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다. 날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오늘은 공기가 맑아 떠나고 싶고, 내일은 마냥 파란 하늘이 너무 좋아 떠나고 싶다. 이러다 수업은 언제 할까. 온라인 수업은 언제나 들을 수 있지만, 실시간 수업이면 이래저래 발목을 잡는다.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실습도 주중에 끼어있고, 방학은 왜 덥고 추운 여름 겨울에만 있는 건지 모르겠다. 찬란한 봄, 푸른 가을에도 방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쯤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실시간 수업은 마냥 귀찮고 버겁기만 하다. 학생도 그럴 것이고, 강의하는 교수도 그럴 수 있다. 사람이면 모두 다, 그냥 작파하고, 하루, 이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먹고 싶은 시간에 주섬주섬, 뭔가를 먹고, 책도 읽고, 산책도 하는 꿈을 꾼다. 이런 유토피아적 삶은 도대체 우리 삶에 언제 주어지는 것일까? 아니다. 내가 이런 호사스러운 꿈을 꾼다면 원하는 직장을 영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은 어느새 쪼그라들고 그 자리에 불안과 갑갑한 현실이 마음 한켠에 들어선다. 코로나라 어차피 갈 수 있는 곳도 없으니, 차라리 이불 속에서 보고 싶은 책이나 유튜브도 좀 보고, 수험서도 들여다보고. 과제 좀 쓰고. 그러다 보면 시간 다 가게 마련이다. 돌아다니면 코로나라 위험하고 남들한테도 민폐고, ‘이불 밖은 위험해’.

그래, 다음에 세월 좋아지면, 코로나 끝나면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자. 여기까지. 이런 생각들 한 번쯤은 대학생이라면 해봤을 것이다. 적어도 필자 또한 이런 생각을 소싯적에 해본 적이 있는 듯하다. 과연 코로나가 끝나면 생각했던 일들을 현실 속에 풀어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고등학교 학창시절까지 억눌렀던, 군대 가서 눌러놓았던 욕망을 자유의 시간이 왔을 때 다 이루며 살았을까?

Right Time, Right Place. 라는 말이 있다. 마음먹었을 때가 가장 적기이며, 그 적기에 가장 잘 맞는 최적의 공간은 찾으면 있다. 인간은 실현 가능한 것을 꿈꾸는 능력이 있다. 다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발을 땅에 딛고 무한 반복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뻥카가 된다는 건 대학생이 됐으니 다 아는 진리이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한 끗 차이는 마음먹었을 때 바로 결심을 실천하느냐, 내일부터 하느냐의 차이이다. 성공하는 자들은 절대 미루는 법이 없다. 그런데 가짜 성공계획을 가진 자들에게 나타나는 악성코드가 있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면 언젠가 보상받을 것이니 그때까지 쉬지 말아야 한다는 가짜 열심이 그것이다. 악성코드는 불안감으로 드러난다. 쉬면 불안하다. 쉬지 않고 부산해야 불안감을 줄일 수 있기에 함량 부족, 질 떨어지는 열심이 지금 대학생들의 삶의 연료가 됐다.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은 번 아웃 되기 쉽다. 목표의식이 강한 사람도 전력질주가 생활이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잘하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살펴볼 시간 없이 목표를 향한 도장 깨기에 바쁘다. 그러면, 진짜 나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

큰 그림을 보려면 이를 보기 위한 거리가 확보돼야 전체의 그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래야 수정이 가능하다. 그림 속에 서 있으면, 내가 그림을 잘 그리고 있는 건지, 어디가 틀린 건지 알 수가 없다. 지도 밖으로 행군해 봐야, 비로소 지도의 위력과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도가 그 영토는 아니다.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는 이를 두고, “그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가는 것은 다른 일이라 했다.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고 꿈을 계획하지만 그 길을 가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 과정에는 수정이 필요하고, 조준거리가 필요하다. 거리 유지하기, 즉 미적거리가 필요하다. 미적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간간히 쉬는것만큼 최적의 조준은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미적 거리가 필요하듯, 현실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에도 미적 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실제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불 속에서는 현실과 미래의 미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쉰다는 건, 무기력하게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는 것이 아니다. 쉬는 건 열정적으로 내가 쉬고 싶은 곳에 가서 텅 빈 충만을 만드는 일이다.

코로나라도 좋다. 적극적인 개인위생을 준수하며,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Right TimeRight Place로 떠나보자. 당신은 속았다. 온전히 나 자신을 데리고 떠나는 가을 여행, 이불 밖은 생각보다, 아니 전혀 위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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