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주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몇 해 전 한강변에서 멍 때리기대회가 열린 적 있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현대인에게 멍하니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정신을 내려놓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행사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초점 없는 시선으로 모닥불 앞이나 물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불멍 또는 물멍과 같은 여가를 즐기게 됐다.

미술관도 멍 때리기를 수행하기에 꽤 괜찮은 곳이다. 특히 뭐라도 하지 있으면 알찬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여 불안한, 일명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생긴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 둘 있다. 그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이다. 국보로 지정된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이 관람자의 눈높이보다 약간 높게, 서로 사이를 두고 놓여있는 둥그런 공간이다. 반가사유상의 부처는 발 한 쪽은 반대편 무릎에 올리고, 다른 쪽 발은 연꽃 위에 올려놓은 채, 손가락을 볼에 살짝 대고 편안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인다. ‘사유의 방벽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하지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부처의 평화롭고 우아한 자태에 넋을 잃고 있다가 나오면 된다.

또 한 곳은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이다. 그곳 터렐관에 가면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년생)의 미술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화상이미지이나 사진을 통해서도 미술 감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편인데, 공간감이 개입되는 터렐의 작품은 예외다. 그의 작품 속에 서 있으면,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 몸이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고, 곧이어 무한하고 초월적인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릴 것만 같다.

터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이고, 지각심리학과 미술을 전공했다. 비행기 조종사인 아버지가 그를 옆에 태우고 비행을 하곤 했는데, 그때 하늘에서 본 탁 트인 대자연의 모습이 아마 작업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터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대 후반에 미술관 인턴으로 일하던 때였다. 인턴은 언제나 밝은 얼굴로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외쳐대면서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역할이 힘겨웠던 어느 날, 쓰윽 하고 숨어버린 곳이 바로 터렐의 작품 속이었다.

처음엔 어두움에 눈이 적응이 되지 않아서 한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서서히 눈앞에서 무언가가 푸르스름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내 동공이 열리면서, 그 파란색은 마치 무슨 실체가 있는 것처럼 선명하고 점점 가깝게 다가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랗게 물들며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잠시 집착을 멈추고 잃어버린 내 안의 빛을 되찾는 것이 명상이다. 요즘엔 명상이 트렌드여서, 미술관에서도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는 관람보다는 작품 앞에 가만히 서서 명상을 도모하는 감상자들이 늘어났다. 본격적으로 학업이 시작되는 3월에는, 봄이어도 봄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긴장감이 서려있다. 낯선 환경 속에서 계획은 많은데 몸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해 괜스레 조급해질 땐, 미술관으로 행선지를 정해 볼 것을 권한다.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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