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진 국어국문학과 교수
황혜진 국어국문학과 교수

90년대 말 해외에 거주할 때, 외국인에게 김을 주어도 이 시커먼 것을 어떻게 먹냐 핀잔을 듣고, 공동부엌에 김치·마늘 냄새가 난다고 항의를 받았다. 냄새나는 오징어를 먹던 나를 향한 혐오의 시선이 아직 잊히지 않았는데, <오징어 게임>과 오징어 말리는 어촌 배경의 <갯마을 차차차>가 시장에서 떡상하고 있다니 어리둥절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전략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을 배경으로 색동옷을 입은 춤꾼들과 판소리의 가락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미감을 창출하는 서울에 대한 홍보 영상은 새롭고 재미있었다. 특히 이 영상은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판소리 전공자인 필자를 흥분시켰다.

물론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의 편곡은 훌륭했고, 독특한 리듬에 비틀거리는 듯한 춤사위도 흥을 돋운다. 그렇지만 범 내려오는 <수궁가>의 대목도 음미해 볼 만하다. 심심풀이처럼 사설 풀이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이날치 밴드도 공유를 해주었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승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동개(등에 지는 화살통) 같은 앞다리 전동(땅에 놓는 화살통) 같은 뒷다리/ 쇠낫 같은 발톱으로 엄동설한 백설 격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 촤르르르르 흩이고/ 주홍 입 쩍 벌리고 자라 앞에 가 우뚝 서 홍앵앵앵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라가 깜짝 놀래 목을 움치고 가만히 엎졌것다

범은 어떻게 바닷가로 내려오게 되었는가. 뭍으로 오른 자라가 동물회의에서 토끼를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토생원부르려 했으나, 만리 물길을 밀고 오느라 턱이 뻣뻣해져 호생원이라 헛불렀다. 그런데 산중 호랑이가 자기를 높이는 말을 생전 처음 듣고 누가 부르나 궁금해하며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를 처음 보고 놀란 자라의 심리와 시각을 취해보자. 누가 날 부르나 하고 ’(자라)를 찾는 호생원은 누에머리를 두리번거리며 찢어진 귀를 쫑긋댄다. 얼숭덜숭한 무늬의 몸에 긴 꼬리를 흔드는 것도 두렵다. 엄청난 몸통을 떠받치는 저 다리는 화살통마냥 굵고 견고하다.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저 발톱. 날카로운 기역자 쇠 발톱에 찍히면 죽는다. 한겨울도 아닌데 저 발톱이 훑는 곳마다 잔디 뿌리가 뽑히고 왕모래가 백설처럼 흩날린다. , 저게 내 살점이고 핏물이로구나. 호랑이가 주홍 입 쩍 벌리고 흥앵앵앵하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 놀라 등껍데기에 목을 넣어 죽은 듯이 숨어버렸다.

이 사설엔 없지만 이후 호랑이는 이 둥글납작한 것이 자기를 불렀는가 하며 의아해 할 뿐 자라에 대해 살의를 보이지 않았다. “으르렁”, “어흥이 아니라 홍앵앵앵할 정도이지 않은가. 호랑이가 자기를 잡으러 산에서 내려와 발톱으로 살점을 헤쳐놓을 것이라는 상상은 자라의 착각이다. 자라는 아이고, 뭉개진 발음으로 어쩌다 호선생을 불러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후덜덜.’이란 심정으로 범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렇게 자라에 공감하며 사설을 감상하니 그 공포와 회한이 느껴지고 식은땀조차 감지된다. 목숨을 건 비장한 각오로 토끼를 찾으려 했으나 첫 임무 수행 장면에서 이토록 망가지다니 애잔할 지경. 호랑이의 발길에 이리저리 채이면서 등껍데기 속에서 식은땀을 흘렸을 자라에게서 짠내가 난다.

, , 눈물 같은 체액이 감지될 정도의 인간미, 이게 짠내이리라. <오징어 게임>에 인물들에게 나는 비루하고 고단한 삶의 짠내, <갯마을 차차차>의 인물이 가진 짠한 그늘의 짠내, 오지랖 넓게 서로의 삶에 엉기는 갯마을 사람들의 짠내나는 정. 이렇듯 한류 콘텐츠에는 짠내가 있다. 그리고 그 짠내의 전통은 <수궁가>가 보여주듯 참 오래되었다.

화려하고 멋진 한류 콘텐츠의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 삶의 고난과 인생의 슬픔에 대한 공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늘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듯이 짠내 나지 않는 인물은 인간적 매력이 없다. 짠내 나는 인물의 깊은 속내까지 표현하여 공감을 유발하는 힘, 이게 한류 콘텐츠가 가진 소프트 파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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