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은 현재 건국대학교병원의 전신인 ‘사회영 중앙실비진료원’이 세워진 1931년 5월 12일을 학원창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국영國營’도, ‘공영公營’도, ‘민영民營’도, ‘사영私營’도 아닌 ‘사회영社會營’을 사용한 것부터 사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함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1946년, 광복이 이뤄지고 한해가 지났지만 사회는 혼란 속에 있었다. 유석창 박사는 우리 민족을 되찾고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의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교육기관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아래는 1958년 5월 15일 유석창 박사가 본지의 전신 <정대>에 투고한 글의 일부다.

“우리들 몇몇 동지들은 일제의 독소를 소탕하고 민족의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기본적인 토대는 오로지 교육, 특히 중견지도층을 양성할 대학교육임을 통감하고, 본교 설립과 동시에 일로매진(一路邁進) 그 육성 강화에 헌신적 노력을 경주함으로서 오늘날과 같은 실로 괄목할 일대 비약기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설립한 그 병원이, 단 30명의 학생으로 출발한 그 학교가 지금은 한국의 주요 대학이 됐으며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여러 수익사업체의 발전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국가사업에 연이어 지정되며 추진 동력을 얻었다.

우리 대학은 올해를 창학 100년을 준비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에 맞춰 법인의 새로운 경영 방침이 등장했고 유자은 이사장의 기념사를 통해 신사업 발굴에 대한 의지도 볼 수 있었다.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들을 추구하는 움직임에 환영을 표한다.

하지만 아무리 외관이 화려해지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처음의 마음이다. 민족을 위해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설립한 상허 선생의 의지다. 유석창 박사의 호(號)이기도 한 ‘상허’는 ‘항상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민족을 위해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다. 굳은 신념이 있었기에 우리 대학은 탄생할 수 있었고 그 뿌리가 내려있기에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 있었다.

미래를 계획할 때 과거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본 과거는 우리가 추구해나갈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90년간 우리 대학이 ‘초심’을 지켰는지를 묻는다면 그 누구도 흔쾌히 그렇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소수의 집단을 위해 학교가 운영되지는 않았는지, 이해관계의 충돌로 비효율적 행정을 초래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괄목할만한 성장 속에서도 여러 이권 다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00주년을 열 해 앞둔 지금, 다시 처음을 돌아볼 때다. 성(誠)·신(信)·의(義)라는 덕목을 기반으로 인재 양성을 꾀한 교육이념과 민중을 위해 치료에 집중한 그 방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건국 구성원모두를 위한,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한 학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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