뭐 타고 다녀?” 같은 순수한 의문을 계속해서 마주할 때면 마음이 이상하다. “들어는 봤어.” 하는 나름의 아는 체와 힘들겠다.”라는 진심인지 모를 이해는 필자를 서울에 기생하는 애매한 존재로 만들었다. 음성에서 태어난 게 수치인 것 같았다.

서울은 세상의 중심이고 보편이다.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다. 이제 그 보편을 깨야만 한다. 영화관이 없고, 엽기 떡볶이가 없고, 지하철이 없는 음성은 그들에게 한 번쯤 놀러 가보고 싶은 정감 넘치는 곳(실제로 전혀 그렇지 않다), 그뿐이다. 서울=도시, 지방=시골. 단어를 이런 방식으로 한정하게 되면 우리의 세계도 그만큼 축소되거나 지나치게 과장돼 버린다.

한국 인구 약 5천만 명 중에 서울 인구가 1000만에 달하며, 경기도까지 합하면 한국인구의 약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비정상적이다. 사회자본, 문화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있는 한, 둘 간의 간극은 계속해서 커진다. 어떻게 이해를 할까.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고, 어떻게 이 간극을 줄여나가고 이 구조 자체를 바꿔나갈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답해야 한다. 이것은 유머도 아니고 지방인의 자격지심도 아니며 우리가 인식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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