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몸문화연구소 교수
임지연 몸문화연구소 교수

얼마 전 졸업한 제자가 찾아왔다. 함께 차를 마시다가 제자는 연애 상대자와 헤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상대는 유능할 뿐 아니라,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자랑했던 것을 생각하니, 이별의 이유가 궁금했다. ()는 자신이 이전과 달리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뭔가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했다. 상대는 너무나 완벽해서 자신은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말다툼을 하면 네 잘못이야라는 답변만 돌아오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제자가 돌아간 후,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로빈스턴 )라는 책을 꺼내 다시 읽어 보았다. 그리고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제자는 쾌활할 뿐 아니라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사회생활을 곧잘 하는 촉망받는 젊은이다. 그런데 왜 연애를 하면서 잔뜩 풀이 죽은 것일까? 가스라이팅은 상대를 정서적으로 조종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가해자 가스라이터(gaslighter)와 상대를 이상화하면서 자신의 현실감을 좌우하도록 허용하는 피해자 가스라이티(gaslightee) 사이에 일어난다. 우리 사회는 교묘하게 혹은 폭력적으로 상대를 조종하려는 가스라이터의 행위를 비판하고 멈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옳음의 기준을 특정한 사람이 전유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관계를 주도하는 남성은 가스라이터가 되기 쉽다. 그리고 강하고 완전한 상대를 이상화하는 여성은 가스라이티가 되기 쉽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수용하는 사랑하는 남성-사랑받는 여성이라는 연애 패러다임에는 함정이 있다. 물론 가스라이터가 모두 남성은 아니다. 가스라이터는 여성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가스라이팅은 관계의 권력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때 주의할 것은 가스라이팅은 가해자의 일방적인 정서적 학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스라이티가 가스라이터를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상대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를 지속하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은 성립된다. 이 둘은 함께 가스라이트 탱고를 춘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있다. 가스라이티는 탱고 스텝을 멈추면 된다. 연인들의 춤은 함께 기뻐해야 하며, 스텝이 엉킬 때 서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스라이트 탱고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기 때문에 스텝을 함께 조절하기 어렵다. 이때 추는 탱고는 사랑의 춤이 아니다. 나는 제자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사랑의 기준은 상대방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그리고 너는 상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이미 빛나는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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