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 부편집국장
박진수 부편집국장

최근 일상생활 속에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인간을 편리하게 해주고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각종 기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는 개개인의 일상생활을 넘어 전문직 세계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의사 왓슨을 비롯해 기술은 이미 상당 부분 전문직을 보완 또는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변화 양상은 전문직 시장 전반을 뒤흔들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법조계 역시 같다. 법률을 AI 등의 과학기술과 연결하는 산업기술인 리걸 테크는 최근 들어 주목받는 기술이다. ‘리걸 테크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해외에서는 변호사를 소개하고 연결하는 일부터 소송에 필요한 문서를 대신 작성하거나 승소 가능성을 예측하고 소송 전략을 수립하는 일까지 법조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에서 리걸 테크의 보편적인 사업 확대는 요원하다. 이 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에는 변호사법을 비롯한 관련 법률 및 규정상 여러 규제 장벽이 높은 편이고, 이외에도 개인정보 문제 등 해당 기술 도입에 앞서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에 대해 각계각층의 우려나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는 광고 관련 규정을 개정한 뒤, 계도 기간이 끝나자 바로 모 변호사 소개 플랫폼에 가입한 변호사들을 징계하겠다고 나서면서 법조계 전반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법규, 제도 또는 관련 단체 등에서 공익적 명분을 이유로 구체적 대안 마련 없이 혁신적 기술의 등장을 제한하려는 것은 기술의 등장과 발전을 저해할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법조계는 당사자 직접 소송이 늘어가고 변호사 시장은 포화 되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고객들에게 합리적으로 다가가려는 변호사들과 더 쉽고 편리하게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서비스 수요자들의 수요 공급 곡선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물론, ‘리걸 테크에 관한 신중론 혹은 비판론이 무조건 혁신 저해로 치부될 것만은 아니다. 법조계는 높은 공공성을 지니는 분야인데, 기술 도입으로 법조계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거대 자본이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겨난다면 법조계 시장은 순식간에 자본과 시장 논리에 휩쓸려 오염될 수 있는 풍전등화로 변해 버릴지도 모른다. 또한, 법조 분야는 개인의 사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기술의 도입 과정에서 개인정보 관련 문제가 야기될 우려도 있다.

바람은 때로는 순풍이 되어 돛단배를 나아가게 하지만, 태풍이 되어 돛을 찢고 돛단배를 부수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 역시 그 기술을 쓰는 산업 분야를 나아가게 하나, 또 때로는 그 분야를 좌초시키기도 하는 하나의 바람이다. 변화무쌍한 모습을 지닌 이 바람 앞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지금 바람이 태풍인지 순풍인지를 논하며 싸우기보다는 언제 출항을 하고 피항을 해야 하는지 읽어낼 수 있는 혜안을 기르는 일이 아닐까.

우리는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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