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 입시 요강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학과별 정원을 빼곡히 나열한 정원표가 아닐까 싶다. 대학 입시를 끝내고 나서, 우리나라 대학들이 시행하는 엄격한 정원제도가 우리나라 특유의 '주어진 파이 싸움을 통한 제로섬 게임'을 공고히 하지는 않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수시를 하다 보면 정원이라는 것이 있다. OO명 내외 선발도 아니고 정확한 숫자로 딱 정해진다. 경쟁률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한국 대학의 입학 정원은 사실상 정부로부터 탑 다운(Top-down) 방식으로 정해진다. 공립대야 정부에서 정한다 하더라도, 많은 사학들도 교육부와 각종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실정.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물주가 '국가'이니 당연히 자율성도 부족하다. 사학들은 사실상 공영형 사립대가 된다. 등록금과 기부금으로만 운영하며 재정적 독립성을 확보하기에는 대부분의 대학은 그 정도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등록금은 정부의 규제 대상으로 사실상 수년째 동결이다. 국가는 사학에 돈을 주고, 학생 선발 방식과 정원까지 모두 엄격히 통제한다. 각 사학별로 추구하는 인재상은 있고 선발기준도 있다 하나 그 차이는 매우 미미하다는 것이 모두가 아는 비밀일 것이다. 대학의 특색은 줄어들고 서열은 첨예하고 공고해진다. 이러한 통제 속에 정원제 입시라는 제로섬 게임에 학생들을 노출시킨다.

정원은 지원자에게 '주어진 파이'로 인식된다. 대학이 요구하는 절대적 기준과 인재상을 충족하였기에 스스로 정원을 '만들어' 합격했다는 인식은 가질 수 없다. 누군가보다 '더 나았기에' 합격하였다는 인상을 심는다. 다양한 자료가 아닌 생활기록부를 비롯한 학교 내에서만 생산되는 단편적 자료를 참고하는 것, 정성평가이나 사실상의 정량평가를 추구하는 수시제도 또한 그러한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한다. 나는 미국 대입을 한 적이 있다. Rolling basis(선착순 검토, 선착순 합격통보)로 입학 사정을 진행했다. 대학에서는 각 대학의 특색과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게 된다. 줄 세워놓고 한 번에 면접을 보거나 생활기록부를 검토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자료는 무엇이든 제출하여 어필 할 수도 있다. 졸업정원제로 인해 대략적 정원은 있으나 입학정원 때문에 내가 결정적으로 합격하고 불합격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합격자'라는 자리는 내가 만드는 것이지, 주어진 '합격자'자리를 내가 남보다 잘해서 쟁취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편적인 생활기록부만이 아닌 가능한 모든 자료를 제출 할 수 있기에, 불합격해도 '나는 내가 소명할 것을 다 소명했으니 불만 없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평판에 따른 서열이 선명히 존재하지만 내가 그 명문대학의 기준에 못 미쳐서이지, 타 지원자보다 못해서라는 생각은 생각보다 크게 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우리 사회는 '주어진 파이'를 어떻게 공정하게 분배하느냐에 극한의 대립을 거친다. 수시냐 정시냐. 카풀이냐 택시냐. 비정규직이냐 정규직이냐. 새로운 파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극히 적다. 만들고자 하면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공정히 나눠가질 생각을 해야한다는 시선에서 비롯한 핀잔이 대신한다. 청년들의 무력감은 더해지고 기업가정신은 저해된다. 저성장과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서 주어진 파이를 효율적으로 나누어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파이를 어떻게 만들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매우 중요하지는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12년간의 엄격한 정원제 입시를 통해, 주어진 파이를 남과의 극한의 대립으로 쟁취하는 법, 즉 모두가 모두와 협력하기 보다는 서로를 비교하고 지치게 만드는 제로섬 게임만 배운다. 그래서 우리의 파이 만들기가 어려운 것은 아닌지 고민에 잠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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